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뷰티 클린 뷰티 김나래 육식주의자들
ILLUSTRATION 조상래(@TOMORROW_JOE_)

 

비거니즘을 지향한다고 밝힌 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내 친구가 비건인데’ 혹은 ‘내 지인이 채식주의자인데’ 하고 시작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비건 n명이 있으면 비건이 되는 n+1개의 이유가 존재한다. 나는 비거니즘을 소설 소재로 삼고 싶어 조사하다 우연히 비건이 된 경우다. 처음부터 평생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한 달만 경험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고기 없는 월요일’ 같은 채식 모임에도 참가해보고,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언니네트워크 소모임 ‘아삭’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채식 식당을 찾아다녔다. 막상 채식을 해보니 몸에 아주 잘 맞았고(건강해졌다), 비건 지향인 친구들을 만나며 무척 즐거웠다. 내게 비거니즘은 페미니즘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비건이 되기 전에는 비거니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내 삶이 비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어떤 신념을 밝힌 뒤에 늘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스트레스가 되기는 하지만 타인의 평가에 나를 재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건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내 외모를 타인의 가치에 맞추려고 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뚱뚱한데 예쁘다’거나 ‘허벅지는 두꺼운데 얼굴은 예쁘다’는 등 내 외모에 대한 무례한 평가를 자주 듣고는 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도살장에 부위별로 전시된 고기를 볼 때 드는 느낌과 비슷했다. 막연하던 불쾌감이 선명해진 뒤에야 길 가던 타인의 평가를 무시할 수 있었다. 이제 민낯으로 다니는 일에 익숙해졌고, 체중계에 올라가서 내 몸을 탓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미국의 수명 주기 에너지 분석 연구소에 따르면, 우리가 환경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텀블러는 유리 재질은 최소 15회, 플라스틱 재질은 최소 17회, 세라믹 재질은 최소 39회 이상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한다. 텀블러를 만들어 사용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플라스틱 컵보다 13배, 종이컵보다는 24배나 많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새로 구입하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고,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다. 적게 소비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기에 소비를 지양하는 편이지만, 샴푸와 비누, 핸드크림 없이 생활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신 구매 조건을 엄격하게 따지기로 했다. 구입 접근성이 좋은가, 화장품 성분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가, 동물실험을 하는가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다. 요즘 뷰티 트렌드로 꼽히는 ‘클린 뷰티’가 지향하는 지점과 비슷하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을 의미하는 클린 뷰티는 동물실험 여부나 포장의 친환경성을 따지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지·복합성 피부라 피부 재생이 빠른 편이어서 시쳇말로 ‘코덕’ 시절에도 성분을 크게 따지지는 않았다(물론 화장품에 꿀이나 우유 등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는지는 확인하고 구입한다). 다만 비건이 된 후 기초 화장품 수가 스킨과 수분 크림 두 가지로 확 줄어들었다.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피지 분비가 확연히 줄어들어 보습 관리 외에는 별다른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강한 광택이 도는 정도의 적당한 유분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성기름은 식물성기름과 다르게 먹고 나면 혈관에 쌓여 한동안 없어지지 않는데, 이것이 피부에도 영향을 끼쳤던 듯하다(사람마다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다를 수 있다). 일회용 화장솜 사용을 지양하며 토너 단계도 생략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최근 재사용 화장솜을 알게 되어 사용해보려고 한다. 일회용 화장솜을 쓰면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침에 스킨을 적셔 사용하고 빨아서 햇볕에 말리면 저녁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순면이기 때문에 세탁기나 건조기에 빨아 말릴 수도 있다.

