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 주얼리가 소장 대상을 넘어 일상에서 직접 착용하고 즐기는 패션 스타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 권위를 상징하던 티아라는 18세기 이후 대중화되었으며 최근에는 결혼식 등을 계기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 티아라 외에도 방도와 같은 헤드밴드나 다양한 헤어 오너먼트가 머리를 장식하는 도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플륌 드 펑 헤어 주얼리 Boucheron.
몇 년 전, 한 메종의 하이 주얼리 이벤트 애프터 파티에 초대되어 고객님들의 주얼리 착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한 고객님이 어린 따님과 함께 참석하셨는데, 모녀가 나란히 해당 메종의 티아라를 쓰고 등장하셨어요. 하이 주얼리 이벤트 갈라 디너와 같이 블랙타이 드레스 코드를 지침으로 하는 행사를 꽤나 많이 진행해오며 수많은 고객을 만나봤지만 티아라를 쓰고 파티에 온 고객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녀가 함께요. 쇼케이스에 넣어 감상만 하거나 고이 수집하는 ‘금고템’인줄만 알았던 하이 주얼리를 정말 ‘하고 나와서 즐기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순간이라 꽤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하이 주얼리가 이제 단순히 소장하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일상에서 직접 착용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크게 체감한 날이기도 했고요.
지난 글에서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저는 꽤 오랜 시간 ‘프린세스 워너비’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게 주얼리 메종에서 일하며 가장 직업 만족도가 높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평생 한 번도 실물로 보기 어려운 귀하고 아름다운 주얼리를 매일 보고 만지고, 운이 좋으면 직접 착용까지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저도 10여년의 하드 럭셔리 커리어를 통틀어 티아라는 딱 두 번 써봤습니다. 한 번은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행사를 앞두고 들여온 티아라였고, 또 한 번은 웨딩을 테마로 여러 브랜드가 함께한 행사에서 이벤트로 착용해본 티아라였습니다. 둘 다 모조품이 아닌 진짜였기에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직원분이 조심스럽게 티아라를 들어 제 머리 위에 얹어주시는데, 대관식을 앞둔 황제도 이렇게나 긴장하진 않았을 겁니다. 크게 무겁지도 않았는데 혹시 머리에서 떨어뜨릴까 온몸에 어찌나 힘을 줬는지, 나중에 사진을 보니 승모근이 바짝 선 보디빌더가 따로 없더라고요. 공주가 되는 일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웨일스 왕세자비(Princess of Wales)의 크나큰 팬이었던 저는 당연히 결혼식에서도 한번쯤 이 아름다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긴 얼굴형에 높이감 있는 머리 장식까지 얹으면 프린세스는커녕 얼굴만 한 뼘 더 길어질 것이라는 냉정한 자각 덕분에 결국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네요. 그래서 수년 전 파티에서 만난 그 모녀 고객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티아라를 왕실의 유물이나 쇼케이스 속 작품이 아니라, 예쁜 옷을 고르고 좋아하는 주얼리를 착용하듯 그날의 스타일로서 즐기고 계셨고, 심지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예쁜 모습이었으니까요.
‘주얼리’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세요. 네크리스, 이어링, 브레이슬릿, 링. 아마 대부분 이 정도에서 멈출 겁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얼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심지어 우리는 그 영향력을 ‘머리빨’이라는 아주 강력한 단어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머리에 주얼리를 더할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상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심을 담아 헤어 주얼리를 찾아나섰습니다. 왕실의 티아라부터 1920년대의 방도, 머릿결 사이에 꽃과 깃털을 꽂던 헤어 오너먼트의 역사까지 따라가다 보니, 지금도 그 흔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티아라와 헤드밴드, 다양한 헤어 오너먼트까지.티아라와 헤드밴드, 헤어핀과 클립까지. 목선과 귀끝, 손가락에만 보석을 얹느라 미처 눈 돌리지 못했던 머리 위까지 함께 살펴볼까요.
◆ 왕족의 머리 위에서 우리의 위시리스트까지 – TIARA


활짝 펼쳐진 날개의 움직임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풀 스윙 헤드 주얼 Chanel Fine Jewelry.


총 9.81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212개를 세팅한 조세핀 임페리얼 티아라 Chaumet.
머리에 보석을 올려 권위와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쓰던 왕관을 떠올리면 가장 쉬울 것 같아요. 왕관처럼 머리 위의 보석 장식은 오랫동안 권력과 높은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 더 장식적인 형태의 티아라도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화려한 티아라가 본격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입니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유럽 왕실과 귀족 여성들의 화려하고 세련된 액세서리로 자리 잡았고, 궁정 행사나 무도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주 착용됐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는 왕족과 귀족뿐 아니라 부유한 상류층까지 티아라를 즐겨 착용하며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요.
전쟁을 거치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옷차림이 달라지면서 티아라를 쓸 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왕과 공주들은 여전히 중요한 공식 석상에서 티아라를 착용했고, 20세기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최근에는 케이트 미들턴과 메건 마클, 유제니 공주의 결혼식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왕실 행사 때마다 다시 한번 티아라에 시선이 쏠렸고요.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는 유명 전시와 셀러브리티의 결혼식 등을 계기로 티아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제 티아라는 왕족의 머리 위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하이 주얼리 메종에서 여전히 새로운 티아라를 만들고 있으니, 마음에 든다면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왕족의 혈통보다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조금 더 크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제가 11월에 방영될 새 드라마 <재혼황후>를 기다리는 이유도 신민아의 열성 팬이라서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예고편에서 티아라를 쓴 신민아를 보는 순간 느꼈던 그 쾌감. 말도 못하거든요. 오래된 프린세스 워너비의 취향을 또 이렇게 들켜버리는군요.
◆ 화려한 머리띠의 유혹 – HEADBAND


