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THE CHESSBOARD

워치스 앤 원더스가 시작되기도 전 이미 팔려버려서(!) 팔렉스포에서는 실물 모형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화제의 작품. 체스판 위의 지배자 퀸 피스는 다름 아닌 가브리엘 샤넬이다. 이곳에 다이얼이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그의 의상에 적용한 ‘트위드 세팅’ 기법. 서로 다른 크기의 다이아몬드와 화이트 골드 비즈를 직조하듯 세팅해 샤넬의 상징적인 트위드 질감을 구현했는데, 얼핏 보면 실제 직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BVLGARI

SERPENTI TUBOGAS GOLD & STEEL

옐로 골드 스터드가 리드미컬하게 박힌 스테인리스 스틸 투보가스 브레이슬릿의 거친 무드에 마더오브펄 다이얼과 다이아몬드 베젤로 우아함을 얹었다. 그런데 그 조합이 의외로 조화롭다. 투보가스 브레이슬릿은 산업적인 가스관 구조에서 영감받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로마의 화려함과 금속의 ‘쇠 맛’이 공존하는 지극히 불가리스러운 피스라고 할 수 있다.

CHOPARD

L’HEURE DU DIAMANT

‘다이아몬드의 시간’이라는 이름처럼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역시 다이아몬드다. 왕관처럼 공중에 띄워 세팅해 스톤이 더욱 커 보이게 만드는 쇼파드 특유의 크라운 세팅 기법은 여전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소용돌이처럼 배치해 보다 유려하고 관능적인 인상을 준다. 아카이브 피스에서 영감받아 춤을 추듯 손목을 타고 흐르는 플루티드 링크 브레이슬릿까지 더해져 1970년대 하이 주얼리 워치 특유의 글래머러스한 맛이 살아난다.

FREDERIQUE CONSTANT

MANCHETTE

프랑스어로 ‘소매’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커프 브레이슬릿에 가까운 외관이다. 1980년대의 유산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튀르쿠아즈 다이얼과 옐로 골드 PVD 코팅 브레이슬릿 조합에서 화려했던 사교계의 파티 분위기가 느껴진다. 인상적인 건 합리적인 가격과 놀라운 수준의 피니싱.

ROLEX

OYSTER PERPETUAL 36

팔렉스포에서 모두의 어깨에 걸려 있던 강렬한 패턴의 에코백. 오이스터 100주년을 맞아 선보인 오이스터 퍼페추얼 36 다이얼의 패턴이었다. 1970~1980년대 모델의 ‘주빌리 모티프’에서 영감받아 로고를 패턴처럼 반복 배치한 팝한 컬러감의 모노그램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아케이드 게임장이 떠오른다. 10개의 컬러를 한 번에 찍어낸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색씩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완성했다고.

PANERAI

LUMINOR FORGED TITANIUM PAM01629

파네라이는 부스 한가운데 해군 잠수부 훈련용 탱크를 본뜬 거대한 설치물을 세워, 1950년대 이탈리아 해군 특수부대를 위해 제작한 군용 시계라는 뿌리를 정면으로 과시했다. 이번에 선보인 시계들 역시 특유의 거대한 케이스와 샌드위치 다이얼, 묵직한 크라운 가드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다의 물결 혹은 카무플라주 패턴처럼 보이는 케이스의 독특한 무늬.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티타늄을 압축해 단조한 티타늄으로 제작한 덕분에 거대한 사이즈와 달리 가벼웠다!

