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 앙투안 르쿨트르의 정신에 따라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는 혁신적인 태도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Made of Makers)’를 통해 우리는 워치메이킹과 예술, 기타 창의적인 분야의 실천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경험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을 찾고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CEO 캐서린 레니에(Catherine Re´nier)의 말이다. 워치메이킹 외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장인과 함께 창의적 협업을 진행해온 예거 르쿨트르는 올해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의 주인공으로 한국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인 강이연 작가를 선정했다. 강이연 작가는 워치스 앤 원더스 2023에서 선보인 노벨티 제품의 테마인 ‘The Golden Ratio(황금 비율)’를 바탕으로 ‘오리진(Origin)’ 3D
비디오 스컬프처를 제작했다. 잠실 롯데 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 광장에서 6월 2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전시 <THE GOLDEN RATIO ART SHOW>를 앞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3월, 워치스 앤 원더스 2023에서 예거 르쿨트르 CEO 캐서린 레니에와 함께 단독 기조연설을 했다. ‘수학적 개념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체계적인 영감을 더해준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흔히 황금 비율을 이야기할 때 파르테논신전이나 ‘모나리자’ 등을 거론하지 않나. 한데 이 주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외려 인간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대상에 신비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어 황금 비율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차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면으로 조사를 하던 중 반박의 여지가 없는 근거를 자연에서 찾았다. 솔방울의 형태, 해바라기 씨앗의 배형이 여지없이 정확한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명화나 명작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에 담긴 황금 비율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솔방울과 해바라기 씨앗은 굉장히 독특한 수학적 배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래야만 햇빛과 물을 최적의 상태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황금 비율은 최상의 생존 조건인 셈이다. 삶의 근원에 수학적 개념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원치스 앤 원더스 2023에서 전달하려 했다.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워치메이킹과 예술 간의 접점을 강하게 느꼈을 것 같다. 작가로서 워치메이킹에서 주목한 예술적 요소는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위스 발레드주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를 방문할 수 있었다. 고요한 호숫가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매뉴팩처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워치메이커 장인들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예술과 기술이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21세기의 시점에서 봤을 때 예거 르쿨트르는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에서 단지 기능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미학적인 완성도를 더해 이룩해내는 지점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내가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치메이킹은 그야말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이라 할 만했다. 아주 작은, 하지만 완벽하게 기능하는 우주. 경이로웠다.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는 황금 비율을 잘 보여주는 타임피스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 ‘오리진’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황금 비율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인문학적 관점을 어떤 방식과 철학으로 녹여내려 했는가? 지금까지 황금 비율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다른 렌즈를 쓰고 싶었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황금 비율을 표현하려 했다. 이를 자연에서 찾았고, 매뉴팩처가 자리한 발레드주라는 지역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지금까지 인류세와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작업해온 내 방식으로 황금 비율을 바라보고자 했다.
시계를 만드는 과정은 결국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경험이기도 하다. 지극히 상대적이고, 관념적인 시간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작업에 반영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작가로서 오랜 시간 시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평면 회화를 해오다 영상으로 전환했고, 영상에서 디지털에 주목했다. 디지털에서 대형 설치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융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도 결국 삼차원이다. 시간이 반드시 앞으로만 흐르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양자역학에서도 충분히 이야기된 내용이다. 나는 작업 과정에서 이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다. 내 작업은 재현하기 어렵다. 평면의 그림을 한 공간에 거는 개념이 아니라 때로 건물 전체를 래핑하기도 하고, 이번 프로젝트처럼 LED 스트럭처를 만들기도 한다. 결국 공간을 디자인해 작업해야 하며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작품을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특정 시간과 공간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시간과 수고를 들여 이 장소까지 온 관람객에게 나에게 할애하는 그 시간 동안 최상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그래서 늘 이에 대해 고민한다. 때로 좋은 작품은 단 10분이지만 마치 1시간 동안 경험한 것처럼 강렬하게 남을 때가 있지 않나.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개인적으로는 시카고에서 큰 프로젝트 하나를 하기로 예정돼 있다. 이와 동시에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를 위해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이 밖에도 구글과의 협업 등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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