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이 있다. 트위드, 까멜리아, 더블 C…. 그리고 이번 시즌, 샤넬 패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또 하나의 오랜 상징을 새롭게 묶어냈다. 2025/26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테마는 바로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해 마지않던 ‘보(Bow) 장식’이다. 초대장에는 컬렉션의 주제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었다. 검은 새틴 리본으로 감싼 카드에 적힌, “느슨하게 묶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샤넬 리본은 매력을 발산한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를 보고 쇼를 한껏 고대하던 파리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이었다. 쇼장에 들어서자 지붕을 향해 나선형으로 뻗은 약 20m 높이의 검은 리본 오브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매듭짓지 않은 리본이 펄럭이는 형태의 비정형적 구조물은 시노그래퍼 윌로 페론(Willo Perron)이 디자인한 것으로, 샤넬 쇼장인 그랑 팔레에 거대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비율을 왜곡하고 서로 다른 요소를 중첩시켜 컬렉션을 풀어가겠다는 일종의 암시처럼 느껴졌다. 쇼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런웨이를 밟은 건 샤넬의 뮤즈 중 한 명인 모델 비토리아 세레티. 고전적인 트위드 재킷과 리본이 달린 시스루 튈 스커트를 레이어드한 그의 룩은 다분히 보호 시크나 코케트 코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도 아주 샤넬스러운 방식으로, 차분하고 우아하게. 이후로는 그야말로 리본의 향연! 리본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디자인을 펼쳐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본은 소매, 목, 슈즈 등 어디에나 나풀거리며 보는 이들을 매혹했고, 퍼퍼 재킷을 벨벳 리본으로 칭칭 감싸거나, 피날레에는 비대칭 드레스에 수십 개의 새틴 리본을 장식하며 예상치 못한 변주를 이어갔다. 레더, 시스루 등 다양한 소재로 리본 형태를 구현한 백 또한 관객의 시선을 뺏은 관전 포인트.

리본이 달린 시스루 튈 스커트를 레이어드한 룩으로 포문을 열었다.





슈즈의 굽 형태로도 등장했다.

사랑스러운 샤넬 식 코케트 코어 룩.



샤넬 DNA의 정수를 보여준 것은 리본만이 아니었다. 코코 샤넬이 사랑한 보석, 진주 역시 중요한 키워드였다. 코코 샤넬은 블랙 미니드레스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진주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스타일을 즐겼는데, 2025년 이 진주 네크리스가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어 크로스 백으로 재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진주를 연상케 하는 미노디에르 백은 탁구공만 한 크기로 제작해 하나의 오브제로 자리 했고, 슈즈의 힐에서도 진주가 포착되었다. 하우스를 상징하는 트위드 수트에 동일한 소재의 보터 햇, 장갑, 핸드백, 부츠를 매치한 올오버 룩도 돋보였는데, 이 흥미로운 조합은 마치 2019년 칼 라거펠트의 마지막 샤넬 컬렉션을 오마주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이번 시즌, 샤넬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디렉터의 공백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탐색했고, 코코 스타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샤넬의 기둥을 이루는 유산을 해석한 각자의 시선이 한데 모인 결과다. 이제 하우스의 전통은 더욱 단단히 뿌리내렸다. 그 위에 새로운 샤넬의 시간이 덧입혀질 차례다.

쇼에 참석한 가수 타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