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진정성이 중요해

푸른 용의 해, 2024년의 시작과 함께 마리끌레르는 새로운 제너레이션 잘파(Z+Alpha)를 조망했습니다. 피처팀의 임수아 에디터와 안유진 에디터는 알파 세대 초등학생과 제트 세대 교사를 아우르며 다각도의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특징을 콕 짚어낸 흥미로운 키워드가 모였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부터 #인플루언서블(Influenceable), #미이즘(‘ME’ism), #로 앤 리얼(Raw & Real)까지 실로 다양했죠. 밀레니얼 세대 편집장으로서 알파 세대 아이를 키우는 저는 깨알같이 자세한 설명과 코멘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론 동공이 확장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하 지만 이런 동의와 우려라는 양가감정이 과연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죠. 그리고 이전 세대의 잣대에서 벗어난 무경계 시대의 이 용감하고 매력적인 모험가들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니까요. 엄마의 평생지기이기도 한 제 열한 살 딸은 ‘프로젝토리’라는 커뮤니티 멤버로 활동하는데, 그곳엔 선생님과 학생의 개념이 없습니다. 프로젝트와 실험실을 결합한 이름을 붙인 프로젝토리에선 어른의 일방적인 가르침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크루로 표현되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상을 찾아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잘파 세대 초등학생인 아이는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대학생 크루들과 수평어를 쓰며 소통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며 동료애를 느끼기도 하죠.

유선애 피처 디렉터가 인터뷰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저자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는 요즘 대리님들을 언급합니다. 디지털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부장 님은 모르고 대리님이 아는 것들이 생겨났고, 이 부분에 대해 배움을 자청해야 한다는 논지였습니다. 사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이 시대는 부장님에게도 대리 님에게도 모두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존중’의 마음을 베이스로 탑재한 채,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로움에 함께 대처하는 자세 가 필요합니다. 이에 ‘Inclusivity’, 즉 친근한 포용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리끌레르도 이 변화의 시대에 ‘소통’을 위한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나아가 레거시 미 디어의 앞날에 대해 송길영 박사는 날로 진화하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도 콘텐츠의 고유성을 지키며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키워드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여기서 살포시 밝히자면, 2024년 새해 마리끌레르의 편집장으로서 제가 표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뉴 레거 시(New Legacy)’ 미디어입니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동시에 뉴미디어가 지닌 친근함과 순발력을 더하며 뉴 제너레이션과 긴밀히 소통하 는 마리끌레르 매거진의 청사진을 그려봅니다. 약간의 위트를 더해 마리 에디터들과 브랜드 담당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2023년 30주년을 맞이해 서른 살 마리가 되었지만 언제나 세 살처럼 프레시하게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포부입니다.


#새해를 희망하는 이야기

2024년을 여는 1월호 첫 커버, 글로벌 톱 패션모델 최소라와 루이 비통이 함께한 비주얼은 더없이 파워풀합니다. 저 역시 기대감으로 장효선 패션 에디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심야 촬영장에 들렀습니다. 이틀 전 유럽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한, 너무나도 반가운 얼굴 최소라를 만나자 순간 지난 에디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매력적인 모델의 데뷔 시절부터 함께 해온 수많은 촬영들, 서울뿐 아니라 파리와 LA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나 긴박하게 진행했던 특별한 화보들의 에피소드를 함께 상기하며 웃고 또 감회에 젖었습니다. 나의 에디터 시절 모든 화보에서 강인하게 빛나던 그 모습을 편집장이 되어 후배 에디터의 촬영장 에서 다시 목도하니 긴 여운이 더해졌고요. 그렇게 완성된, 2024년 새해를 여는 푸른 용에 빙의한 최소라의 커버 화보는 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느껴집니다. 나아가 최인선 에디터가 소개한 해외 맨즈 쇼를 장식한 잘파 세대 K-모델들의 모습도 얼마나 개성 넘치던지요. 한편 슬로 에이징이란 화두를 다 룬 김경주 뷰티 에디터의 기사는 에디터 특유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듯 풍부한 정보를 다정하게 전합니다. 김상은 뷰티 에디터의 감도 높은 목욕 재계 화보 역시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 첫날을 열고 싶게 만듭니다. 이영주 에디터가 전하는 잘파 세대의 운동법 또한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웨이트트레이 닝을 하며 땀을 빼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마인드풀 리추얼 역시 잘파 세대가 선호하며 즐기는 운동 중 하나라는 점을 상기시켰죠. 이처럼 새해엔 마리 뷰 티팀의 조언대로 나를 더 아끼며 천천히 나이 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매일의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잠시 스위치를 끄고

온·오프가 필요한 월간 마감을 하며 잠들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동시에 대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AI가 아닌 인간의 몸이라는 시간과 에너지의 유한성을 지닌 채, 마치 파리와 LA와 서울의 시차를 감당하는 것 같은 삶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유한성을 절감하는 데드라인 주간의 몸살도 평소보다 10배는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독감이 유행하는 요즘, 아트팀 자리부터 피처팀과 뷰티팀을 넘어 패션팀 자리까지 전파된 독감으로 에디터들은 골골대며 마감을 위해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마감이 뭐 대수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지켜내는 이들이 저는 더없이 용맹하게 느껴집니다. 마리 에디터스 칭찬에 이어 또 하나 슬며시 자랑거리를 꺼내어봅니다. 얼마 전, 반가운 DM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당장 내일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1이라니… 마리끌레르, 그리고 박 편집장님과 새로운 시작을 ‘우아하고 씩씩하게’ 함께 맞이하겠습니다.” 서울에서 운영 중인 헤어 숍에 <마리끌레르> 매거진을 비치하고, 매번 에디 터스 레터를 눈여겨본다는 그 진정 어린 응원의 메시지에 따스한 감동과 힘을 받았습니다.

마리끌레르가 자랑하는 고정 칼럼인 월드 리포트. 1월호를 여는 첫 월드 리포트의 ‘미라주’ 프로젝트 사진은 보고 또 바라보며 시간을 들여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사진가 래티샤 드 라 빌위셰는 눈과 빙하가 이뤄낸 풍경을 마주하며 느낀 감상을 프레임에 담아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신의 일상을 잠깐 멈춰 보라는 메시지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자연과 잠시나마 연결되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주변의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고, 그 감각을 만끽해 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당신의 삶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읽힐 거라고 믿는다. 그 감상이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오래 공명하기를 바란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낯선 자연이 우리 삶에 전하는 풍요와 평안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연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마리팀 역시 언제 스위치를 잠시 내릴 수 있을지 때를 보며 지나친,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1월을 맞이할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이 있어서 또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이 모든 이유와 지속 가능한 상황에 감사하며 말이죠. 무엇보다 주위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얼마 전, 더없이 긴장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업계 여러분과 다 함께 연말 분위기를 만끽 한 마리끌레르 ‘2023 Year-end Party’ 즉 ‘마리 포차’를 성황리에 치렀습니다. 올 한 해 마리끌레르에 보내주신 응원과 관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2024년 새해에도 뜨거운 사랑 부탁드립니다. 메리 마리(MerryMarie)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