밴드를 따라 별 모양 프레임을 장식해 반짝이는 밤하늘을 표현한 어브스트랙 스타 티아라 Tasaki.
보석으로 만든 헤드밴드가 가장 화려하게 사랑받았던 시기는 20세기 초였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방도(Bandeau)’는 높이감이 크지 않은 밴드 형태의 헤드 주얼리로, 특히 1920년대에는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으로 완성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방도를 이마 가까이 낮게 두르는 방식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짧은 보브 컷 헤어와 직선적인 실루엣의 드레스가 등장하던 당시의 새로운 패션과도 잘 어울렸고요. 요즘 루이 비통에서 가늘고 긴 실크 스카프를 ‘방도’라고 부르는 것을 보신 적이 있다면 이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으실 거예요. 프랑스어로 ‘띠’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당시에는 말 그대로 머리에 보석으로 된 띠 하나를 두른 셈입니다. 오늘날의 파인 주얼리 헤드밴드는 이마를 가로지르기보다 우리가 평소 머리띠를 하듯 정수리 위에 얹는 형태가 더 익숙합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꽤 오래전부터 이런 화려한 머리띠에 마음을 빼앗겨온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일링 중 하나가 S.E.S.의 <LOVE> 시절인데, 사실 의상만큼이나 멤버 유진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참 좋았어요. 언젠가 할로윈에 그 모습을 따라 해보겠다고 비슷한 머리띠를 한참 찾아헤맸지만, 아마 스타일리스트의 제작품이었는지 끝내 구하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얼굴도 다른데 저게 없으니 도무지 그 느낌이 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시도해보지 못하고 지나간 게 지금 이렇게 근 20년이 지나서도 기억에 날만큼 아쉽습니다.
◆ 보석에는 지정석이 없지요. – HAIR ORNAMENT


옷 위에서는 브로치로, 머리 위에서는 헤어 오너먼트로 변신하는 버터플라이 클립 Van Cleef & Arpels.


등나무꽃이 늘어지는 모습을 진주로 표현한 위스테리아 헤어 코르사주 Tasaki.
머리카락을 보석으로 장식해온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꽃과 잎을 본뜬 보석 장식을 머리에 꽂았고,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문화권에서도 금과 은, 진주와 보석으로 만든 빗과 비녀 같은 머리 장식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습니다. 형태도 쓰임도 저마다 달랐지만, 머리카락 역시 목과 귀, 손가락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주얼리를 위한 자리였던 셈입니다.
요즘 화보를 보다 보면 이 오래된 욕망이 흥미로운 방식들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여러 갈래로 나눠 한 가닥씩 반지에 꿰는 등, 원래 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얼리를 헤어 장식처럼 사용하는 방식이죠. 저 역시 일하며 보았던 주얼리 화보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스타일링이 있습니다. 한복 화보에서 네크리스를 머리카락과 함께 길게 땋아 내리거나, 볼드한 이어링을 배씨댕기나 떨잠처럼 머리에 세팅했던 모습이었어요. 제가 직접 참여한 촬영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머리 위에 보석을 더하면 아름다운 비주얼이 만들어진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의 동의가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번 글을 준비하며 저를 더 설레게 한 것은, 굳이 다른 주얼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정말 ‘헤어만을 위한 주얼리’가 생각보다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꽃 한 송이를 꽂은 듯 머리 위를 장식하는 헤어 코르사주가 있는가 하면, 깃털처럼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는 오너먼트도 있고, 포니테일을 보석으로 감싸는 꽤 현대적인 헤드 주얼리도 있습니다. 게다가 평소 옷이나 모자에 착용하는 클립을 헤어 오너먼트로도 즐길 수 있도록 제안하는 메종도 있고요. 찾아볼수록 ‘헤어 주얼리’라는 이름 안에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료를 찾는 일도 꽤 신이 났습니다. 티아라 정도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핀도 있고 헤어콤도 있고 브로치까지 머리 위로 올라갈 수 있다니요. 목과 귀, 손가락을 다 지나고도 주얼리를 즐길 자리가 하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저는 굉장히 반갑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펴보고나니 저는 납작하게 머리에 밀착되면서도 보석은 아낌없이 세팅된 헤드밴드가 무척 탐이 납니다. 평소에는 브로치처럼 사용하다가 어느 날 머리에도 착용할 수 있는 클립은 더더욱 제 스타일이고요. 물론 머리 위를 이만큼 화려하게 채우려면 들어가는 보석도 만만치 않을 테니, 당장 하나 장만하기에는 그다지 실용적인 선택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언젠가, 아마도 환갑잔치쯤에는 <위대한 개츠비> 속 데이지를 떠올리게 하는, 깃털 장식까지 달린 화려한 헤드피스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 희망사항만큼은 버킷리스트에서 지우지 않고 오래 간직해볼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