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요람인 프랑스 그라스에서 성장하면서 향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들었어요. 그라스에서 보낸 유년기는 조향사로 성장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향수의 본고장인 프로 방스 지역 그라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향수 공방과 장인이 모여 있는 곳이니만큼 자연스레 향수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조향사라는 직업을 향한 꿈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라스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만끽하며 원료의 세계를 이해하는 몰입의 시간을 보냈죠.
펜할리곤스와 함께 일하면서 ‘루나’, ‘더 페이버릿’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고, 향수 재단 TFF(The Fragrance Foundation)에서 주관하는 FiFi 어워드에서 올해의 향수 상을 받았어요. 세계적 조향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한 펜할리곤스라는 브랜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펜할리곤스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달빛에서 영감을 받은 루나, 진보적인 여성을 그린 클레데스틴 클라라, 1984년에 선보인 고전적 장미 향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엘리자베단 로즈, 세라 처칠의 양면적 성격을 향기로 표현한 더 페이버릿 등 펜할리곤스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조향사로 성장했으니까요. 전통은 지키되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고, 늘 남다른 감성을 지닌 향기를 선보이는 브랜드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최근 ‘솔라리스’라는 이름의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새로운 향수가 탄생한 영감의 근원이 궁금해요.
루나를 선보인 이후 펜할리곤스 팀에서 태양의 향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적인 제안에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죠. 태양은 수 세기 동안 인류를 매료시킨 특별한 아이콘입니다. 수많은 종교 서적과 문학작품, 그림과 조각, 심지어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태양을 금으로 그린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시인,화가,조각가등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연구하며 향기로 승화시키기로 했죠.
어떤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나요?
제가 솔라리스를 만들고 있을 때 <Face au Soleil(태양을 마주하고)> 전시가 파리의 마르모탕 모 네 미술관(Muse′ne Marmottan Monet)에서 열려, 태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어요. 클로드 모네가 태양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라는 작품이 2020년 비키 콜롬베(Vicky Colombet)가 그린 ‘해돋이(Rising Sun)’에 영감을 준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저 또한 태양을 다채롭게 묘사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았습니다. 또 고대부터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점성술의 매력에도 푹 빠졌죠. 점성술에서 태양은 우리의 천궁도와 별자리를 결정하고, 달은 상승점을 결정합니다. 역사와 예술 작품에 녹아있는 점성술의 신비로운 이야기에 특히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그러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완전한 하나의 향수로 탈바꿈했을까요?
햇빛이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향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향에 깊이를 더하지만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은은한 내음이 일품인 바닐라 앱솔루트와 일랑일랑 오일을 배합했죠. 여기에 티아레 꽃과 샌들우드 오일을 가미해 따스한 플로럴 우디 노트의 향을 만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노란빛의 기운이 가득한 향을 위해 레몬 오일과 네롤리로 마무리해 감각적인 태양의 향기를 완성했습니다.
향수 애호가들은 특정 향료를 선호하거나 각 노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솔라리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원료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요?
톱 노트를 이루는 건 태양의 빛과 산도, 에너지를 전하는 블랙커런트입니다. 미들 노트에는 일랑일랑 오일로 빛의 따스함과 부드러운 느낌을 표현했죠. 베이스 노트는 관능적인 바닐라 앱솔루트를 더해 달콤한 느낌과 함께 동물적 뉘앙스를 살리면서 부드럽게 풀어지도록 구현했습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아직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요. 솔라리스는 어떤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향인가요?
태양은 언제든 나를 따스하게 품어주는 가족이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 또 태양의 신 아폴로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젠더를 아우르고, 다양한 취향과 조화를 이루는 향수를 조향하고 싶었어요. 솔라리스는 부드럽게 감도는 플로럴 향 때문에 여성을 위한 향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성적인샌들우드 노트가 더해져 다양한 취향을 가진 남녀 모두 향유할 수 있는 향수라고 자부합니다.
향수는 시그니처, 파워, 그리고 중독성. 이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 완성된다고 말했어죠. 향수를 만들 때 어떤 점을가장 염두에 두나요?
첫째는 원료예요. 어떤 원료를 사용하고, 그 원료가 어디에서 왔는지가 중요하죠. 귀한 향료는 확보하기까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소재 특성상 이동과 제조 과정에서 변질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거든요. 향수 원료를 다루는 방식이야말로 브랜드의 시그니처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죠. 둘째는 조향사의 영감과 브랜드의 의도입니다. 스토리텔링의 파워가 더해지면 그저 향기 나는 액체에서 매력 적인 향수로 다가오죠. 마지막으로 향수를 사용하는 개인 취향과 향의 접점입니다. 이 둘이 맞아떨어지면 마치 나의 일부처럼 오랫동안 함께하는 중독적인 향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펜할리곤스는 특정한 캐릭터나 인물의 이야기를 향으로 그리는 향수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향기에 스토리텔링을 더한 이유를 알 수있을까요?
향기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추상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처럼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펜할리곤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향수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향수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들어 옷을 맞추러 양장점에 갔을 때 맡은 옷감의 냄새라든지, 한낮의 티타임 중 코끝을 감도는 달콤한 홍차의 풍미에 이끌려 향수로 만드는 것처럼요.
향수를 즐기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나요?
향수는 체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에 뿌리면 좋아요. 잘 알다시피 손목 같은 부위가 향이 오래 지속되는 위치죠.저는 여기에 더해 팔꿈치, 무릎, 무릎 뒤 오금처럼 살이 포개지는 곳에 향수를 한 번 더 뿌려요. 향기가 잘 퍼지게 하 는 따듯하고 습한 부위거든요.
솔라리스가 어울리는 계절이자 여름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는 8월이에요.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솔라리스와 함께 사용하기 좋은 향수 레이어링 레시피를 알려주세요.
솔라리스는 우디노트와 만나면 더욱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향수예요. 햇빛을 듬뿍 머금은 나무 내음이 포근하게 전해지죠. 여기에 특별한 느낌을 더하고 싶다면 솔라리스와 대조적인 노트를 사용한 향수를 레이어링해보세요. 예를 들어 싱그러운 시트러스 노트가 특징인 루나 같은 향수와 함께 사용하면 반전매력을 뽐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