ZENITH

G.F.J. CALIBRE 135

짙은 녹색 위로 붉은 반점이 번지는 오묘한 매력의 블러드스톤 다이얼 때문인지 오래된 연금술 오브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우아한 외관 아래에는 1950년대 천문대 크로노미터 대회를 휩쓸던 전설적인 칼리버 135가 들어 있다. 올해 161주년을 맞은 제니스의 역사를 반영해(!) 단 161피스만 제작되는데, 천연석 특성상 모두 문양이 다르다. 극한의 정확도를 추구한 무브먼트 위에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패턴을 올려놓다니, 천문학자와 연금술사의 합작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VACHERON CONSTANTIN

HISTORIQUES AMERICAN 1921

사포로 곱게 문지른 듯한 다이얼과 빈티지한 아라비아숫자 인덱스, 브레게 핸즈의 조화. 이 모든 것이 클래식한데 이 시계는 이상하게 ‘힙’하다. 개인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매력은 고전적인 디자인과 묘한 고딕 무드의 말테 크로스 로고가 이루는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모델은 기운 다이얼과 귀퉁이의 크라운 덕분에 그 언밸런스함이 더욱 극대화된다. 1921년 단 24개만 제작했고, 그 중 한 목사에게 판매된 피스가 남아 있었기에 복각 가능했던 아메리칸 1921. 괜히 그 목사님께 감사하게 된다.

H. MOSER & CIE.

STREAMLINER PUMP

리복 펌프,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시계가 되어서. 이 시계는 8시 방향 푸셔를 한 번 누를 때마다 1시간 이상의 파워 리저브가 확보되는 기술력을 보여준다. 완충 이후에도 단순한 재미를 위해 계속 누를 수 있다. 모저앤씨는 이 장난 같은 메커니즘을 진지하게 구현해냈다. 말 그대로 ‘뽐뿌(pump)’를 자극하는 시계.

TUDOR

MONARCH

종이 질감의 파피루스 다이얼과 아라비아숫자, 로마숫자가 뒤섞인 인덱스. 캐릭터가 꽤 확실하다. 얼핏 보면 단정한 드레스 워치 같지만, 금속을 툭 잘라낸 듯한 케이스의 ‘칼각’에서 튜더 특유의 묵직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튜더는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기념 시계나 헤리티지를 요란하게 내세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문득 PR 매니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기념하기엔 우리(튜더)는 아직 너무 젊어요!”

CARTIER

TORTUE

제네바에서 가장 오래 손목 위에 올려본 시계. 거북이 등딱지에서 영감 받은 케이스는 손목에 착 감기듯 밀착되고, 특히 이번 시즌 등장한 미니 사이즈는 사랑스러운 매력까지 겸비했다. 2024년 아카이브를 복각하는 프리베 컬렉션으로 처음 재발매한 후 올해부터 정규 컬렉션으로 자리 잡은 똑뛰. 아직 흔하지 않다는 점도 좋다. 까르띠에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잠재력이 충분한 시계.

VAN CLEEF & ARPELS

LADY RETROUVAILLES CÉLESTES

에나멜과 다이아몬드로 펼쳐낸 붉은빛 천상의 다리 위에서 다시 만난 베가(직녀)와 알타이르(견우)를 표현한 작품. 특히 로즈 컷 다이아몬드로 구현한 얼굴에 표정은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희한하게 감정이 읽힌다. 백케이스에는 데네브까지 자리하며 ‘여름의 대삼각형’을 완성한다. 반클리프 아펠이 그려내는 설화는 이토록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PIAGET

SWINGING PEBBLES

과거부터 오너멘털 스톤을 주연으로, 다이아몬드를 조연으로 활용하는 남다른 행보를 보여준 피아제. 폭풍의 돌이라고도 불리는 시원한 블루 컬러의 피터사이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이아몬드는 반짝임을 더하는 정도로만 활용한 점에서 대담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쇄골 위에서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골드 체인까지. 보고 있으면 왠지 재즈의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다. 괜히 칵테일 한 잔 주문하고 싶어지는 시계랄까.

JAEGER-LECOULTRE

REVERSO ONE SAKURA

홋카이도라 하면 보통 소복이 쌓인 눈을 떠올린다. 그런데 예거 르쿨트르가 그린 그곳의 풍경에는 벚꽃이 피어 있다. 아직 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찰나의 벚꽃. 블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눈발처럼 자연스럽게 번지는 스노 세팅 기법으로 흩뿌리고, 금속 표면을 파낸 뒤 에나멜을 채워 고온에서 여러 번 구워내는 그랑 푀 샹르베 에나멜 기법으로 벚꽃과 두루미를 표현했다. 이 아름다운 아트 피스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왜 홋카이도의 봄에 주목했는지 알 것도 같다.

