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패션위크 출장에서 돌아온 에디터에게는 종종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다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주인공들처럼 차려입어?” 톱 셀러브리티부터 인플루언서까지 한자리에 모여 스타일링 감각을 뽐내는 자리이니 당연히 궁금할밖에. 그러나 지난 시즌 기억을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이힐에 맥시 스커트를 입고 치맛자락을 곱게 들어 올린 채 종종걸음을 하던 게 어느새 까마득한 예전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 하이패션계에는 ‘동네 패션’ 바람이 불었다. 영향력 있는 패션 인사이더만 앉을 수 있는 프런트 로에서는 플립플롭과 슬리퍼가 심심찮게 포착된다. 트랙 팬츠나 슬리브리스 톱, 심지어 이 둘을 매치해 입는 경우도 흔하다. 패션계는 이런 트렌드를 ‘원 마일 웨어(One Mile Wear)’라고 부르기로 했다. 집에서 1마일 이내의 거리를 다닐 때나 입는 옷이라는 뜻이다. 원 마일 웨어는 몇 시즌 전부터 시작된 스포티즘과 애슬레저 무드의 유행에 여성복을 실용적으로 만들어 젠더리스 패션을 이룩하고자 했던 여러 패션 하우스의 노력이 더해지고, 지지하디드나 켄달 제너 등 톱 모델들의 ‘레깅스 패션’이 필라테스 붐과 맞닿으며 서서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어려운 용어를 갖다 붙이니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그것들은 ‘쪼리, 쓰레빠, 츄리닝,메리야스, 동네 패션’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친근한 생김새를 가졌다. 셀러브리티의 SNS에 이런 옷차림이 연일 업로드되고, 명품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상품화하다 보니 이제 실생활에서도 ‘동네 패션’이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박물관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트랙 팬츠를 입은 이들이 적잖이 목격되고, 어른들의 눈총쯤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가 됐다. 물론 TPO에 관한 지적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봐도, 앞서 언급한 아이템들이 정돈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패션을 자기 표현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원 마일 웨어 트렌드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게다가 젠더 구분이 비교적 덜하고, 활동성까지 확장된다고 생각하면 이 유행이 고맙고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나열한 장점에 귀가 솔깃한다면 당신도 동네 패션을 트렌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얘기다. 무언가를 새로 살 필요도 없다. 그냥 깨끗한 티셔츠와 헐렁한 조거 팬츠에 스니커즈를 신고 거리로 나가보길. 그때 느껴지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야말로 원 마일 웨어가 지닌 진짜 매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