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하 <스우파>) 보다 더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은 없었다. 단지 화려한 춤과 음악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다채롭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팀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들은 화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다양한 체형의 여성들이 한껏 치장한 채 넘치는 생기로 우리를 사로잡을 때 유일하게 시대착오적이었던 건 자막과 편집이었다. <언프리티 랩스타>가 방영됐던 2015년으로 회귀한 것 같았다. 심지어 작년 엠넷에서는 여성 간 대결구도라는 낡은 프레임을 벗었던 <굿걸>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판을 짜놓고 진지하게 경쟁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태도를 ‘기싸움’으로 납작하게 표현하는 건 너무 많이 봐서 지루하고, 또 쉬운 일이다.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스트리트 댄서들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미션도 아이러니다. 첫 탈락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미션에서 ‘케이팝’을 주제로 해, 대중가요 무대에 치중된 기준으로 판정하는 것은 그것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소화해 낸 ‘코카N버터’나 ‘홀리뱅’의 탈락 위기를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릿 댄스 크루를 찾는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 설명에 갸우뚱해진다.

무엇보다 1위를 한 팀으로 하여금 탈락 후보를 선정하게 만드는 룰은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는, 룰을 위한 룰이다. 첫 탈락팀 ‘웨이비’의 리더 ‘노제’가 만든 <헤이 마마> 안무가 틱톡과 릴스를 넘나들며 엄청나게 많은 커버 영상을 양상해내고 있는 지금, 경쟁을 붙여 팀을 탈락시키는 방식이 화제성을 만드는 데 실제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재고해봐야 할 일이다.

 

스우파 스트릿 우먼 파이터

그러나 제작진이 작정하고 만든 구도 바깥에서 여성들은 다른 것을 보기 시작한다. 첫 방송 이후 SNS를 뜨겁게 달군 주제는 참가자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성과 각기 다른 스타일의 무빙이었다. 생각대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자유로움, 타인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자신감,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오며 다져온 자신만의 철학으로 똘똘 뭉친 강한 여자들이었다. 이어서 그들이 실제로는 서로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어떤 춤을 추고 있는지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매번 패배했던 상대에게 다시 배틀을 신청한 ‘피넛’,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춤을 추는 데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하는 ‘선경’, 몇 번의 패배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채연’, 팀을 위해서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내는 여성들의 모습은 어떤 작품에서도 만나기 힘들 만큼 멋지다.

미국의 비평가 ‘나오미 울프’는 저작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여성들은 이미 경쟁자나 도구가 되지 않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시각은 우리가 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을 바꾼다. 우리가 다른 여성의 얼굴과 몸을 스스로 보기 시작한다.” 고 말한다.

 

스우파 노제

첫 탈락을 한 ‘웨이비’의 노제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춤을 췄으면 좋겠어요.’ 말이 끝나자 모두 머리 위로 박수를 쳤다. 시스템이 만든 프레임의 바깥에서 여성들은 환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