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E, 2013 마음속에 줄곧 그려왔던 장면. 이고르도 내 바람을 직감했던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다가 포착한 순간이다.

AN INTIMATE MOMENT, 2021 팔을 다친 이고르에게 내가 옷을 입혀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 내가 이고르의 팔을 잡고 그를 위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CHANGING LIGHT BULB, 2019 우리 집에는 우리 둘이 힘을 합쳐야 전구를 교체할 수 있는 조명이 많다. 내가 이고르를 지지대로 삼은 모습이 재미있는 사진.

RED TOWEL, 2012 아침에 운동을 마친 후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갔다가 나온 이고르.

Time As We Know It’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10여 년 전, 일흔 번째 생일에 꿈을 꿨다. 꿈속에서 번화가 곳곳을 걷다가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내 삶의 끝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의 형태에 어떤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노년 여성으로서 내가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고, 사람들이 내 나이 든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후 타이머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이용해 나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이 결과물을 어린 시절의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니 ‘노화’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다.

‘Time As We Know It’이라는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소설가 유도라 웰티(Eudora Welty)의 글을 읽고 떠올린 제목이다. “삶의 사건들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지만, 인간에게 중요한 건 각자의 주관적인 시간표다. 비순차적인,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TimeAsWeKnowIt)’은 마치 소설의 전개 방식과 같다”라는 이야기였다.

사진 속에 당신의 동반자 이고르(Igor)도 있다. 어떤 마음으로 그와 함께 살게 되었나? 난 이혼과 가족의 해체를 한 번 겪었고, 이후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를 소망했다. 이고르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예순 두 살이었고 그는 일흔세 살이었다. 건축가인 이고르는 창의적이고 활기 넘치는 사람이다. 당시 사진 작업을 그만둔 상태였던 내가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게 해준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내게 다시 촬영해보라고 권하며 자동필름 카메라를 선물한 덕분이었다. 이런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 둘이 함께하며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지만, 서로 노력할 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배웠다.

사진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본 이고르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이고르는 원래 본인이 나이 든 남자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보행을 돕는 기구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강력하게 거부하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에서만 쓸 정도였다. 사진 속 본인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두려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점점 인정받으면서 그도 노화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이고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셔터를 누른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가 자진해 사진 촬영에 함께했다. 촬영이 길어지지 않는 한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이 ‘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내가 지정한 자리에서, 원하는 표정과 자세를 기꺼이 취해주었다.

90TH BIRTHDAY, 2019 이고르의 아흔 번째 생일을 맞아 그가 설계한 아름다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나의 동반자.

LEGS, 2020 비늘 같은 피부, 선명한 핏줄, 뚜렷한 양말 자국. 누가 봐도 할머니임을 직감할 수 있는 내 다리를 자연광이 잘 드는 곳에서 촬영했다

HOT TUB, 2016 욕조 근처에 앉아 있는 이고르의 뒷모습.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때 멋진 사진이 많이 탄생한다.

HANGING GARLAND, 2021 우리가 함께 벽난로를 화환으로 장식하고 있다. 매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펼쳐지던 풍경.

사진 속 당신과 이고르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상의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나? 그렇다. 지난해 이고르가 오른팔을 다쳤을 때도 카메라를 세워둔 채 촬영했다. 여러 장의 결과물 중 내가 이고르에게 옷을 입혀주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골랐다. 그 사진은 결과적으로 이고르의 연약함과 나의 보살핌 그리고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친밀한 순간(An Intimate Moment)’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올해 8월에 이고르가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고르가 삶을 마감할 때 나를 비롯해 그의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있었다. 이고르의 생애 마지막 순간, 사랑이 방 안에 가득했다. 모두 이고르가 곧 우리 곁을 떠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고, 우리가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이 우리의 마음을 채웠고 그 어떤 불만이나 오해, 혐오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고르가 곁에 없는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 겉으로 보면 거의 달라진 점이 없다. 나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도서관과 식료품점에 가고, 종종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고르의 빈자리는 매우 크다. 이제는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이고르를 어딘가로 데려가거나, 그가 입었던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는 식으로 나와 그의 일정을 통합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마음 한쪽이 공허하다. 특히 바깥이 어두운 밤, 그가 불을 붙인 벽난로 옆에 앉아 있지 못할 때. 주말이면 이고르의 지인들이 나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만, 주중의 나는 오롯이 혼자다.

그와 함께한 기억이 담긴 프로젝트가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 인생의 동반자를 잃어 슬프지만, ‘Time As We Know It’이 내가 삶의 어두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로 촬영한 사진을 엮은 책이 최근 절판되어 인쇄를 다시 요청했고, 다음 사진집도 구상 중이다. 또 이고르가 떠난 이후의 내 삶을 담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사랑. 사랑은 인생의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하고, 모든 경험에 깊이를 더해준다. 나이 듦을 마주하는 건 외롭고 힘겨운 일일 수 있다. 그러하기에 노화의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의 존재가 아주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