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본연의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모델 박세라. 그가 여느 때처럼 현재에 오롯이 집중한 채 담대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블루 사파이어가 어우러진 샹스 인피니 이어링 모두 Fred.







오늘 촬영을 마치면 바로 대전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간 제주도와 전라남도 무안에서 서울을 오갔고, 2025년에는 대전으로 이사했다. 늘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거점을 두는 이유가 있나? 제 청춘이 머문 서울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느 순간 그 이면의 모습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곳에서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했는데, 언젠가부터 서울을 벗어나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이곳에 안주하기보단 변화하고 싶었죠. 그래서 제 고향이자 가족들이 있는 무안, 틈틈이 찾았던 제주도로 옮겨 다니면서 살게 됐어요. 최근에는 대전으로 이사했고요.
대전에서 지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나? 대전은 부모님 댁이 있는 무안과 일터가 있는 서울의 중간 지점이라 선택한 곳이에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이곳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잠도 잘 자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을 충전하는 느낌을 받곤 해요.
최근 인스타그램에 “실재하는 모든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존재하는 동안 잘 쓰인다면, 잘 쓰였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고 감사한 일이겠지”라고 썼다. 실재하는 모든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살아 있는 생명체든, 어떠한 사물이나 물건이든, 혹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무엇이든 마찬가지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것이 당장 오늘일지 내일일지 우린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제가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잘 쓰인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진심으로요.
2004년부터 패션모델의 길을 걸었고, 20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전라남도 무안에서 온 시골 소녀가 2004년부터 현재까지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있다니!(웃음) 요즘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저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설 때면 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기분이 들어요. 오늘 마리끌레르와의 촬영 역시 그렇죠.(웃음) 생각해 보면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많은 것이 변했어요. 얼굴엔 주름살이 늘어났고, 새치도 하나둘 나기 시작했거든요.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카메라 앞에서 미친 듯 날뛰고 싶은 제 열정일 거예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죠. 어쩌면 몰입해야 하는 작업물에 대한 책임감을 그때보다 더 선명하게 느끼며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20년 전 모델로 처음 데뷔하던 순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나? 2004년 가을이었어요. 한혜자 선생님의 서울컬렉션 쇼. 그날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됐었거든요.(웃음) 눈부신 조명이 비추는 런웨이 위에 선 내 모습. 그날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못 잊을 거예요.
혹시 2010년, 마리끌레르와의 첫 촬영도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기억나요. 서울 신사동에 있는 쿠바 분위기의 한 카페였던 것 같은데, 사진가 홍장현 실장님이 저를 굉장히 퓨어하고 아름답게 담아줬어요. 그 촬영 이후 일도 조금씩 늘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패션모델의 어떤 점에 사로잡혀 이토록 오랜 시간 경이로운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나? 저는 촬영 현장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제 모습을 사랑해요. 때때로 오직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찬사에 희열을 느끼죠. 촬영할 때마다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해요. 그 모습이 패션 관계자들에게 좋은 선택지라는 믿음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패션모델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남모르는 고통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마주하며 힘든 순간들을 극복했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그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면 고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고통은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고통은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라 여기는 태도가 보기 좋다. 우리는 가끔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나를 다독이는 거죠. 다시 일에 집중해야 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대중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따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종종 먼저 다가와 응원하고 격려 해주는 분들을 만나요. 그때마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죠. 알아봐 주는 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엇보다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려 노력하고요. 때때로 찾아오는 나약함과 싸우면서요.(웃음)
건강하면서도 매력적인 몸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다면? 집에 있을 때 옷을 잘 안 입고 지내요.(웃음) 그때그때 몸을 수시로 체크하는 편이죠. 몸이 조금 무거워졌다고 느끼면 평소보다 먹는 양을 줄이고,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 상태를 확인하는 거죠. 모델 박세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꾸밈없는 매력이랄까? 피부의 주근깨도, 주름도 숨기지 않아서 오히려 당당해 보이고 멋지다. 저도 한때는 남들을 따라 하려 애쓴 적이 있어요. 하지만 모방할 수 없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더라고요.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제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얇은 피부에 흩뿌려진 주근깨를,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주름을, 개성 있어 보이는 굵은 뼈대를 인정하며 사랑하기 시작했죠. 그러자 내면에 평온이 찾아왔고, 이것이 나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러움은 결코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편하죠.
일하면서 ‘내가 진짜 잘하고 있다’고 느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촬영 현장에 있는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요! 그리고 쇼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옷을 나답게 멋지게 소화했을 때(웃음)!
앞으로 패션모델 박세라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은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한, 여전히 모델 박세라이고 싶어요. 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어떤 모서리를 가진 존재로 말이죠.
2026년을 맞았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현재 운영하는 사업체인 ‘세라네 텃밭’을 안정화시킨 후, 작은 오프라인 가게를 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자연에서 얻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모델이 아닌, 인간 박세라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누구에게나 건강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그게 제 오랜 꿈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