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손목이 가장 돋보이는 계절입니다. 소매가 짧아질수록 시계와 브레이슬릿을 여럿 레이어링하는 스타일링의 빈도가 늘어나지만, 모든 시계가 브레이슬릿과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차이를 회사를 다니며 배웠습니다. 남성 워치를 주로 취급하는 IWC 샤프하우젠에서 일하다가, 주얼리와 시계의 비중이 거의 반반인 까르띠에로 이직하면서 손목 위 스타일링을 바라보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IWC 샤프하우젠, 예거 르쿨트르, 블랑팡처럼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시계 전문 메종에서는 손목 위 시계 하나가 완전한 주인공이 됩니다. 반면 까르띠에, 불가리, 피아제처럼 주얼리와 시계를 함께 전개하는 메종에서는 그 시계가 만들어내는 ‘장면’을 함께 봅니다. 패션하우스들의 파인워치 컬렉션도 비슷하고요. 시계 하나가 얼마나 존재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다른 요소들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룩 전체를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함께 고려합니다

그래서 까르띠에로 처음 이직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제품 레이어링’이었습니다. 당시의 저에게 시계는 혼자 빛나야 하는 물건이었거든요. 브레이슬릿과 함께 착용하면 시계에 스크래치가 날 것 같았고, 어렵게 고른 시계의 존재감도 흐려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두 해 다닐 회사도 아니었고, 이 브랜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링이라면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시계와 브레이슬릿을 함께 착용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가진 제품들이었습니다. 시계도, 브레이슬릿도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사들이다 보니 막상 함께 착용해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산 물건들인데도 서로의 매력을 살려주긴커녕 반감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화보와 콘텐츠 촬영이 있을 때마다 시계와 브레이슬릿의 조합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어떤 조합은 유난히 자연스럽고 어떤 조합은 아무리 비싸고 인기가 좋은 제품끼리 매치해도 어색한 이유를 찾아본거죠. 남성 시계도, 여성 시계도, 주얼리도 직접 만져보고 올려보고 스타일링하는 시간이 쌓이자 어느 순간 제 눈에 일정한 패턴이 보였습니다.

혼자 착용했을 때 아름다운 시계와 레이어링을 했을 때 더 빛이 나는 시계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브랜드는 달라도 결국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결국 이 두 가지 기준만 알아도 브레이슬릿과 레이어링하기 좋은 시계를 고르는 일은 훨씬 쉬워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기준 #1. 브레이슬릿과 ‘거리’를 만들지 않는 시계


시계를 브레이슬릿과 함께 착용할 계획이라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케이스의 크기와 비율이었습니다. 시계가 커질수록 케이스가 손목 중앙을 넓게 차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브레이슬릿과의 물리적인 거리도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시계 하나가 손목의 중심을 장악해버리면 브레이슬릿은 옆에 떨어진 외딴 섬처럼 보이기 쉽죠. 여기에 브레이슬릿을 하나, 둘 더할수록 조화로운 레이어링이라기보다 과하다는 느낌만 강해집니다.

반대로 미니 사이즈의 세로형 워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케이스의 가로폭이 좁아 브레이슬릿이 시계 바로 옆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손목 위에 빈 공간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덕분에 시계와 브레이슬릿이 따로 노는 느낌보다 마치 한 세트처럼 조화롭게 연결되죠.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까르띠에 탱크 아메리칸, 에르메스 난투켓, 부쉐론 리플레처럼 세로 비율이 긴 워치들이 레이어링에 특히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좁은 폭의 케이스 덕에 손등부터 팔꿈치로 이어지는 팔 하완의 길이가 시원하게 노출되며 팔이 더 길어보이는건 보너스!



기준 #2. 브레이슬릿이 되어주는 시계


첫 번째 유형이 브레이슬릿을 ‘밀어내지 않는 시계’라면, 두 번째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예 시계 브레이슬릿 자체가 주얼리처럼 디자인된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시계의 브레이슬릿이 하나의 주얼리처럼 디자인되어, 다른 브레이슬릿과 레이어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계인 거죠.

브레이슬릿 버전의 까르띠에 베누아 워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시계를 보고 있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클래식한 다이얼보다도 손목을 감싸는 뱅글 타입의 유려한 골드 브레이슬릿이죠. 이런 시계들의 브레이슬릿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저 손목에 시계 케이스를 묶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슬릿 자체가 양옆의 주얼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러브 브레이슬릿이던, 세르펜티 바이퍼 브레이슬릿이건, 알함브라 5 모티프 브레이슬릿이건 함께 착용해도 시계를 따로 착용한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브레이슬릿 컬렉션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겁니다.

에르메스 켈리 워치 미니 모델은 마치 브레이슬릿 위에 켈리 백의 클로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형태가 매력적입니다. 라 미니 디 마이 디올 워치는 브레이슬릿 표면은 물론 다이얼까지 디올의 상징인 까나쥬 패턴으로 연결되어 있어, 브레이슬릿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샤넬 프리미에르 갈롱 워치는 샤넬 재킷의 윤곽을 장식하는 꾸뛰르 브레이드(galon)에서 영감을 받은 뱅글 형태의 브레이슬릿으로 패션 하우스의 DNA를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이런 모델들은 손목 위에서 시계만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계 브레이슬릿 역시도 하나의 주얼리처럼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시계를 더한 느낌보다 주얼리 하나를 더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브레이슬릿을 함께 착용해도 각각 경쟁하지 않고, 역시 하나의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죠.


요즘의 저는 브레이슬릿 레이어링을 그토록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뒤 구매한 세로형 시계들을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베누아 알롱제 워치, 탱크 아메리칸 워치 미니 모델) 거의 매일 브레이슬릿과 함께 착용하고 있죠. 이제는 마음에 드는 브레이슬릿을 발견하면 ‘하나만 더 레이어링해볼까?’ 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이렇게 팔찌를 더 레이어링 못해 안달을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팔이 짧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