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베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옷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익숙한 아이템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변모하고, 형태와 소재는 우리가 익히 알던 의복의 감각을 살짝 비틀어놓은 모습이 돋보이니까. 오랜 시간 이어온 하우스의 가죽 가공 기술에 실험적 상상력을 더한 컬렉션은 로에베 특유의 장난기와 위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뤘다.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마치 정지된 순간을 포착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레이스와 리본 장식을 더한 슬립 드레스와 파자마 톱은 몰딩 기법과 3D 프린팅 과정을 거쳐 광택과 점성을 지닌 라텍스로 탄생했고, 코트 역시 소매와 포켓, 여미는 장치에 이르기까지 구성 요소를 정교하게 몰딩해 트롱프뢰유 효과를 꾀했다. 어떤 옷은 흐르는 물성이 굳어가는 순간을 담은 듯 보이고, 또 다른 룩은 공기를 머금은 것처럼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단단한 구조와 유연한 움직임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것. 이러한 아이디어는 소재에서도 이어진다. 파카와 스카프는 레이저 커팅과 본딩 공정을 통해 풍성한 형태로 재해석되었고, 밀폐된 솔기를 구현하기 위해 특수 마감이 더해졌으며, 파스텔컬러 코트와 코듀로이 팬츠는 푸들의 털을 다듬는 방식에 착안한 그러데이션 트리밍을 적용해 독특한 텍스처로 완성됐다. 스포츠웨어와 밝고 경쾌한 색채 역시 이번 컬렉션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다. 러버 스니커즈와 다이브 슬링백은 기능적 감각이 돋보이고, 자연을 옮겨놓은 생동감 넘치는 컬러 팔레트는 룩의 촉감과 형태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독일 작가 코시마 폰 보닌(Cosima vonBonin)의 작업도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했는데, 그가 발견한 플로럴 패턴과 깅엄 체크 패브릭은 안감이나 라텍스 의상 위에 수작업으로 그려졌고, 해양 생물 등 다양한 모티프는 액세서리로 재해석되며 옷에 유쾌한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창립 180주년을 기념하는 아마조나 180 백에도 참신한 감각이 담겼으며, 플라멩코 클러치 백은 시그니처 기법으로 완성해 블루와 화이트 모자이크 패턴을 드러냈다. 새롭게 공개한 위스커 백은 구조적 형태와 유약을 바른 가죽으로 구현한 부드러운 디자인이 어우러지며 단단함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실루엣을 이뤘다.

이번 컬렉션은 로에베가 오랜 시간 이어온 공예 전통을 기반으로 소재와 형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확장한 주목할 시도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가 집요히 이룩한 기술적 실험과 장인정신, 그리고 위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로에베 특유의 견고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냈다. 때로는 기능성에 집중하고, 때로는 장난기 어린 상상력이 빛을 발하며, 이번 시즌 로에베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흥미로운 균형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