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는 2021년 출간한 저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에서 인간이 오랫동안 생태계 질서 유지에 이용해온 분류라는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인위적인지 역설한다. 책에 따르면 흔히 ‘어류’라고 구분 하는 생물은 해부학적으로 서로 다른 조상에서 진화한 결과물이며, 물에 산다는 형질을 제외하면 그다지 유연관계가 없다고 한다. 문과적으로 풀이하자면 모두가 알고 있던 물고기라는 범주 자체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언뜻 관련 분야 종사자에게만 유효해 보이는 이 책은 분야를 막론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로를 가르는 구분과 스스로를 가두는 스테레오타입을 지우자는 오늘날의 범인류적 목소리와 공명한 까닭이다.

2025년을 관통하는 키워드 ‘옴니보어(omnivore)’는 룰루 밀러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생물학에서는 옴니보어를 ‘동물성과 식물성 먹이를 가리지 않는 성질’로, 사회학에서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부류’로, 소비자학에서는 ‘집단이나 소속의 특징을 따르지 않으며 전형성이 떨어지는 소비 형태’로 규정한다. 그리고 패션은 ‘가치를 이분화하려는 습성을 버리고 패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려는 성향’이라 의역 하려 한다. 겉잡을 수 없이 확장하는 알고리즘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창성을 지키자는 ‘안티 알고리즘 액션’, 유행을 거부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추구하는 ‘안티 패션 라이프스타일’, 성별에 뒤따르는 관념적 이미지를 뒤트는 ‘젠더리스 트렌드’, 대중적인 것보다는 독특한 개성과 스토리를 가진 대상을 소비하는 ‘페르소나 소비 경향’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달간 국내외 패션 뉴스에 오르내린 거의 모든 주제를 귀결하는 옴니보어는 얼핏 작은 유행의 총칭 같지만 사실 트렌드이기보다는 메시지다. 패션 월드에서만이라도 자신을 가두는 경계를 허물고 진짜 나를 찾자고 목이 터져라 외치던 사람들이 찾아낸 일종의 유토피아다.

럭셔리의 세계에도 끝내 옴니보어로 살고자 하는 브랜드가 있다. 이들은 유행의 틈에서 소비자에게 간택되기를 소망 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적인 테마를 고르고, 꼭 거창하거나 사회적이지 않더라도 각자가 귀히 여기는 소주제를 전하기 위해 분투하며, 입는 이에게 제약을 두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대와 성별 구분이 불분명한 톰브라운 쇼를 보며 우리는 염색체, 나이, 국적과 인종을 잊고 본능에 따라 입을 자유를 얻는다. 시장경제의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트렌드 대신 개별성을 강조한 프라다의 철학을 보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울리지 않아 숨겨뒀던 애호(愛好)를 떠올린다. 과장되고 해체된 옷 뒤에 매력적일 필요 없이 그저 인체로 존재하는 레이 카와쿠보의 꼼데가르송 모델들을 보며 해방감을 얻는다. ‘설탕처럼 보이는 소금’이라는 주제로 내면의 중요성을 시사한 미우미우의 컬렉션을 보며 스스로를 일깨운다. 이런 브랜드를 만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가둔 표본병을 깨고 나와 어류가 아닌 각자로 살기 위한 옷 입기를 배운다. 그 배움의 끝은 패션의 존재 이유와 맞닿는다. 자유로운 자기표현. 종종걸음으로 트렌드를 좇느라 잊고 있던 바로 그것 말이다.

자기표현의 자유를 발현하도록 돕는 커스터마이징 역시 큰 틀에서 옴니보어 유니버스에 속해 있다. 더 비싼 값을 지불하면 고객의 요구대로 사이즈나 디자인을 맞춰주는 ‘메이드 투 메저(made to measure)‘ 서비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토핑 경제’, ‘제인 버키니파잉(Jane Birkinifying)’, ‘데코덴티티(Deco-dentity)’ 같은 신조어가 쏟아질 정도로 화두에 오른 최근의 커스터마이징은 기존과 다른 방향성을 띤다. 신발 끈과 끈 장식을 마음대로 고르는 미우미우 김나지움 컬렉션의 스니커즈와 ‘공동 창작’ 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옷과 신발에 여러 디자인 요소를 더 하도록 한 골든구스의 코크리에이션처럼 구매할 때부터 아이템을 개인화하거나, 어울리지 않을 법한 수십 가지 키 참을 한꺼번에 달아 연출한 발렌시아가의 로데오 백처럼 스티커 또는 참을 이용해 물건에 취향을 더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공산품을 사용하더라도 작은 부분에서나마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의 표출로 해석한다.

모두가 하나의 트렌드로 획일화되던 시절이 있다. 트렌드에 뒤떨어지면 촌스럽다는 비난을 받는 게 당연하던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지표가 ‘나’를 향하는 지금의 패션 월드는 어떠한가. 이 세계는 아주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지고 있다. 옷이라는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의 형상화라 한다면, 앞서 설명한 모든 변화는 단순히 자기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침내 나로 살고자 하는 외침일 테니까. 이쯤에서 다시 밀러의 말을 빌린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글쎄, 모르겠다. 그러나 패션이 꾸준히 균열하며 구식의 범주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나아가 머지않아 무언가를 무너뜨릴 참이라는 것만은 제법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