동물실험과 관련해서는 동물실험을 하는지, 중국에 수출하는지, 모기업이 동물실험을 하는지 이 세 가지를 확인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는 화장품에 인쇄된 비건(Vegan) 표시나 토끼 그림을 확인하면 된다(마스카라 출시 전 토끼 눈썹에 마스카라를 1천 회 이상 테스트하며, 동물실험의 대상이 된 토끼는 시력을 잃거나 생명을 다한다는 사실이 세계인을 분노하게 만들면서 토끼 그림이 동물 보호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 올리브영에서도 자체 클린 뷰티 엠블럼을 제작했는데, 인체에 좋은 성분은 나뭇잎과 손 그림으로, 친환경은 지구에 하트가 그려진 그림으로, 동물보호는 달리는 토끼 그림으로 만들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화장품은 중국 내 수입 화장품 동물실험이 법제화되어 있어 비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배제한다(곧 법이 바뀔 예정이기는 하다). 또 모기업이 동물실험을 하는데 계열사 한 곳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회사의 제품도 구입하지 않는다.

구입 접근성을 따지는 이유는 택배 배송 시 발생하는 부차적 쓰레기 때문이다. 제품 운송장, 택배 상자,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충전재, 박스 테이프 등 쓰레기를 최소화하려면 직접 구입하는 것이 좋다. 아주 바람직하게도, 최근에는 디어달리아나 리한나의 펜티 뷰티 같은 독자적인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펜티 뷰티는 미국에서 공병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한다. 얼마 전에 내 피부색과 똑같은 파운데이션을 펜티 뷰티에서 구매했는데, 다 쓰면 우리나라에서도 공병 반환이 가능한지 문의할 생각이다.

머리카락과 몸, 얼굴을 닦는 데는 비누 한 가지를 사용한다. 주로 동구밭의 제품을 쓰는데,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가치도 있고, 미국 USDA 유기농 인증과 프랑스 이브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을 판매해 안심하고 쓸 수 있다. 제품을 배송할 때 택배 상자 안에 친환경 옥수수 완충재를 사용하고, 포장지도 모두 종이로 만든다. 동구밭에는 샴푸 바, 린스 바, 트리트먼트 바, 설거지 바 등 다양한 제품이 있으니, 한 번 검색해보기 바란다. 다만 염증성 피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내게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고 물으면 죽염으로 세안하라고 조언한다. 당연히 식물성이며, 소독 작용이 뛰어나 염증성 여드름의 부기가 빠르게 가라앉는다. 손바닥에 소금을 소량 덜고 물에 개어 얼굴을 살살 문지르며 세안하면 된다. 양치용이나 식용 죽염을 주로 사용하는데,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다. 동남아시아의 짠 바다나 해수탕에 갔다 와서 피부가 좋아졌던 사람들이 사용하면 효과가 확실할 것이다.

100% 채식주의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는 공병 재활용 캠페인 ‘미사이클(me:cycle)’을 시작했다. 업사이클링 회사 테라사이클(TerraCycle)과 협업해 멜릭서의 모든 제품 공병을 반환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테라사이클 사이트에서 공병 수거를 신청하면 택배로 수거하며, 수거 완료가 확인되면 멜릭서 사이트에서 월 1천원의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 택배 비용도 멜릭서 측에서 부담한다. 멜릭서에서는 페이셜 크림, 비건 스쿠알란 페이스 오일, 비건 비타민 C 세럼, 비건 밸런싱 토너, 비건 립 버터를 출시했으며, 모든 제품은 피부가 민감한 사람도 사용할 수 있다. 제품을 구입했는데 피부에 맞지 않을 때는 반품이 가능하며 경우에 따라 전액 환불도 해준다.

어떤 신념도 완벽할 수 없다. 비거니즘을 지향한다고 해서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지구 환경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덜 끼치기 위해서는 클린한 삶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다. 클린 뷰티를 실천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비건 편의점 WiKi 사이트(ko.veganism.wikidok.net/wiki)를 참고하길.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비건 뷰티 브랜드와 각종 용어가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일단 시작 후에 중요한 건 지치지 않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각자의 클린 뷰티를 지향한다면 스스로에게도 떳떳하고, 좀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나래

비거니즘 삶을 지향하는 로맨스 작가.
텀블벅(tumblbug.com)을 통해 비건
레즈비언 장편 로맨스 소설 <육식주의자들>
출간을 펀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