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VATORE FERRAGAMO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디지털 쇼는 한 편의 공상과학영화 같았다. SF가 허락하는 무한한 상상력과 기술을 거듭 혁신해온 하우스의 다양한 유산에서 영감 받았기 때문이다. 폴 앤드루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계급, 색깔 또는 신념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혔고, 아이러니하게 ‘유니폼’이라는 가장 계급화된 의복의 형태를 차용해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컬렉션은 유니폼 특유의 직선적인 실루엣은 유지하되 개인의 개성을 조금도 가리거나 제한하지 않는 경쾌하면서도 특징 있는 디자인으로 가득했고, ‘유토피아적 미래의 유니폼’이라는 그의 아이디어를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쇼가 끝난 후, 슈즈 디자인 총괄 디렉터에 이어 하우스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모자람 없이 수행한 폴 앤드루가 하우스를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이룩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세계가 꽤 마음에 들었기에 아쉬움도 남지만, 새롭게 변모할 하우스의 다음 시즌을 기대해본다.

SALVATORE FERRAGAMO

“올봄에는 집에 틀어박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고전 영화를 다시 감상했습니다. <마니(Marnie)>(1964), <새(The Bird)>(1963), <현기증 (Vertigo)>(1958) 같은 작품 말이에요. 이번 컬렉션은 <현기증>의 초현실적 색 포화도를 반영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 앤드루의 말처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새 컬렉션은 히치콕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색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애시드 오렌지와 브라운, 버건디와 은은한 핑크의 고급스러운 조합은 이번 시즌 컬렉션 중 가장 인상 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동시에 낙낙한 느낌을 주는 실루엣은 모던하기 그지없으며, 발등이 깊게 파인 고전적인 형태의 펌프스 힐이나 얇은 가죽끈을 엮어 만든 슬링백 힐은 슈즈 부문 디렉터로 저력을 드러내던 2년 전의 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시선을 끄는 장치도, 요란한 이벤트도 없었지만 조용하고 묵묵하게 나아가는 폴 앤드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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