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 살바토레 페라가모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맥카트니

 

‘우리는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합니다.’ 파타고니아가 전면에 내세우는 이 슬로건은 최근 광범위하게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패션계의 동향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비영리 조직 1% for the Planet을 창설해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세계적인 환경 단체를 지원하는 데 기부할 뿐 아니라 혁신적인 재생 소재를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며 대표적인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초반 몇몇 스포츠 브랜드에 국한되었던 데에서 벗어나 보수적인 하이패션계에서도 점차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가 미국 스타트업 마이코웍스(MycoWorks)와 협업해 버섯 뿌리 부분의 균사체를 엮어 비건 가죽 ‘실바니아(Sylvania)’를 제작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제작하는 데 무려 3년 넘게 소요된 빅토리아 더플백은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에르메스에 앞서 패션계에 비건 레더 열풍을 일으킨 브랜드는 스텔라 매카트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스텔라 매카트니는 최근 셀룰로오스 섬유와 섬유 폐기물을 재생산한 신소재 ‘누사이클(NuCycle)’을 비롯해 끊임없이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2021 F/W 컬렉션에서 메인으로 선보인 디스코풍 시퀸 점프수트는 플라스틱 대신 리사이클 나일론 원사를 사용해 친환경 패션의 선구자적 면모를 보여줬다. 이 밖에도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알렉산더 맥퀸은 이번 시즌 컬렉션에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드레스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친환경 소재를 언급할 때 프라다, 버버리, 구찌 등 선진 브랜드가 애정을 기울이는 ‘에코닐(Econyl)’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원사 제조 기업인 아쿠아필(Aquafil)이 자신 있게 선보인 에코닐은 산업용 미세 플라스틱과 낚시 그물, 방직용 섬유에서 모은 폐기물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나일론 소재다. 100% 생분해되는 원료로 구성되어 있어 재사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내구성이 뛰어나 럭셔리 브랜드에서 활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최근 전면적으로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한 케어링 그룹은 또 어떤가. 구찌, 생 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 세계적인 패션 레이블을 보유한 이 초대형 모회사가 2022 F/W 컬렉션부터 모든 브랜드에 걸쳐 동물 모피 사용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것. 이 밖에도 지속 가능성이 미래 전략의 키를 쥐고 있다고 이야기한 글로벌 편집숍 마이테레사 또한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동물 퍼로 만든 제품을 소진한 후 모피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더 노스 페이스 에르메스

 

ESG 경영으로 전환하는 하이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친환경’을 메인 컨셉트로 앞세우는 패션 레이블도 선전하고 있다. 그 선두엔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영국 브랜드 판게아(Pangaia)가 있다. 판게아는 과학자가 참여해 실험적인 친환경 소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천연자원을 염료로 사용한 스웨트셔츠며 동물의 털인 다운 대신 야생 꽃으로 풍성하게 채운 다운 재킷, 포도 껍질 가죽으로 만든 재킷에 이어 최근엔 탄소 변환 기술을 확보한 기업 ‘트웰브(Twelve)’와 힘을 합쳐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렌즈를 만든 선글라스를 한정 수량으로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 디자이너 레이블인 지용킴(Ji Yong Kim)의 행보도 매우 흥미롭다. 루이 비통의 수장 버질 아블로와 함께 일한 전적이 있는 이 영민한 디자이너는 매년 쏟아져 나오는 9천만 톤의 쓰레기를 재활용하며 인공 염료 대신 패브릭을 햇빛에 자연스럽게 말리는 ‘선 페이딩’ 기술을 앞세워 독특한 컬러 팔레트를 창조한다. 지용킴은 최근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브랜드 래코드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을 선보여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폐페트병에서 추출한 재생 폴리에스테르, 제작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활용한 재생 나일론, 물과 에너지를 아끼는 공정으로 만드는 지속 가능한 가죽으로 제작하는 플리츠 백으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조셉 앤 스테이시도 주목할 만하다.

이토록 친환경 패션이 대세이다 보니, 여러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성에 주목한 라인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덩크 로우’를 업사이클링 소재로 새롭게 출시한다고 밝힌 나이키는 물론 화학섬유 전문 기업 휴비스(Huvis)와 협업해 생분해 섬유 ‘에코엔(Ecoen)’으로 만든 친환경 의류를 출시한 노스페이스, 리사이클 페이퍼와 코르크로 제작한 운동화를 선보인 휠라, 울 폐기물과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어그의 ‘아이콘 임팩트’ 컬렉션, 한국타이어와 협업해 폐타이어를 근사한 가죽 구두로 탈바꿈시킨 슈즈 브랜드 야세(YASE), 100% 리사이클 원단은 물론이고 실, 라벨, 포켓까지 리사이클 소재로 제작한 데님 컬렉션을 출시한 H&M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투입해 창의적인 에코 라인을 앞다퉈 선보이는 형국이다.

2022 S/S 파리 패션위크의 디올과 루이 비통 캣워크에 별안간 환경운동가들이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퍼는 부끄러운 것이다(FUR SHAME)’, ‘과소비=멸종(OVERCONSUMPTION=EXTINCTION)’ 등의 문구가 쓰인 종이를 든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모델들의 캣워크에 떡하니 등장한 것. 여전히 친환경 패션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향하는 목적지는 명확하며, 나날이 기술과 방법이 진화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니 믿고 바라봐주는 자세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