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별것 아닌 일부분에 매료된다. 이를테면 소설책에 사용된 고급 종이의 까슬한 질감, 무광의 립스틱 케이스, 반듯 하게 늘어선 스티치와 빈틈없이 마감된 가방 귀퉁이 같은 것들 말이다. 디테일이라 불리는 이런 사소함은 ‘작고 덜 중요한 세부 사항’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무색하게 주객전도를 일삼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디테일이 갖는 힘은 패션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네크라인을 어떤 방식으로 재단했는가, 무슨 패턴을 적용했으며 그 간격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단서들이 모여 옷의 첫인상과 수준을 결정짓기 때문. 그렇게 한 시즌에 같은 단서가 반복되며 생긴 일종의 흐름은 트렌드가 된다. 다시 말해 창대한(?) 유행도 미약한 부분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패션월드를 사로잡은 주름과 컷아웃 디테일 역시 언뜻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인다. 게다가 다루기 까다롭다는 특성까지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디테일이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의 선택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로맨틱하거나 쿨한 무드를 가미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져 나온 다수의 쇼피스가 이를 뒷받침한다.

 

먼저 알투자라와 사이먼 로샤, 블루마린의 예를 살펴보면 주름이 옷에 로맨틱한 생기를 불어넣고 움직임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브랜드 특유의 낭만적인 DNA가 만들어낸 효과 아니냐고? 와이 프로젝트의 강렬한 무드까지 단숨에 부드럽게 만드는 저 위력을 보라(물론 룩을 사랑스럽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건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니까)! 무심함의 상징인 줄로만 알았던 르메르의 볼륨 숄더 블라우스나 셀린느의 플리츠스커트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은 또 어떠한가.

 

 

반면 컷아웃의 특징은 제아무리 하늘하늘한 옷이라도 순식간에 쿨하게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프릴이나 레이스, 새틴처럼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힙하고 시크한 아우라를 풍기는 알렉산더 맥퀸과 크리스토퍼 케인, 조셉, 프로엔자 스쿨러, 발렌티노, 짐머만의 컬렉션 룩이 가진 반전 매력이 바로 이 컷아웃 디테일에서 비롯된 것. 퍼블릭스쿨의 카디건이나 이자벨 마 랑의 보디수트 역시 한번의 가위질 덕에 밋밋해질 위험을 피하고 하이패션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한 가지 이유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 가지 이유는 좋고 싫음 또는 그 비슷한 감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지금 이 디테일도 마찬가지다. 대단히 새롭거나 극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으로 옷의 퀄리티를 높이고 트렌드를 만든다. 그러니 사소하다고 외면하지 말기를. 주름과 컷아웃이라는 이름의 사소함은 이토록 아름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