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은 물론 확고한 정체성, 동시대성과 미술사적 의의까지.
올해 키아프 서울의 하이라이트 섹션이 주목하는 작가 10인의 면면.

이재삼 LEE JAE SAM

Grimson Gallery

이재삼(1960, 한국)은 목탄이라는 재료를 통해 자연의 심연을 탐구하는 회화 작가다. 주로 ‘검은 공간’이라고 칭하는 달빛에 비친 풍경을 표현한다. 국내뿐 아니라 싱가포르, 중국, 뉴욕, 제네바 등에서 개인전 및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이재삼, ‘달빛’, 캔버스에 목탄, 194×51cm, 2019
이재삼, ‘달빛’, 캔버스에 목탄, 227×910cm, 2016

“풍경이 아닌 풍광을 그린다”라고 말할 정도로 오랜 시간 ‘달빛의 정서’에 천착해왔다.

달빛은 감성과 마음의 빛이며 가슴 사무치게 심금을 울리는 빛이다. 서구의 풍경은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해 바라보는 것인데, 나의 풍광은 함께 호흡하고 스며서 포옹하는 세계다. 목탄화 초기에 인물을 그리다가 숲의 공간으로 주제를 전환하면서 검은색으로 달빛의 색채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밤은 피부에 스치는 바람과 풀벌레 소리, 숲의 냄새 등 몸 전체의 오감과 육감을 동원해야 보이는 것인데, 목탄으로 채색하는 달빛 그림은 시각을 넘어 달빛의 소리, 냄새, 기운을 화면에 품으려는 의지다.

목탄이라는 재료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

작가가 어떤 재료를 선택한다는 건 작품 철학이나 정신을 물질화하는 것이다. 30대 초반, 나뭇가지와 돌 오브제 위에 먹, 잉크, 흑연, 연필로 검게 코팅하던 드로잉 작업이 목탄의
검은 미학으로 이어졌다. 목탄은 나무를 태운 숯이다. 나무가 밀폐된 숯가마에서 불살라진 후, 재가 되기 전의 자태를 보면 다소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목탄을 숲의 육신이 최후에 남긴 영혼의 사리에 비유하고 싶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두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화폭에 펼치는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작가의 마음은 뿌리이며, 생각은 줄기이고, 손은 꽃잎이고, 그림은 열매이다. 그 열매가 세상에 나아가 관람객과 예술 애호가를 만나고 소통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가 최고의 사회생활이자 권력을 지닌 순간이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을 직접 소개한다면?

‘심중월(心中月)’, 즉 마음속의 달을 의미하는 작업들이다. 마음 깊이 비친 달은 자신을 비추는 내면의 거울이고, 저 너머 이상향의 심상 풍경이다. 12폭 매화나무가 있는 달
빛 정경은 꿈속, 무의식 속에서 생의 환희를 찬미한다. 적막한 달빛 아래 암향을 뿜어내며 꿈틀거리는 수많은 매화꽃, 나뭇가지의 영적인 기운을 마음에 품고서 달빛과 교감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본인만의 색을 지켜나가며 작업할 수 있던 힘은 무엇인가?

작가는 자신의 모순마저도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언제나 시대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 시대가 간과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나아가 작가의 소명은 세상
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로 이루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