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의 유혹 썸네일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비건 상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스타벅스에는 베지테리언을 위한 메뉴가 하나둘 생겨났고, 풀무원에서도 지난해 100% 비건 라면을 출시했다. 그런가 하면 서울의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객실 전반에 걸쳐 비건 인테리어와 관련 용품을 도입한 친환경 비건 전용 객실을 마련했다. 동물 보호와 비건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기업도 식물성 기반 제품이나 대체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뷰티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새로 론칭하는 브랜드의 상당수가 비건 화장품을 지향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비건’일까?

 

“모든 비건의 목적은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벨기에 비건 운동가·<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의 저자)

 

쏟아지는 비건 화장품

비건(vegan)의 본래 의미는 육류나 생선뿐 아니라 달걀이나 우유 같은 부산물까지 일절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하며 엄격한 식습관을 말한다. 수년간 대충 뭉뚱그려 ‘채식주의자’ 혹은 ‘베지테리언’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먹는 것뿐 아니라 패션이나 뷰티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동물권 확보’를 실현하는 철학이나 신념, 즉 ‘비거니즘(veganism)’을 뜻하는 단어로 발전했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거듭나고 있다. 비건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소비자의 변화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전 세계적인 위기로 인해 사람들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이슈 에전에 없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는 곧 소비 윤리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별 죄책감 없이 구매하던 물건도 이제는 그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연계된 모든 인간의 노동권과 윤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숙제로 남 겨질 동물 복지와 환경적인 측면까지도 두루 생각하게 된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들의 태도는 기성 세대의 그것과 완전히 구별된다.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소비 행위로 적극 표현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동물과 환경보호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여한다. 그러니 동물실험이나 동물성 원료 사용, 생산과정에서 무분별하게 폭력적으로 동원되는 빈민국의 노동 등에 전면 반대하고 이와 관련된 제품도 거부한. ‘내가 구매한 화장품으로 인해 지구상 어딘가, 어떤 생명의 희생도 따르지 않도록 한다’는 굳은 신념이야말로 최근의 비건 트렌드를 설명하는 기본 틀!

 

비건 화장품도 결국 상품이다

그렇다면 화장품 회사들은 어떨까? 브랜드의 입장은 오히려 명쾌하다. 비건 시장에 잠재적 소비자가 얼마나 많고, 그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쓸 것인가의 문제일 뿐 찾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움직이는 것이 기업이라는 조직의 생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뷰티 브랜드의 마케터는 “지속 가능성의 필요를 화장품 회사에서 몰랐던 게 아니에요. 이제야 필요성을 부르짖고 관련 제품을 출시하는 건 과거와 달리 ‘친환경’이니 ‘지속 가능성’이니 하는 가치가 소비자의 구매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며 최근 비건 브랜드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 역시 기업의 윤리성 의식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그래야 잘 팔리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크루얼티 프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K-뷰티의 규모와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큰(그리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시장은 중국이다. 문제는 중국에 화장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중국 수출을 꾀하는 화장품 회사들이 ‘비건’ 소비자를 잡자고, ‘중국 시장’을 통째로 포기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비건 화장품을 만들 기술력이 미흡하거나, 동물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서 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상황은 바뀌었고, 브랜드들도 서서히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비건 식물성 안전한 성분?

비건 화장품이 피부에 더 좋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신념과 비전을 지닌 브랜드라 할지라도 결국 중요한 건 ‘이윤’이다. 브랜드가 없어지면 기업 윤리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일까?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한 마케팅 속임수도 늘고 있다. 정신 차리자. 동물성 성분이 들어 있지 않으니 피부에 좋다거나 자극이 없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독초도, 대마초도 100% 식물 성분임을 잊지 말자. 심지어 몸에 해롭기로 손꼽히는 감자튀김도 비건 식품이다. 또 다른 함정은 화장품 회사가 특별히 환경이나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는데도 비거니즘이라는 트렌드에 무임승차하는 경우다. 예컨대 온천수나 편백수 같은 단일 성분 미스트는 동물을 희생해서 만드는 제품이 아니고, 원래 비건인 게 당연하다. 비건 문화가 우리보다 좀 더 발달한 유럽 등 해외에서는 ‘생수’에도 비건 마크를 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분명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동물 성분이 들어 있지 않으면, 어쩐지 더 순할 것 같고 피부에도 잘 맞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문제. 하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비건이 마치 하나의 효능이나 저자극 제품군의 상징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비거니즘은 효능이 아니라 선택에서의 가치관과 윤리의 문제다. 비거니즘이 더 보편화될수록 그 근원에 대해 고민도 깊어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비건 뷰티라 할 수 있다. 바로 동물과 사람,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 말이다.

 

비건 인증은 과연 윤리적인가

미국의 마켓 리서치 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 Inc.)는 약 3년 뒤 세계적으로 비건 화장품 시장의 규모가 약 2백8억 달러(약 25조 9천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 발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우리나라 상황만 보더라도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비건 화장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있다.이쯤되면 비건 화장품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만들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지경. 아직까지 비건 화장품을 구분 짓는 식약처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비건 화장품은 몇몇 인증기관 심사 완료 후 해당 기관의 비건 인증마크를 제품에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브 비건(프랑스), 비건 소사이어트(영국), 브이라벨(이탈리아) 등이 대표적인 비건 인증 기관이며, 우리나라에도 한국비건인증원이 있다. 듣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이들로부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화장품 원료의 동물실험 진행 여부와 화장품 성분 내 동물유래성분 미포함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자외선 차단제 파문이나 유기농 화장품 인증 사례등을 겪으며 제조라인이나 설비에 대한 현장실사 없이 서류로만 진행되는 심사의 허점을 몸소 체험했다. 더욱이 심사 기준을 통과 한 뒤 해당 기관의 비건 인증마크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이라는데에도 문제가 있다. 애초에 인증을 받는데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지만, 유효기간 역시 12개월에서 최대 36개월 정도로 짧아 지속적인 판매를 위해서는 매번 비용을 지불하고 계속해서 인증을 연장해야 하는 구조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