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 서울 작가들의 예술 세계

Michelle Grabner, ‘Untitled‘, Oil on burlap canvas, 305x220cm, 2017 Courtesy of Efremidis

 

 

키아프 서울 작가들의 예술 세계

Michelle Grabner 미셸 그라브너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드로잉과 페인팅 학사 및 미술사 석사 학위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파인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회화과 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남편 브래드 킬람(Brad Killam)과 함께 위스콘신주에서 비영리 미술 공간 ‘더 서버번(The Suburban)’과 ‘더 푸어 팜(The Poor Farm)’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예일 대학교 회화 및 판화과의 미술 평론을 맡았고, 2021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상했다. 30여 년간 예술가이자 교육자, 작가, 비평가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그가 드로잉, 회화, 조각, 비디오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은 노동의 생산성에 가치를 두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패턴에 대한 창작자, 번역가, 복제자 혹은 재생산자의 역할과 반복’이라는 시각적인 실천 속에서 새롭고 역동적인 관계를 발견한다. 추상적인 패턴과 패턴이 은유하는 모든 것에 집중하며 안정과 불안, 연속성과 단절이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 구성적 구조의 한계를 밀어낸다. 오랫동안 명상을 생활화한 작가는 일상 자체를 예술로 변형시키고자 하고, 일상을 채우는 흔한 도상과 재료에 주목한다. 그 결과물은 삶과 예술의 정신적 연결과 그 모호한 경계를 보여준다. 식탁보의 모티프가 거대한 캔버스에 형상화되듯이, 그는 모든 것에서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찾는다.

Michelle Grabner, ‘Untitled’, Wood, oil paint, 20x34x7.5cm, 2021 Courtesy of Efremidis

Efremidis 에프레미디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 일상 속 반복과 시간적 리듬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패턴과 그 모티프를 다시 표현함으로써 패턴 속 배열이 활발히 해석되게 하고 싶다. 일상적이면서도 고차원적 디자인에 활용되고, 젠더와 가정이라는 범주에서도 논의될 수 있는 깅엄 체크가 대표적이다. 내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깅엄 체크를 중요한 상징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모두가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나.‘지속 가능성이 정말 필요한가? 이를 창출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지속 가능성을 팔 수 있나?’와 같은 질문을 일상적 패턴으로 관람객에게 던지고 있다. 너무나 평범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를 의도했다. 그래야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를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꼽는다면 미국 예술가 제니퍼 바틀렛(Jennifer Bartlett)의 작품 전체를 말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소재가 풍부하고, 추상적이며 비유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엄격하면서도 헌신적이다. 내 작품이 지니고자 하는 모든것들이다.

당신은 교육자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되는 것에 대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장 강조하나? 세상에 내놓은 예술 작품이 모든 사람에 의해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큰 의무감을 갖고 있다. 학생들, 심지어 다수의 예술가들이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는 관객의 다른 관점이나 의미를 접하며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배움을 막고, 때로는 작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게 만든다. 다양한 해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관철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수긍하는 게 최선이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작품을 통해 스스로 계속 배워 나가는 것. 동시에 다른 예술과 문화의 형태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해석하며 평가하는 것. 즐거운 일이라 말하고 싶지만, 사실 대부분 버겁다. 하지만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내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한국 관람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품 규모와 모티프, 소재, 어휘 등에 관한 한국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을 듣기를 고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술가의 역할과 개인의 상상력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 흥분되기도 한다. 제니퍼 바틀렛만큼 내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존재가 이우환 작가다. 젊은 한국 예술가들에게도 내 작품이 잘 소개되기를 바란다.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추상화의 시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를 확장하는 데 끊임없이 삶을 바친 사람. 그리고 항상 다른 작가를 응원하는 예술가.

 

 


Maximilian Prüfer 막시밀리안 프뤼퍼
독일 출신 작가로 이탈리아 볼로냐 아카데미아의 아우크스부르크 응용 과학 및 미술 대학에서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전공했다. 자연적 과정을 탐구해 시각적 이미지로 전이한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생명체의 진화, 인간의 자연 생태계 조작, 궁극적인 상호 의존 등을 실존적, 철학적, 정치적 관점으로 연구하며 ‘자연 현상과의 분리’라는 인간의 문화적 패러다임에 반발한다. 연구 결과는 작가가 ‘나투란튀피(Naturantypie)’라고 명명한 표현 기법으로 나타난다. 곤충의 움직임을 기록한 기법으로, 생존에 대한 충동이나 에너지의 경제적 사용등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체의 행동을 종이의 미세한 코팅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 도구로부터 독립한, 드로잉의 개념을 확장하는 미학을 만들어낸다. 한편 곤충이 남긴 흔적을 조작하기 위해 미끼, 빛과 냄새 등을 사용하는 창작 과정은 일종의 조작이다. 그래서 인류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자연의 진화 과정이 그의 작품에 함축되어 있다.

