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매카트니 신디 셔먼 예술가 협업 콜라보레이션
A 부터 Z에 해당하는 알파벳마다 의미 있는 단어를 정하고, 예술가와 협업해 표현한 스텔라 매카트니의 성명서 형식 컬렉션.

 

패션은 하나의 커다란 세계와 같다. 보통의 세상처럼 시간의 흐름과 규칙이 존재하는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아이템이 태어나고 죽는다.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가격표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의 태생적인 목표는 대체로 한 가지다. 널리 알려지고, 많이 팔리는 것. 목표를 달성한 가방과 신발, 이 외의 모든 아이템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생을 이어간다. 영원불멸(?)의 삶을 사는 에르메스의 버킨 백과 샤넬의 클래식 백처럼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많이 팔리는 것’보다 더욱 분명하고 심오한 목적성을 띠는 독특한 종류의 패션도 있다. 이런 아이템들은 보편적인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며 예술 작품으로서,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메시지로서, 또는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선의로서 존재한다. 최근 화제를 모은 건 소더비를 통해 경매에 부쳐진 아디다스와 마이센의 협업 작품이다. 1856년에 처음 제작된 대표적인 마이센 꽃병의 다양한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운동화는 6개월의 수작업을 거쳐 단 한 켤레만 제작됐다. 최종 낙찰가는 12만6천 달러로 한화 1억3천만원대에 달하며, 수익금은 지역 청소년들의 예술 교육을 돕기 위해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액 기부된다. 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미래의 예술가를 후원하는 동시에 예술품 그 자체로 남기 위해 태어난 셈이다.

 

아디다스와 도자기 브랜드 마이센 협업 콜라보레이션
아디다스와 도자기 브랜드 마이센의 협업 작품.

 

펜디 줄리아드 음악학교 학생 아니마문디 프로젝트

펜디 줄리아드 음악학교 학생 아니마문디 프로젝트
줄리아드 음악학교 학생들과 협업하며 음악의 가치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 펜디의 새로운 아니마 문디 프로젝트.

 

펜디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예술과 희망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패션을 활용해왔다. 로마와 서울을 거쳐 뉴욕 줄리아드 음악학교와 함께 진행한 아니마 문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줄리아드 출신의 촉망받는 재즈 뮤지션 6인이 참여한 프로젝트 필름은 제품을 부각하는 등의 상업적인 장치를 배제하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감동적인 음악만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며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

한편 티파니는 하우스의 역사를 기리는 네크리스를 제작한다. 티파니가 뉴욕 5번가에 문을 연 1939년 세계박람회에 소개되며 전설이 된 이 목걸이는 2022년 뉴욕 5번가의 플래그십 매장 리뉴얼 오픈과 함께 공개돼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원작 목걸이에는 센터 스톤으로 아쿠아마린이 사용됐지만, 재해석하는 작품에는 80캐럿의 오벌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하우스 역사상 최고가로 판매된다. 이 목걸이는 티파니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헤리티지에 대한 하우스의 한없는 애정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반면 스텔라 매카트니는 새 시즌 책임 있는(accountable), 의식하는(conscious),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등 A부터 Z까지 알파벳에 각각 의미 있는 단어를 지정하고, 신디 셔먼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와 함께 단어에 대해 표현하는 ‘메시지로서의 패션’을 전개한다. 동물과 자연보호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이기에 이런 행보가 놀랍지는 않지만, 신념을 전하는 도구로 패션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의 오더메이드 핸드백 브랜드인 보아리니 밀라네시(Boarini Milanesi)는 6백만 유로(한화 약 80억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방을 출시한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장식한 백으로, 판매되는 백 한 점당 71만1천9백50 파운드(한화 약 10억원)를 전 세계의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제거하기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바다에서 쌓은 추억을 공유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나 좋은 의도와 달리 악어가죽을 사용해 역설적으로 환경을 해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티파니 80캐럿 오벌 컷 다이아몬드 역사상 최고가
티파니의 전설적인 네크리스와 재해석되는 제품의 스케치.

 

보아리니 밀라네시 보아리니 밀라네시 해양 환경 오염 개선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해양 환경 오염 개선을 위해 탄생한 보아리니 밀라네시의 백.

 

물론 단순히 스타일만을 위해 존재하는 무수한 아이템의 가치가 덜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많이 팔리고 유행을 선도하다 소모되면 그뿐이던 ‘사치재’가 이제는 어떤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할 뿐이다. 모든 기술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하는 동안 패션은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최근 대두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사회적 패션에 이어 널리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탄생하는 새로운 럭셔리의 등장은 어쩌면 도태된 패션이 살아남는 방법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