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만큼 계절을 뛰어넘어 두루 사랑받는 컬러가 있다면 단연 핑크 아닐까? 핑크 하면 으레 페미닌한 룩에 꽃향기가 날 것만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꼭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푸크시아, 로즈, 마젠타 등 그 농도와 채도에 따라, 또 질감과 표현 방식에 따라 분위기가 천변만화하는 컬러가 바로 핑크니까. 이번 시즌 한국에 론칭한 발렌티노 뷰티의 키 컬러는 짙고 깊은 마젠타 핑크. 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향하는 ‘아리스토펑크(Aristo-Punk)’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절묘하게 대변한다. 이처럼 핑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을 증명하듯, 2022 S/S 컬렉션 런웨이에서도 다채롭고 도전적인 방식의 핑크 메이크업을 줄지어 선보였다. 먼저 핑크 로맨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 안나 수이 쇼를 살펴보자. 코럴빛이 살짝 감도는 옅은 베이비핑크 컬러를 눈두덩이와 관자놀이, 광대뼈 옆쪽까지 이어 발라 수채화 물감이 번진 듯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알투자라는 핑크 블러셔를 볼 앞쪽과 콧대까지 가로로 넓게 터치해 장난스러운 소녀를 떠올리고 했고, 블루마린은 하이틴 무드의 의상과 어울리는 글로시한 핑크 립스틱을 가볍게 발라 키치한 Y2K 무드를 완성했다.
앞서 언급한 쇼가 옅고 부드러운 농도와 자연스러운 블렌딩으로 은은하게 연출했다면, 무심한 터치와 채도 높은 핑크 컬러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핑크 룩도 있다. 대표적인 쇼는 프라발 구룽. 눈머리와 눈꼬리 쪽에 푸크시아 핑크를 툭툭 얹은 후 경계를 퍼뜨리지 않고 강렬한 색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발렌티노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발렌티노 쇼의 메이크업을 진두지휘한 팻 맥그래스는 볼드한 립과 아이라인에 핑크 아이섀도를 눈두덩이에 무심하게 발라 세련된 분위기를 완성했다. MSGM은 마젠타에 가까운 진한 핑크색 아이라인을 두껍게 그리고 다른 색조는 철저히 배제해 위트 있게 마무리했다. 이렇듯 핑크는 로맨틱한 무드부터 쿨하고 펑키한 룩까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만능 컬러다. “핑크 컬러를 색다르게 연출하고 싶다면 바르는 부위를 달리해보세요. 치크는 볼 앞쪽보다 광대뼈 옆쪽 위주로 감싸 안 듯 터치하면 본연의 혈색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건강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라이너로 눈가에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수연의 말을 참고하자. 올봄에는 도전적인 터치와 자유로운 컬러 베리에이션을 넘나드는 핑크의 세계에 빠져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