지난 9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포착한 장면 하나. 비좁은 브루클린 골목 길에 ‘#WANGFEST’라고 적힌 검은 차량이 줄지어 들어섰다. 눈부신 조명을 실은 차가 일제히 검은 버스 한 대를 가리키자 카이아 거버를 비롯해 켄달 제너, 미즈하라 키코 등 모델 군단이 차례로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둑한 길거리를 런웨이로 뒤바꾼 알렉산더 왕 쇼의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던 것!
비단 왕뿐만이 아니다. 자동차가 패셔너블한 오브제 역할을 하는 장면이 요즘 곳곳에서 목격된다. 먼저 코치의 스튜어트 베버는 런웨이 한가운데 빈티지 카를 들여놓더니 쇼 직후엔 키스 해링 콜라보레이션 컬렉션 론칭을 기념하는 일러스트 옐로 캡을 도로 한복판에 내놨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역시 차에 푹 빠졌다. 자동차 바닥을 연상시키는 카 디자인 스커트와 사이드미러를 본뜬 클러치 백을 런웨이에 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편집숍 콜레트와 협업한 컬렉션을 위해 반듯하게 쪼갠 포르쉐 두 조각(!)을 매장에 비치한 것. 펜티 × 푸마는 모터사이클에 헌정하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특히,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바이커 쇼츠와 함께 선보인 현란한 오토바이 퍼포먼스는 모두의 환호를 사기 충분했다.
“자동차는 언제나 제게 큰 감을 선사했습니다.” 알아주는 차 수집가인 랄프 로렌은 이러한 현상을 누구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매끈한 실크와 가죽을 사용하고, 자동차에서 느껴지는 파워풀한 실루엣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카 컬렉션’이라 명명한 쇼가 펼쳐진 그의 차고는 빈티지 부가티를 포함한 수십 대의 자동차, 그리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See Now Buy Now’ 시스템을 천명한 이 컬렉션은 다음 날 매디슨 애비뉴 플래그십 스토어에 걸리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패션과 자동차가 전하는 스토리가 꽤 설득력이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