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여성의 가슴은 풍만하고 볼륨이 봉긋해야 가치있게 여겨졌으며, 그것은 곧 아주 오랫동안 미의 상징이 되었다. 동시에 성적대상화되어 누구도 볼 수 없게 가리고 여며야할 존재로 자리했다. 네크 라인이 깊은 옷을 입을 때 앞섬을 손바닥으로 부여잡고 가슴골이 보이지 않게 가리는 행동은 여성이라면 응당 지켜야할 우아한 덕목이었고, 노브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는 ‘헤프다’거나 ‘관심종자’라는 말로 속단했다. 우리의 가슴은 왜 가슴으로서 존재하지 못했던 것일까.

 

데즈먼드 모리스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

여성의 가슴에 대한 논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왔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지나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여성의 크고 둥근 유방이 성적 매력을 주기 때문에 인류가 정상 체위를 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수유할 때에만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사람은 늘 부풀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자신과 다른 모양새를 가진 여성의 가슴에 성적 흥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이 주장은 동물적 본능에 기인한 원초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성의 가슴이 남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에 힘을 실었던 것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작은 가슴을 가진 사람은 대단한 결핍이 있는 것처럼 되어 버렸고, ’절벽녀’라는 키워드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또한 작은 가슴은 보완해야 할 단점처럼 여겨져 이들을 겨냥한 ‘뽕브라’가 란제리 매장을 가득 메웠다. 쳐지지 않고 봉긋하고 예쁜 가슴을 위해 브래지어는 죽기 직전까지 여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런 압박 속에서도 가슴의 자유를 외치는 움직임은 계속 존재했다. 1960년대 여성 인권과 해방 운동이 확산되면서 점차 가슴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항의하던 페미니스트들은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브래지어 태우기 운동으로 가슴이 브래지어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여성의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여전히 음란한 행동이었고 노브라를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게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항의하던 페미니스트들의 브래지어 태우기 운동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속옷 회사 광고의 변화다. 가슴의 크기를 여성성으로 일반화시키던 지난 날과 달리, 기능성과 착용감에 중점을 둔 내용으로 점차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속옷 회사 비너스는 최근 광고에서 “편안해도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카피를 내놓았고, BYC는 연예인의 브래지어 광고에서 브래지어를 직접 착용하지 않고 마네킹에 입힌 모습을 보여주며 선정적인 분위기를 배제했다. 디자인 또한 달라졌다. 가슴을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레이스를 포함한 갖은 장식을 두른 브래지어는 유선형의 가슴 모양에 맞춘 심플한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가슴을 죄이던 와이어를 덜어낸 기능성 제품이 여성들에게 환대받는 추세다.

아린 BYC 광고
최근 공개된 BYC 속옷 광고 속 아린은 속옷을 착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욱 힘을 싣는건 동시대를 살고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다. 헐리우드 배우 질리언 앤더슨은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가슴이 배꼽까지 쳐진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겠다.”며 노브라 선언을 해 화제가 되었다. 가슴 처짐은 미적인 부분이니 나에게 편안한 것을 추구하겠다는 그의 말은 많은 여성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최근 모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노브라로 방송하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감히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실천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가슴이 비로소 가슴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질리언 앤더슨
헐리우드 배우 질리언 앤더슨이 라이브 방송에서 노브라 선언을 하는 모습

‘자기 몸 긍정주의’를 외치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여성의 가슴을 옥죄던 옷과 사회적 시선이 점차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슴을 성적대상화한 발언이 존재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슴이 단순한 신체의 일부로 자리할 수 있게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슴이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