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Y BURCH

현대 여성이 좋아하는 요소를 영민하게 포착하는 토리 버치의 능력은 이번 시즌 정점을 찍었다. 딱딱하지 않되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차분한 색감의 셋업 수트, 편하지만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조거 팬츠와 고전적인 패턴의 스커트 수트에 이르기까지 당장이라도 따라 입고 싶은 룩을 대거 선보인 것. 또한 낙낙한 실루엣과 실용적인 액세서리로 편안함을 강조했으며, 새 시즌 룩북 촬영 장소로 그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매일같이 드나들던 레스토랑을 택해 의미를 더했다. 대중에게는 화려한 패턴의 스카프나 친근한 디자인의 백과 슈즈 라인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토리 버치는 때로 하이패션 브랜드 못지않은 감각을 발휘하며 관객에게 남다른 영감을 선사한다. 지난 시즌보다 진일보한 새 시즌 컬렉션은 무수히 많은 브랜드 사이에서 토리 버치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TORY BURCH

토리 버치는 새 시즌 룩북을 매사추세츠의 핸콕 셰이커 빌리지에서 촬영했다. 그가 ‘아름다움은 효용성에서 비롯된다’는 셰이커교(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티즘의 한 종파)의 오랜 격언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떼어낼 수 있는 칼라 장식과 밑단을 묶는 통 넓은 바지, 드레스에 가까울 정도로 품이 낙낙한 셔츠까지, 움직임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으로 구성한 컬렉션은 이 격언을 형상화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기존에 비해 디자인은 훨씬 모던해졌지만, 이국적인 패턴과 태슬 장식을 이용해 브랜드 고유의 색을 지켜낸 점도 인상적이다. 실용성에 기반을 둔 브랜드는 화려한 컬렉션의 세계에서 겉도는 경우가 많다. 토리 버치 역시 이런 브랜드에 속한다. 그러나 이번 시즌 토리 버치가 보여준 편안하고 여유로운 옷들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하이패션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