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오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행사장 가운데 마련된 무대에서는 매 시간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러쉬 서밋 행사가 열린 런던 올드 빌링스게이트 건물 안은 박람회장을 연상케 했다. 러쉬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활동가와 NGO가 인권 보호와 동물실험 반대, 윤리적 구매, 디지털 윤리 실현, 난민 보호, 해양 환경 보전 등을 주제로 실내 곳곳에 부스를 세웠기 때문이다. 동물실험과 공장식 밀집 사육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부스부터 쉽게 소비하고 버려지는 휴대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돌아보는 디지털 윤리에 관한 부스,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 는 윤리적 구매를 주장하는 부스 등을 돌아보며 무심히 지나쳤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리아 난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난민 보트도 마련됐다. 보트에 앉아 겁에 질린 난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행사장 지하에는 플라스틱과 비닐 봉투 등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닷속을 재현해놓아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러쉬 제품의 주요 원료인 코코넛 버터와 바닐라 빈, 모링가 씨앗 오일, 아르간 씨앗 오일 등을 수급하는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나 설명을 듣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스도 마련됐다. 윤리적 구매는 러쉬의 브랜드 철학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러쉬는 원료의 재배 단계부터 생산, 구매에 이르는 전 과정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지속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로부터 최상의 원재료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원료 수급 과정에서 공급량이 부족하거나 품질이 기대에 못 미쳐서 제품 개발이 중단되거나 제품이 단종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러쉬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역 단체나 농민들에게서 원료를 직접 구입하거나 생산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땅을 구입하고 주변 농장과 협업해 농장을 운영하는 ‘바잉 인베스트먼트 프로젝트(Buying Investment Project)’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윤리적인 원료 수급을 보장하는 동시에 거대 자본이 대규모로 토지를 구매해 지역사회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행사장 한가운데에 자리한 무대에서는 매 시간 한 가지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첫째 날에는 윤리적 구매와 관련된 이슈 중 하나인 불법 운모 채취 과정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빛이 나는 화강암의 일종인 운모는 펄이나 글리터처럼 반짝이는 화장품 원료로 많이 사용된다. 운모를 채굴하기 위해서는 동굴에 구멍을 뚫어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최근 운모의 최대 생산지인 인도에서 운모를 채취하는 과정에 어린아이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유통 과정에서는 마피아가 개입해 운모가 어느 광산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공급망을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러쉬는 2014년부터 천연 운모를 합성 운모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올해 1월부터는 전 제품에 천연 운모 대신 합성 운모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합성 운모는 천연 운모가 가진 광택을 그대로 낼 수 있는 미네랄을 합성한 성분으로, 바다로 흘러가도 해양 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한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팜 트리 농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 버려진 팜 트리를 잘라 SOS 수마트라 캠페인을 상징하는 문구를 만든 모습.

러쉬 서밋 둘째 날에는 러쉬 윤리 구매 책임자인 사이먼 콘스탄틴과 제품 개발을 총괄하는 대니얼 캠벨, 수마트라 오랑우탄 보호 단체인 OIC(Orangutan Information Center)와 SOS(Sumatran Orangutan Society)의 책임자 등이 참석해 팜 오일이 사용되는 이유와 팜 오일 재배가 생태계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멸종 위기에 처한 오랑우탄 보호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팜 오일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

 

팜 트리 열매에서 채취한 팜 오일은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화장품 원료와 식품 원료뿐 아니라 최근에는 바이오 원료로도 널리 쓰인다. 팜 오일의 최대 수출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팜 오일 산업은 지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해왔고, 팜 오일의 수요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 지역의 팜 트리 농장 규모도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팜 트리 농장이 대규모 공장식 농장인 플랜테이션의 형태로 들어서면서 열대우림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팜 트리를 심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면서 오랑우탄은 서식지를 잃었고 멸종 위기에 처했다. 또한 팜 트리 재배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남용하면서 토양과 물의 오염도 가속화되고 있다. 러쉬는 팜 오일이 생태계 파괴에 미치는 악영향을 인지하고 제조 과정에서 팜 오일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10년 넘게 계속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규모 팜 트리 농장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의 오랑우탄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한 SOS 수마트라 캠페인을 성공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첫 캠페인의 성공에 힘입어 3월 16일부터 31일까지 한국과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뉴질랜드, 호주, 마카오, 홍콩에서 두 번째 캠페인을 개최한다. 이번 캠페인을 위해 새로운 샴푸 바 SOS 수마트라를 제작했다. SOS 수마트라는 샴푸와 비누 원료로 널리 쓰이는 팜 오일 대신 수마트라 니아스섬에서 재배한 엑스트라 버진 코코넛 오일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물을 정화하는 모링가 씨앗 가루와 파촐리, 오렌지 오일도 담았다. 부가세를 제외한 판매금 전액은 수마트라 오랑우탄 서식지 복원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단체 SOS와 수마트라 지역사회에 기부된다. SOS는 기부금으로 약 15만 평에 달하는 폐기된 대규모 야자나무 농장을 구입해 열대우림을 복원하고 파괴된 생태계 회복과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농업 정착,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오랑우탄의 서식지를 복원하는 SOS 수마트라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SOS 수마트라 샴푸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