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의식을 일깨우는 ‘브이 루빈’ 향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인공 자연’ 향수

‘시낭’을 소개해주세요. 시간 주머니라는 뜻을 가진 ‘시낭(時囊)’은 제가 지은 다섯 편의 소설을 테마로 향을 제안합니다. 브랜드 모티프인 시간 주머니라는 소재는 복거일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 착안했어요. 주인공이 시간 주머니를 타고 머나먼 과거로 여행하는 내용인데, 우리가 이 시간 주머니를 타고 미래로 떠나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 결과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 이야기를 담은 향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 시낭이 탄생했습니다.

향 브랜드가 대체로 긍정과 희망을 노래하는 데 반해 시낭은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험심을 발휘해야 하는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시낭의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보면 다소 비관적입니다. 이야기 속 2500년대 인간은 더 이상 사고를 비롯한 지적 활동을 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대신 내려주는 AI에 의존하며 힘겹게 살아가죠. 또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생물체가 멸종하고 인류가 달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스토리로 단순히 비관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되도록 지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어떤 행동을 취해 지금의 삶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향과 스토리에 치중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의식과 감성을 전달하는 향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은 거죠. 모험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의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행간에 숨겨진 긍정적인 메시지까지 함께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 서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와 상상에서 시작되는 만큼 그 추상적인 이야기를 실제 이미지와 향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세상에 좋은 향은 이미 너무나 많죠. 그래서 우리는 그저 좋은 향을 만들기보다는 브랜드의 스토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향에 집중했습니다. 먼저 각 소설에서 주제가 되는 단어를 모으고, 그 단어들이 가진 데이터를 취합해 관련 향료를 조사했죠. 그렇게 찾은 향료로 조합해 만든 향이 브랜드 시낭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 향이 되었습니다.

가장 애정이 가는 향을 하나 고른다면 뭔가요? 수많은 시도 끝에 탄생한 향이라 모두 애정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향을 고르자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인공 자연(Artificial Nature)’을 꼽겠습니다. 인공 자연은 환경 파괴로 더 이상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지구를 떠나 달에 살게 된 2500년대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천혜의 자연을 상상으로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이를 동경하며 상상의 정원을 만들어내죠. 그곳에는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낸 인공 나무와 꽃이 있는데 그 향의 기록을 담은 것이 바로 ‘인공 자연(Artificial Nature)’의 향입니다. 저는 이 향을 통해 환경오염, 지속 가능성, 우리가 누리는 자연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어요.

시낭의 파운더 양태오

향 브랜드의 쇼룸을 세운상가에 오픈한 것도 파격적인 행보로 보여요. 세운상가는 오래된 건물임에도 직접 마주하면 상당히 미래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힙한 감성도 있고요. 그리고 세운상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상징적인 서울의 랜드마크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보아도 눈에 띄는 공간이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가면 미로처럼 비밀스럽습니다. 이러한 상반된 매력이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시낭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더없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곳에 쇼룸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다가오는 9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기간을 전후로 새로운 향과 디퓨저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국제갤러리 뒤편에 새롭게 오픈하는 한옥 공간에서 새로운 향과 디퓨저를 팝업 스토어 형태로 소개할 예정인데, 프리즈 서울 일주일 전에 시작해 한 달 정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이 향과 향초는 시낭 쇼룸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또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계획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것 같으니 관심 있게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