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태피스트리(Tapestry)가 베르사체의 모회사인 카프리 홀딩스(Capri Holdings)를 인수한 가운데,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하우스 베르사체(Versace)가 갑작스럽게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베르사체는 2023년 가을 캠페인과 함께 새 시즌의 컬렉션 릴리즈에 맞춰 매거진 스타일 형태를 활용해 인스타그램 채널을 새롭게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베르사체가 새롭게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2023년 가을 캠페인 사진을 매거진 화보 형식으로 편집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2023 가을 캠페인은 지지 하디드(Gigi Hadid), 아녹 야이(Anok Yai), 안젤리나 켄달(Angelina Kendall), 카롤리나 스파코프스키(Karolina Spakowski) 등이 출연하여 흰색 배경에 올 블랙 룩을 착용해 컬렉션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죠. 베르사체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콘텐츠를 삭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러한 과감한 소셜미디어 전략은 패션계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2016년 4월 1일, 생 로랑에 여러 변화를 이끌었던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브랜드를 떠난다고 발표한 이후 베르사체의 세컨 라인인 베르수스(Versu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었던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에디 슬리먼의 후임자로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를 맡게 되었죠. 안토니 바카렐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이후 에디 슬리먼의 유산의 상당 부분을 지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SNS 상에서 에디 슬리먼 시절의 게시물을 전부 삭제한 후 자신이 처음으로 맡은 2017 S/S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발렌시아가(Balenciaga) 또한 인스타그램 계정 게시물을 정리한 이력이 있습니다. 2021년 7월7일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가 이끄는 발렌시아가의 인스타그램 속 사진이 쿠튀르의 부활을 앞두고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이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이후 52년만에 공개되는 오트 쿠튀르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을 커지게 만들었죠.
2018년 7월 다니엘 리(Daniel Lee)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Beneta)의 수장을 맡았습니다. 다니엘 리는 인트레치아노 기법을 유지하되 가죽의 크기를 넓히고, V 자를 연상시키는 삼각형 로고 포인트를 더해 보테가 베네타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선보였죠. 또한 쨍한 그린 컬러를 사용하여 ‘보테가 베네타 그린’을 탄생시키며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선보이던 중 2021년 1월 보테가 베네타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모든 공식 소셜 미디어 채널을 삭제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계정 삭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Issued by Bottega’라는 별도 사이트를 론칭하여 디지털 매거진 ‘Issue’를 계간으로 발행했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이들의 디지털 매거진은 독특한 비주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하며 그 동안 sns에 치우쳤던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22년 10월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는 버버리 2023 S/S 쇼를 선보인 후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의 역할을 다니엘 리에게 넘겼습니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며 파격적인 행보로 리브랜딩을 성공한 그이기에 버버리(Burberry)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모두가 주목한 가운데, 23년 2월 기존에 있던 버버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전부 삭제되었습니다. 이후 버버리는 같은달 6일 다니엘 리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버버리의 새로운 캠페인을 공개하였는데요. 캠페인에서 다니엘 리는 1901년경 새 로고를 디자인하기 위해 주최된 공모전의 우승작인 승마 기사 로고를 부활시켰습니다. 그는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와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탄생시켰던 볼드하고 날카로운 버버리 서체를 20세기 초 버버리 아카이브의 레터링에서 영감을 받아 더 얇고 부드러운 일렉트릭 블루 컬러의 서체로 대체하였습니다.
이렇듯 명품 브랜드들은 리브랜딩 계획에 따라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거나 이커머스 사이트를 폐쇄하는 시도를 감행하는데요. 다양한 명품 브랜드들이 과감한 소셜미디어 전략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돌연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전부 삭제한 베르사체가 앞으로 브랜드의 어떤 새로운 변화를 선보일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