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MBATTISTA VALLI
로맨티시즘의 대명사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기존과 조금 다른 무드를 선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벼운 튈 소재 드레스, 시폰을 겹쳐 거대하게 만든 드레스,
깃털 장식 칼럼 드레스 등 디자이너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점은
기존과 동일했지만 분위기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시의 봉쇄가 풀려가면서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안전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위험에 대한 취향’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컬렉션의 주제로 삼아 장엄한 분위기로 완성한 것.
컬렉션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 등장한
망토 달린 테일러드수트들을 주요 룩으로 배치한 점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라고 불리는 장엄한 음악 ‘라크리모사’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 것은 쇼의 완성도를 높이는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PYER MOSS
오트 쿠튀르의 세계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도발적 창의성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쇼도 존재한다.
이번 파이어 모스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그 중 하나다.
디자이너 커비 진 레이먼드의 오트 쿠튀르 데뷔 쇼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땅콩버터, 신호등, 병뚜껑 등 흑인 문화와 본인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영감 받은 룩을 선보인 것.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쇼는 공개되자마자 큰 화제를 모았지만,
오트 쿠튀르로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유는 실험정신이 가득한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일 터!
FENDI
펜디의 쿠튀르 컬렉션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로마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펜디의 정신이 생생하게 구현된 쇼.
킴 존스는 펜디의 근본인 로마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 쇼 준비를 시작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건축물과 조각상에서 영감 받은 듯한 룩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봐도 대리석처럼 보이는 트롱프뢰유 실크로 만든 룩이 대표적인 작품.
이 밖에 슈즈의 힐 부분은 펜디 사옥인 팔라조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의 아치 부분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디자인했으며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제작한 주얼리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어디 이뿐인가!
코르넬리 자수와 크리스털 비즈 장식은 과거가 현재 속에서 서정적으로 변해간다는 의미를 담았는데,
역시 펜디의 쿠튀르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오트’의 경지에 이른 기술력이 느껴졌다.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로마가 킴 존스의 손길을 거쳐 강인하고도 섬세한 작품으로 재탄생한 장면을 목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