Maximilian Prüfer, ‘Rainpicture Sahara 15-03-22’, Naturantypie on paper, 200x140cm, 2022 Courtesy of Galerie Kandlhofer

Galerie Kandlhofer 갤러리 캔들호퍼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 ‘나투란튀피’의 새 작품을 전시한다. 나투란튀피는 내가 직접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를 활용한 작품에서는 개미와 달팽이의 이동 경로를 비롯한 자연의 가장 훌륭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빗방울이 담긴 작품도 소개한다.

작품 소재가 특별해 보인다. 검은색을 배경으로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 자연의 흔적을 잘 담아내기 위해 종이를 코팅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개미의 발자국까지 보일 정도로 코팅이 미세하다. 그 코팅과 가장 잘 대비되는 색이 검은색이다. 자연의 이동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라 배경색을 검은색으로 유지 중이다.

작품을 한 번에 완성하는 편인가? 아니면 매일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나? 내 작품에서는 기술적, 미적, 철학적, 행동적인 면이 아주 중요하다.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때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때때로 이미지를 위해 수백 개의 실험을 선행하는데, 특히 생물과의 작업은 매우 민감하면서도 중요하다. 자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은 내 인생에서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 그 자체가 내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현 가능성, 상상의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Maximilian Prüfer, ‘Snailpicture 14-05-22’, Naturantypie on paper, 145x146cm, 2022 Courtesy of Galerie Kandlhofer

 

 

Yunkyung Jeong 정윤경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에서 회화·판화, 한국화 학사과정을 마친 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2008년 슬레이드 예술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을 포함해 홍콩, 런던, 브뤼셀, 모스크바, 파리 등에서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고 아트바젤 홍콩, 아트 자카르타, 아시안 아트 페어 등에 출품했다. 작가는 팬데믹 기간 동안 휴대폰 화면에 손가락으로 디지털 드로잉을 그리며 색다른 접근법을 시도해 ‘핑거 스펠(Finger Spell)’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전 작업이 기하학적이고 유기체적인 모티프를 기반으로 풍경을 구축했다면, 최근작에는 정제된 풍경과 현실이 함께 담긴다. 종이의 낯선 감촉과 밝고 자유로운 선의 움직임이 그의 대형 캔버스에 깃들어 있다.

정윤경, ‘FS-two spot’,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50x190cm, 2022 Courtesy of GOP

GOP 지오피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 ‘핑거스펠’ 시리즈를 전시한다. 영국에서 지낼 때 코로나19로 인해 작업실에 가지 못해 집에서 휴대폰 화면에 그림을 그린 것이 ‘핑거 스펠’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보다 나아진 상황에서 시리즈를 발전시켰다. 아크릴물감과 오일 스틱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고, 드로잉뿐 아니라 종이 콜라주도 시도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휴대폰 화면 속 SNS를 살펴보며 손가락 하나로 감정을 쉽게 표현하고, 무언가를 함부로 평가하기도 하지 않나. 우울한 감정도 대담하고 밝은 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느꼈다. 휴대폰 화면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주문을 걸듯이, 하루하루의 감정을 담아 선을 그려내며 작품을 완성한다.

예술가로서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엄마라는 정체성이다. 원래 늦은 시간에 작업하는 것을 즐겼고, 철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며 차분한 작업을 주로 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며 작업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수업을 듣는 시간이 되면, 온전한 예술가로 돌아와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예전처럼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작업할 여유가 없을 때도 상황을 최대한 즐기며 오히려 더 과감하게 작업하려 노력한다. 아이를 돌봐야 해 작업을 미룰 때가 있지만, 반대로 아이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란 적이 많다.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나? 내가 여성 작가라는 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여자이고 엄마인 한 작가가 이런 삶을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업과 예술 세계를 펼쳐냈다’ 라는 형태의 문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올해 키아프 서울의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추상화를 그리는 한국 작가들이 많아졌고, 작품의 깊이와 다양성도 확장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전시를 찾아온 이들이 추상 예술을 더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면 좋겠다. 작품을 분석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그저 보이고 느끼는 대로 즐겨주기를 바란다.

