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시대의 청동 조각상 ‘러너(Runner)’, 그리고 화가이자 조각가인 움베르토 보초니의 조각 작품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이 자리한 웅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런웨이를 무대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세번째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 시즌인 2022 WINTER 컬렉션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에 대한 헌사’를 테마로 한 3부작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새 시즌 런웨이는 마티유 블라지의 디자인 철학이자 신념인 ‘크래프트 인 모션(Craft in Motion)’을 통해 이탈리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찬사를 이어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

 

“낯선 이들의 생경한 마주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매일 거리에서 만나고 스쳐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름’은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한 에너지를 전하죠. 길을 걷다 당신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이 길모퉁이를 돌면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예상치 못한 만남이 빚어내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마티유 블라지는 특히 서로 낯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결집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다. 지난 시즌, ‘가죽의 명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심플한 화이트 탱크톱부터 케이트 모스가 입고 등장한 캐주얼한 데님 팬츠와 체크 셔츠를 모두 얇고 가벼운 가죽 소재로 선보여 놀라움을 안긴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시즌에도 자신의 장기를 한껏 발휘한 쇼피스로 ‘역시 보테가 베네타’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가 선보이는 보테가 베네타의 세계관은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며 매 시즌 진화를 거듭하는데, 런웨이 한가운데서 위용을 뽐낸 움베르토 보초니의 조각 작품 역시 컬렉션의 실루엣과 연결 고리를 지닌다. ‘보초니 실루엣’에서 가져온, 마치 조각 작품처럼 구조적인 형태의 룩이 한층 모던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변형되고 변주된것. 성큼 다가온 봄날 유용할 실용적 실루엣의 슬립 드레스, 파자마 디자인의 얇은 가죽 셔츠와 쇼츠, 부드러운 니트 터틀넥 드레스에 이어 고대 신화에서 영감 받은 요소를 강조한 보다 예술적이고 대범한 디자인의 룩이 연이어 등장했다. 물고기의 비늘이 연상되는 입체적인 디테일이 시선을 사로잡는 니트 컬렉션과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나부끼는 섬세한 깃털 장식 드레스, 완성도 높은 조각 작품처럼 유려하면서 견고한 형태감을 이루는 드레스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영감 받아 탄생한 플라워 모티프의 시스루 룩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것 없이 비범하지만, 길을 스쳐가는 수많은 이들이 질서 있게 이동하는 모습처럼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액세서리 컬렉션 역시 클래식한 멋과 위트를 갖춘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놀라움을 안겼다. 보테가 베네타를 상징하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완성한 위빙 백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었으며, 물고기를 닮은 무라노 글라스 소재의 위트 있는 핸들은 펄떡이는 생명력마저 느껴진다. 마치 양말을 신은 듯하지만 가죽으로 만든 삭스 부츠부터 기존의 개념을 전복한 투박하고 생경한 소재와 형태의 슈즈는 새 시즌 컬렉션을 유영하며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저는 ‘퍼레이드’라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축제를 위해 모인 다양한 이들이 끝없이 행진하며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하죠. 모든 사람이 환영받고 즐거워하는, 고리타분한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어떤 힘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살펴보는 게 흥미로워요.” 마티유 블라지의 말처럼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가 부드럽게 충돌하며 기대 이상의 아름다움과 창조적 동력을 만들어내는 장면의 면면을 새 시즌 보테가 베네타의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