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컬렉션

샤넬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의 첫 공방 컬렉션은 2002년 선보인 하우스 첫 공방 컬렉션으로의 회귀로 귀결된다.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를 채운 다양한 요소에서 경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그랑 팔레에 아파트의 중심이 되는 나선형 계단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등을 맞댄 듯한 더블 C 로고, 클래식 한 트위드 재킷, 블랙 샤넬 백, N˚5 향수 그리고 샤넬을 향한 여성들의 열망. 샤넬의 위대한 유산은 세기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무엇을 더해도 그 이상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샤넬의 가치와 철학은 시간의 흐름과 다른 길을 걷는다. “샤넬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해요. 많은 걸 할 필요가 없죠. 먼 곳으로 떠났던 지금까지의 공방 컬렉션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어요. 파리에 머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야 했어요. 그런데 우리에겐 가브리엘 샤넬이 만들고 칼 라거펠트가 드높인 하우스 코드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것들을 조합하는 걸 좋아하고요. 전 이 컬렉션이 현실과 같은 선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늘 제가 던지는 질문과 같죠. 수십 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방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대신 ‘오늘날의 여성은 어떨까?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까?’ 하고 묻는 거죠.” 버지니 비아르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첫 번째 공방 컬렉션을 위한 영감을 샤넬의 출발지인 프랑스 파리, 캉봉가 31번지에서 얻었다.

2019년 12월 4일, 2019-20 샤넬 공방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파리 그랑 팔레에 캉봉가 31번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특히 가브리엘 샤넬이 살았던 아파트는 이번 컬렉션의 중심이 됐다. 샤넬을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려봤을 법한 공간, 가장 사적인 동시에 신화적인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는 이번 공방 컬렉션을 선보이는 장소로 완벽했다. 쇼장에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는 샤넬의 아파트는 그녀가 생전 사랑했던 책과 오브제와 코로만델 병풍이 어우러진 바로크풍의 거실 공간이었다. 마치 가브리엘 샤넬이 어딘가에 앉아서 의상을 스케치하거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듯한 이 거실은 아늑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방 컬렉션이 펼쳐지는 런웨이는 샤넬 아파트의 중심이 되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거울과 계단이 어우러진 무대는 샤넬 하우스의 오랜 동반자인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구체화됐다고 한다. “과거 캉봉가 31번지에서 열렸을 오리지널 쇼를 상상해봤어요. 모델들이 가까이에서 워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얼마나 대단했을까. 그것도 가브리엘 샤넬의 거울 계단을 배경으로 말이죠. 저는 그 계단을 볼 때마다 전율을 느끼거든요.”

거울 계단은 1920년대 초반, 입체적으로 면을 살려 만들었는데 가브리엘 샤넬은 그곳에 앉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쇼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테두리에 흰색이 칠해진 베이지색 계단 중 다섯 번째 계단이 하우스를 상징하는 심벌 중 하나가 됐다고 전해진다. 버지니 비아르 역시 이번 공방 컬렉션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이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소녀를 상상했죠. 어떤 드레스를 입고 있을까? 신발은 어떤 걸 신었을까? 샤넬 하우스의 코드는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서 대부분 발견할 수 있었죠.”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는 그녀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한 쌍의 황금 사자가 자리 잡고 있고, 더블 C 로고가 웅장한 주얼 펜던트 샹들리에에 얽혀 있었으며, 그 바로 옆에는 가브리엘 샤넬에게 행운의 숫자이자 전설이 된 샤넬의 첫 향수 이름인 숫자 5가 쓰여진 오브제가 놓여있다. 그리고 코로만델 병풍에는 불사조와 함께 가브리엘 샤넬을 대변하는 꽃 까멜리아, 생명과 번영을 상징하는 밀 이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늘 가까이 두고 사랑했다.

이 우아한 샤넬의 코드들은 이번 공방 컬렉션에도 섬세하게 녹아들었다. 니트만큼이나 부드러운 트위드 소재로 완성한 점프수트와 가장자리를 둥글린 짧은 수트 재킷은 앞을 터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한 로 웨이스트 스커트와 어우러져 실용적이면서 우아한 느낌을 자아냈고, 이번 컬렉션에 가장 많이 사용된 리본은 체인과 펄 소재의 얇은 벨트로 자리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1960년에 만든 핑크 트위드 수트의 안감에 블랙, 블루, 핑크, 모브 컬러로 홀치기염색한 천을 사용한 데서 영감을 얻은 수트들은 겉감을 홀치기염색 하기도 했고, 아이코닉한 11.12 백과 2.55 백에도 컬러가 입혀졌다.

샤넬의 또 다른 코드인 투톤 컬러 역시 블랙과 화이트가 교차하는 그래픽적인 수트, 마사로(Massaro) 공방에서 제작한 슈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블랙 토와 작은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골드 레더 펌프스는 곧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긴 대기 리스트를 만들 것이 뻔했다.

샤넬의 이번 공방 컬렉션은 컬러 사용 면에서도 독보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블랙과 골드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핑크가 핵심 컬러로 쓰였는데 소프트 핑크, 애프리콧, 라즈베리, 심지어 짙고 어두운 가닛 컬러까지 스커트와 팬츠, 수트, 트위드 재킷 등 여러 룩에 등장했다. 액세서리 역시 특별했는데, 공방 컬렉션에 걸맞게 좀 더 세심하고 완성도 높은 커스텀 주얼리를 겹쳐 착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커프 브레이슬릿, 펄과 스트라스 소재의 가슴 부위를 가득 채운 네크리스, 같은 소재로 반짝거리는 소트와르(sautoir) 네크리스와 다른 펜던트들, 화이트 스트라스 별로 장식한 초커가 자주 등장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고, 체인 벨트는 펄과 리본, 까멜리아 모티프로 꾸민 모습이었다.

모델들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런웨이를 입장하는 순간부터 피날레로 계단을 꽉 채우기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이번 공방 컬렉션은 의심의 여지 없이 샤넬의 위대한 유산을 집대성한 컬렉션이었다. 또한 샤넬은 앞으로 1년 안에 총 11개 공방을 ‘19M’이라 불릴 유니크한 공간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새로운 샤넬의 핵심이 될 이곳이 어떤 새로운 샤넬 코드를 만들어낼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