정윤경, ‘Finger laugh and sorrow 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60x190cm, 2022 Courtesy of GOP

 

 

Mihei Her 허미회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조형 예술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귀국과 동시에 국내외로 활발히 전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작가가 선보인 ‘두-사이(Entre-deux)’ 시리즈 작품들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외 주요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는 살아가며 충분히 교감했던 장소와 그곳에서의 소중한 순간을 아크릴 ‘상자’로 표현한다. 머물렀던 모든 공간이 기억으로 각인되기 때문에 작가에게 공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장소를 입체적으로 재현하며 시공간을 상자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를 통해 시공간을 시각화하고, 뷰파인더로 전해진 느낌을 다양한 tor으로 표현해 회화 같은 사진을 탄생시킨다. 그 촬영본을 투명 필름에 출력한 뒤 아크릴판에 붙여 상자 형태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미지가 겹치고 어우러지며 입체적인 효과를 내며 그의 작품은 그림과 사진,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간다.

허미회, ‘Entre-deux’, Photo, plexiglass, film, 81x81x8.5cm, 2022 Courtesy of LEE & BAE

허미회, ‘Entre-deux’, Photo, plexiglass, film, 130.5×87.5×8.5cm, 2022 Courtesy of LEE & BAE

LEE & BAE 갤러리 이배

당신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이 궁금하다. 프랑스 유학 시절 수많은 서류와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상자를 사용할 때 상자라는 소재의 매력을 처음 느꼈다. 닫힌 상자가 눈앞에 있을 때,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상자 속에는 잊지 못할 물건들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응집되어 있는 상자는 ‘기억을 넘어서는 기억’이 된다.” 그 말에 매혹되어 상자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상자의 개념에서 출발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작품을 완성해갈 때 어떤 과정을 따르나? 프랑스에서 조형 예술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의 전공 분야는 한국화였다. 그래서 설치 작품의 기반이 되는 사진을 작업하는 과정에 그림 그리던 습성이 많이 남아 있다. 여행지나 일상에서 촬영한 사진을 선별해 보정한 후 투명 필름지 위에 출력하고, 이를 아크릴판에 붙여 상자를 만든다. 너무나 고된 과정이다. 하지만 온몸의 에너지와 집중력, 작업에 대한 애정은 나의 두 손이 끝없이 재료들을 탐색하게 한다. 소통과 교감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 어떤 작가도 현실적인 상황과 삶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예술가인 동시에 한 가정의 딸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에 보통 늦은 밤이 되어야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일상생활로 인해 무뎌질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중요하고 소중하다.

허미회, ‘Entre-deux’, Photo, plexiglass, film, 41x41x8.5cm, 2022 Courtesy of LEE & BAE

키아프 서울에서 만날 관람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은 상자의 앞면과 뒷면에 자리한 이미지의 무수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통해 삶의 ‘두-사이(Entre-deux)’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크릴 상자를 활용해 회화 같은 사진, 단순한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풍경과 심상을 보여주고 싶다. 선명한 색의 꿈을 꾸거나, 비밀스럽고 이상적인 공간을 들여다보듯이 조심스레 상자의 안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결국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나? 독창성을 확고히 지닌 작가. 내 작품을 보고 허미회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 VOLTA Art Fair

Leszek Skurski 레섹 스쿠르스키 폴란드 출신 작가. 파인아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고, 1995년 폴란드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독일 헤센주의 도시 풀다(Fulda)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흰색과 회색을 지배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작품 속 공간을 색채적으로 축소한다. 공간에담긴 광활한, 끝이 없어 보이는 평원에는 인물이 홀로 또는 단체로 등장한다. 서사가 잠시 멈춘 듯한 작품은 결말을 열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묘사해낸다.

Leszek Skurski, ‘Swimming Pool’, Oil on canvas, 120×80cm, 2022 Courtesy of GALERIE VON&VON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다. 선을 그리는 도공이 아닌, 물감의 얼룩들과 함께 일하는 화가로서 말이다. 선과 색채의 분리는 마치 우주와 같다. 우주에는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위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우주와 같은 미술 작업을 통해, 내 위치를 찾고 싶다. 그림을 그려 나가며 직면하는 스스로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가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로서 큰 도전이고, 내 그림에 아주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캔버스 위 인물 배치가 인상적이다. 매우 작지만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내 작품 속 인물들은 형상화와 추상화의 경계에 위치한다. 관람자가 상상을 통해 사람 형체의 모티프를 직접 결합하며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게 올바른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전체적으로 볼 땐, 인간과 풍경의조화를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내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주제이기도 하다. 수십 년에 걸친 기후변화는 이 주제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생각은 무엇인가? 내 작품이 단조롭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영감과 고민을 모으고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완성한 결과물이다. 단출한 작품일수록 그 안에 담긴 정신은 더 심오하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을 시각화하기 위해 다양한 스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런 그림에서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한 구상의 작품에 내 엄청난 집념과 정신이 작용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Leszek Skurski, ‘Truck’, Oil on canvas, 80x120cm, 2022 Courtesy of GALERIE VON&VON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나? 초현실주의자보다는 표현주의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인상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신·후기 인상주의자라고 말하고 싶다. 인상주의 예술가는 현실의 암울함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일상을 묘사할 때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오직 은유나 복잡한 문체적 장치만을 미묘하게 사용했다. 때때로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뤘고, 이때 형태가 내용을 지배했다. 또 순간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것이 결국 나다.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술가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없더라도,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에 거의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내 작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 하는 관람자는 작품 창작자인 나를 주목할 것이다. 그 효과는 관람자가 작품 속 형상과 언어에 익숙해지고, 이를 받아들여 이해했을 때 극대화된다. 관람객의 행동 양상을 이용하기 위해 전시장에 내 작품을 ‘결말이 열린’ 채로 걸어둔다. 스스로를 ‘그림을 통해 기록하는 사람’이라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며 꾸준히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아시아의 종교, 의식, 철학을 다룬 풍경화를 소장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내 시선에 담기고, 내 붓을 통해 표현되는 세상의 요소들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할 수 있었다. 탐구 과정을 거치며 관람객으로서는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있다. 작품을 가까이에서만 바라보면 미세한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최대 반경이 10미터 정도인데, 최소 3미터는 뒤로 물러나 여기저기 이동하며 작품을 살펴본다. 움직이지 않으면추상화의 정도를 알맞게 조절할 수 없다. 이는 내 고유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림 안에, 또는 그림을 통해 내 모든 것을 표현한다.

