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이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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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INA HERRERA

쇼장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캐롤리나 헤레라 쇼장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바네사 허진스, 칼리 클로스 등 초대된 셀럽 리스트만 봐도 활기차고 젊은 분위기가 단번에 느껴졌으니까. 새로운 수장이 된 디자이너 웨스 고든은 캐롤리나 헤레라가 젊은 세대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임을 알리며 첫 시즌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브랜드를 철저히 분석한 후 자신의 색을 입혔다. 캘리포니아의 온갖 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영감 받은 그의 드레스들은 실루엣은 익숙했지만 밝은 컬러를 더해 한층 젊고 과감해졌다. 흐드러지게 핀 색색의 봄꽃이 떠오르는 드레스들이 펼쳐졌고, 이 모든 드레스가 다음 시즌 메트로폴리탄 갈라용 드레스가 될 것이 자명해 보였다. 젊은 디자이너의 감각을 가감 없이 더해 젊은 고객을 유입할 수 있을 법한 캐롤리나 헤레라의 새로운 시대는 안정권에 들어선 듯 보였다. 은퇴한 후 프런트로에 앉아 쇼를 지켜보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도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OSCAR DE LA RENTA

우아함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두 디자이너는 늘 여행에서 영감을 받는다. 모로코와 스페인에서 영감 받은 지난 시즌의 이국적인 컬렉션을 거쳐 이번엔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모국 도미니카공화국이 컬렉션의 소재로 낙점되었다. 마치 브랜드 역사의 시작점으로 돌아간 듯 라틴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총천연색 룩이 대부분이었다. 리넨과 잘 짜인 라피아 소재의 룩은 쿠튀르 피스에 버금가게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고, 실크 무아레 드레스, 시폰 미니드레스 역시 저마다 존재감을 뽐냈다. 한편 아름다운 드레스 사이로 이따금 훌륭한 테일러드 재킷을 입은 모델들이 눈에 띄었고, 이는 오스카 드 라 렌타가 드레스만을 고집하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피날레 역시 인상 깊었다. 앞은 짧고 뒤는 긴 컬러풀한 드레스에서 기존 룰을 타파하고 젊은 고객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느껴졌다.

VERA WANG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공개된 베라 왕 컬렉션에 이목이 집중됐다. 2년의 공백기를 보내고 선보이는 컬렉션이자 30주년을 기념하는 쇼이기 때문이다. 테일러링에 초점을 맞춘 블랙 드레스들은 튈과 레이스로 만든 란제리를 모티프로 했다. 얇고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룩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섬세했다. 일상에서 입는 옷이라기보다 매혹적인 작품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다만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 정도로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은 아슬아슬해 보였고, 실제로 워킹하던 모델들이 몇 번이나 넘어지는 해프닝을 빚어 아쉬움을 남겼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쁜 웨딩드레스를 선보일 거라는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이제 베라 왕은 신부를 위한 드레스 이상의 작품성을 갖추게 된 듯하다.

JEREMY SCOTT

매스컴에서 쏟아지는 우울한 뉴스와 가십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멀어지는 제레미 스캇만의 방법은? 바로 현실을 도피하는 즐거운 컬렉션을 만드는 것! 음악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는 사이키델릭 록과 헤비메탈을 맥시멀리즘을 통해 표현했다. 형광 멀티컬러의 올록볼록한 재킷과 컬러풀한 부츠를 매치하고 오버사이즈 액세서리를 더해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한 룩을 완성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포일처럼 보이는 번쩍이는 블레이저, 메탈릭 레더 등 극도로 화려하고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룩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다. 화려한 무대의상 같은 첫인상에 압도되어 미처 몰랐을 테지만 디테일에도 제법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헴라인이 곡선을 이루는 드레스나 속옷을 조각조각 잘라 붙인 드레스, 비즈와 패브릭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장식한 톱 등은 견고함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매 시즌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어느새 이 화려한 옷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말처럼 ‘재미’를 위한 컬렉션일 뿐 일상에서 입을 순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PYER MOSS