ROGER DUBUIS

EXCALIBUR LADY OF THE LAKE

아서왕 전설 속 엑스칼리버를 건네는 비비안을 칭하는 ‘호수의 여인’. 마치 잔잔한 호수 같은 마더오브펄 다이얼과 상반되는 날렵한 핸즈와 노치드 베젤의 조화가 묘한 긴장감을 이룬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그동안 남성 영웅 중심으로 전개되던 엑스칼리버 컬렉션 세계관을 처음으로 여성의 서사로 풀어냈다는 점.

AUDEMARS PIGUET

150 HERITAGE

작년 창립 150주년을 맞은 오데마 피게. 올해 팔렉스포에 돌아온 그들이 지난해에 꺼내지 않은 마지막 카드를 공개했다. 이름하여 150 헤리티지로, 미니트 리피터와 퍼페추얼 캘린더, 플라잉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등 1천99개의 부품으로 40가지 기능 및 22개의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한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포켓 워치다. 150년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탁월한 선택이 있었을까 싶다.

TAG HEUER

MONACO EVERGRAPH

여성의 손목 위에서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가 살아난다고 느껴지는 모나코. 이 모델은 마치 자동차의 섀시를 새로 짜듯이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했다. 크로노그래프의 스타트, 스톱, 리셋 기능을 담당하던 기존의 레버와 스프링 구조 대신 얇은 금속 블레이드가 튕기듯 작동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적용한 것. 아방가르드한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마치 풀 파워 상태의 레이싱카 같은 시계다.

IWC

BIG PILOT’S WATCH PERPETUAL CALENDAR CERALUMEⓇ

마치 격납고에서 막 나온 테스트 기체 같은 순백의 파일럿 워치. 그런데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소재 개발에 진심인 IWC답게, 이번에는 세라믹 파우더와 슈퍼 루미노바Ⓡ 안료를 결합한 ‘세라룸Ⓡ(CeralumeⓇ)’ 소재로 제작해 어둠 속에서 시계 전체가 비현실적인 푸른빛을 띤다. 조종석에서는 물론, 일상에서도 든든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A. LANGE & SÖHNE

LANGE 1 TOURBILLON PERPETUAL CALENDAR “LUMEN”

독일 엔지니어가 사이버펑크 장르를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자외선을 투과하는 반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털 다이얼 아래로 퍼페추얼 캘린더와 투르비용, 초대형 데이트, 월 정보를 표시하는 외곽 링, 문페이즈의 밤하늘까지 초록빛으로 은은하게 떠오른다. 루멘의 야광은 일반적인 그것처럼 또렷하게 빛나기보다 마치 극장 간판의 네온처럼 부드럽게 번져 나온다. 그래서일까? 이 복잡한 시계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HUBLOT

BIG BANG RELOADED KYLIAN MBAPPÉ

축구 선수 킬리안 음바페라는 캐릭터를 시계로 형상화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빠르고,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번개처럼 뻗은 옐로 컬러 포인트, 스켈레톤 다이얼과 더불어 숫자 ‘10’ 인덱스에만 킹 골드 톤으로 포인트를 준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그의 등번호를 반영한 디테일이다. 마치 게임 속 아이템 같기도. 베젤 6시 방향에 새겨진 그의 모토, ‘자신을 믿어라(Trust Yourself)’를 보면 괜히 기세가 오르는 기분이든다.

HERMÈS

SLIM D’HERMÈS ROAAAAAR

‘크아아아앙(ROAAAAAR)’이라는 귀엽고도 위협적인 이름이 붙은 시계. 들여다보면 그냥 그림이 아니다. 무려 10종의 나무를 퍼즐처럼 잘라 맞춘 우드 마케트리 기법으로 사자의 갈기 하나까지 쌓아 올린 디테일에는 특유의 유머와 집요할 정도의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포켓 워치라는 점까지 왠지 에르메스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