결국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나? 폴란드에서 국가가 주는 상을 받을 때 나는 주목받는 신예였다. 이제는 더 국제적인 시점으로 스스로를 고찰하고 있다.독일 신문 <디 자이트(Die Zeit)>에서 나에 대해 ‘후기 인상주의를 개념 예술로 부활시켰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마음에 드는 묘사였다. 국제 언론이 언급했듯, 먼 미래에 신·후기 인상주의의 주역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Leszek Skurski, ‘Rules’, Oil on canvas, 30x24cm, 2022 Courtesy of GALERIE VON&VON

 

 

Atreyu Moniaga 아트레이유 모니아가 자카르타를 거점으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는 인도 출신 젊은 예술가. 자카르타 예술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삽화가와 사진작가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초현실주의적 색채가 강한 독창적인 화면 구성의 작품들을 그려내며 점차 회화 작가로 전향했다. 2015년 드로잉 대회 ‘라이즈 오브 디 엘리펀트(Rise of the Elephants)’ 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20년 미국 오리건주에 자리한 갤러리 ‘뉴클리어스 포틀랜드(Nucleus Portland)’ 단체전에 참여했다. 2년 후 인도네시아 코헤시 이니셔티브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 <컨빅션(Conviction)>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복잡하고 기이한 상징과 기호가 가득한 세계를 작품에 담아낸다. 영웅주의와 비극, 희망과 광기에 대한 사색의 결과를 독특한 매체, 구성, 색채를 활용해 상징적 언어로 만들어내는 작업 방식은특유의 이국적 색채를 더욱 짙게 만든다.

Atreyu Moniaga, ‘Dive To Blue’, Watercolor on paper, 70×90cm, 2022 Courtesy of BAIK ART

Atreyu Moniaga, ‘Screaming Silence'(Tangled Series), Watercolor on paper, 22.9×30.5cm, 2017 Courtesy of BAIK ART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소개를 부탁한다. 지금까지 시도한 적 없는 색채의 조합을 담은 수채화 컬렉션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들과 소통하며 그림의 대상에 관한 요청을 받으며 새로운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물의 이름을 ‘마인드크래시드 빌리지 1, 2(Mindcrash Village 1, 2)’라고 지었다.

인도네시아 출신 예술가라는 점이 당신에게 어떻게 작용하나? 인도네시아 문화는 또래 집단의 우정과 규칙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집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규칙에는 역동적인 변화나 새로운 현상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또래 집단이 남긴 혼란은 내게 스케치 영감을 주고, 친구와의 관계와 우정은 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의 방식, 일상에서 벌어지는모든 사건들도 큰 영향을 준다.

어두운 감정을 가진 초현실주의 화풍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나? ‘상징’에 관심이 있다. 상징은 인간이 감정을 망설임 없이 풀 수 있도록 허가하기 때문이다. 상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진실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초현실주의에 접근할 때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다.

Atreyu Moniaga, ‘Farewell'(Tangled Series), Watercolor on Paper, 22.9×30.5cm, 2017 Courtesy of BAIK ART

예술가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아마 내가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이 아닐까? 가능한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성장하며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말이다.

한국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에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이후에도 당시에 만난 이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다.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 경험이라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나? 다학제적 예술가가 되고 싶다. 사진, 연기, 멘토링 등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이니 기회가 된다면 찾아보기를 바란다.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기울이고, 작은 것을 큰 의미로 만들 수 있는 예술가로 기억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