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고
높은
탄소 배출량을 야기하는 패션 산업.
이대로
괜찮을 리 없는 탓에 수많은 브랜드가

‘지속 가능한 패션’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연대하고 있다.

 

 

퇴근 후 습관처럼 유튜브를 검색하던 중 충격적인 섬네일에 시선이 멈췄다. 거대한 의류 폐기물을 잡초인 양 뜯고 있는 동물 사진 위 2022 방송대상 수상작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문구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버린 옷이 바다 건너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약 5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버려진 옷의 불편한 민낯과 환경을 해치는 패션 산업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79억여 명이 사는 지구에서 한 해 만들어지는 옷은 약 1천억 벌. 이 중 무려 33%인 3백30억 벌이 같은 해에 버려져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진실. 옷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약 70%의 과정이 환경을 훼손한다고 한다. 섬유와 원료 생산, 방적, 염색 등 제작부터 운송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엄밀히 말하면 지구에 해를 끼친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고 높은 탄소 배출량을 야기하는 패션 산업. 이대로 괜찮을 리 없는 탓에 수많은 브랜드가 ‘지속 가능한 패션’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연대하고 있다. 이들은 꽤 진지하다. 허울 대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수립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발렌티노는 프랑스 직물 리세일 업체인 티슈 마켓(Tissu Market)과 손잡고 ‘슬리핑 스탁(Valentino Sleeping Stoc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덕분에 아카이브 창고에 잠들어 있던 시폰과 태피터, 드보레 새틴, 플로럴 프린트의 크레이프 드 신, 실크 조젯 등 특별한 원단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슬리핑 스탁 프로젝트는 메종의 아름다운 유산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원단 제작으로 발생하는 약 2백65톤의 CO2e(이산화탄소환산량) 배출을 예방했다. 이는 5헥타르의 숲이 무려 1년간 흡수하는 양에 상응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나아가 새로운 원단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올림픽 규모 수영장 4백42곳을 채울 분량의 물 110만5645㎥를 절약하게 됐다. 발렌티노는 지난해부터 매일 밤 10시에 전 세계 95개 부티크의 조명을 소등하고,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웹사이트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할 수 있는 카르마 메트릭스(Karma Metrix)와 협업해 녹색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루이 비통은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5년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 목표에 맞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5% 수준까지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같은 여러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또한 2025년까지 100% 친환경 디자인 프로세스를 구축해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브랜드 행사와 윈도 디스플레이에 사용할 재료를 100%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할 계획을 밝혔으며, LVMH 탄소 기금 운영과 재생에너지 사용 같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지구를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그린 워싱에 일침을 가하며 지속 가능성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정립한 브랜드도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2023 S/S 시즌 컬렉션의 85% 이상을 지속 가능성 소재와 방식으로 구현했다. 포도 껍질로 만든 식물 소재 기반의 슈즈, 버섯 균사체 가죽으로 만든 가방, 유기농 면화와 재생 면화를 사용한 옷, 동물성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은 장식 등은 근사한 아이템으로 완벽하게 변신을 마쳤다. “지금까지 선보인 컬렉션 중 가장 지속 가능한 컬렉션이에요. 기분이 아주 좋았죠.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았지만 멋지고 쿨한 쇼였으니까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말에서 자부심과 진실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패션계는 사회현상에 유독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을 때가 더러 있지만 지속 가능성 같은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이 화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성과 멋을 위해 아름다운 지구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책임지지 않는 풍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법! 그렇기에 환경문제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꽤 구체적이고 진지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패션 브랜드의 행보가 더 없이 유의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