지난 2월, 과감하게 쇼를 포기한 커비 장 레이먼드는 1년 만에 복귀하는 이번 컬렉션에 심혈을 기울였다. 브루클린에서 늦은 밤 열린 파이어모스 쇼는 대형 콘서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나는 음악과 쇼를 접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흑인 사회에 헌정하는 내용을 쇼의 주제로 삼는 그는 이번 시즌 로큰롤의 선구자인 시스터 로제타 사프를 떠올리게 하는 룩으로 컬렉션 가득 채운 것. 그녀가 평소 즐겨 입던 옷의 실루엣과 색감은 물론이고 추상적으로 그려진 시스터 로제타 사프의 이미지를 프린트로 활용하기도 했다. 음악은 늘 파이어모스 컬렉션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셔츠와 재킷에 기타, 피아노 건반 등을 패턴으로 표현했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리복과 협업해 만든 슈즈 또한 컬러풀한 룩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쇼가 지난번보다 규모가 커진 것처럼 디자이너 역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핫한 브랜드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PRABAL GURUNG

프라발 구룽의 컬렉션은 늘 사회문제를 주제로 삼는다. 2017년 이후 줄곧 페미니즘에 주목해 컬렉션을 구상한 그의 쇼는 이번엔 최근 들끓는 이민자 논쟁에서 비롯됐다. 누‘ 가 미국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다양한 문화를 조금씩 융합한 룩으로 답했다. 편안한 스포츠웨어부터 상류층이 입을 법한 칵테일 드레스, 동양 전통 의상에서 가져온 광택 있는 소재나 데님까지. 소득 수준과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 미국인이 될 수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이렇게 심각한 사회문제를 컬렉션의 주제로 삼았지만 쇼의 무드는 밝고 경쾌했다. 꽃이 주는 로맨틱한 느낌이란! 미국 국화인 장미를 거의 모든 룩의 디테일로 활용한 것이 쇼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듯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프라발 구룽 컬렉션은 쇼를 볼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운이 더 짙어진다. 패션 인사이더들이 환호하는 매력적인 옷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옷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표출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임은 확실하다.

GABRIELA HEARST

가브리엘라 허스트 컬렉션은 파리나 밀라노 태생의 브랜드와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찬사를 받아왔다. 상업적인 스타일이 쏟아져 나오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자신만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역시 핸드크래프트 디테일이 돋보이는 룩으로 프레스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이번 쇼를 통해 전하려 한 메시지는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 리넨 같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것이 큰 특징. 코튼 드레스나 비비드한 컬러 블록 드레스는 누구라도 탐낼 만한 옷이었다. 언뜻 니트나 메시처럼 보이지만 가죽이나 리넨 등을 꼬아 만든 위빙 디테일은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명성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편 영국 왕자비 메건 마클이 사랑한 ‘니나’ 백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디자인의 가방은 다음 시즌을 책임질 흥행 요소다. 곧 런던에 첫 유럽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전한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TIBI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티비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전체적인 트렌드를 탐구하기보다 각각의 제품과 스타일링을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티비의 디자이너 에이미 스밀로빅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특유의 쿨한 뉴요커 룩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도 티비 쇼의 관전 포인트는 무대 연출도, 스타 모델도 아닌 스타일링과 실루엣이었다. 언제나처럼 여성적인 디테일과 남성적인 디테일을 섞고 파스텔컬러를 더해 도시적인 룩을 완성했는데, 각각의 아이템을 떼어놓고 봐도 훌륭했지만 런웨이의 모델이 입은 그대로 통째로 사고 싶을 정도로 스타일링이 멋졌다. 특히 나일론 카고 팬츠와 어깨선이 둥글게 솟은 블레이저, 새틴 트렌치코트와 사파리 쇼츠의 조합은 패션을 잘 아는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기본적인 아이템을 런웨이에 오를 만큼 특별한 30가지 룩으로 변주하는 디자이너의 탁월한 스타일링 감각이 돋보인 쇼였다.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될 땐 티비 컬렉션을 참고하길. 단언컨대 100%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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