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랑의 마스터 조항사 티에리 바세가 향수 마스터 클래스 진행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겔랑의 마스터 조항사 티에리 바세가 향수 마스터 클래스 진행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겔랑 가문의 일원이 아니면서도 겔랑 하우스의 마스터 퍼퓨머가 된 최초의 조향사, 티에리 바세. 이렇듯 기존의 룰을 깨는 파격적인 인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으레 그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왜 2백 년 동안 이어온 유산을 바꿔야 하나요? 그런 변화는 바라지 않아요. 전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더할 뿐이죠.” 기존의 것을 바꾸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조향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보다 호기심이라 말하는 그와 나눈 향에 관한 이야기들.

 

스위스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독특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홉 살 무렵부터 허브에 관심이 많았어요. 왜냐고 묻지는 마세요. 저 스스로도 이유를 모를 정도로 그냥 좋았으니까요. 확실한 건 학교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더 외로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돌아다니는 데 집중하게 되었죠. 다행히 1970년대에는 약용식물에 관한 책이 충분했고, 스위스의 산기슭은 채집하기 좋은 장소였어요. 각각의 허브에서 나는 서로 다른 냄새는 흥미로웠고, 때로는 말려서 항아리에 보관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허브를 열정적으로 탐구하며 사춘기를 보냈죠. 향의 원료는 계절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데, 그 계절의 리듬을 그렇게 책과 자연에서 배웠어요. 조향사로 살아가는 여정에서 이때의 경험이 저에게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런 허브에 대한 탐구심이 향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고, 조향 학교(Givaudan’s Perfumery School)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글쎄요, 다분히 우연이었어요. 제가 약초 전문가로 4년간 견습 생활을 했는데, 스무 살 때 운 좋게도 노신사 한 분(당시 조향 학교 교장이던 아덩)을 만났어요. 그분이 간단한 인터뷰 후에 저에게 정서 검사(affective test)를 한번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 결과 지보당에 입학했죠. 그전에는 제 후각이 지닌 잠재력을 저 자신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분이 알아보고 믿어줬죠. 우연이 제 삶을 바꿔준 겁니다.

아덩 선생님의 안목이 대단하네요.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제가 향기를 묘사하고 그 이름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에게 냄새(향)는 곧 감정이고, 감정을 묘사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에게 새로운 향을 창조하기 위한 첫걸음이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향이 창조한 세계로 이끄는 건 원료가 가진 매력이죠.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단계에서 시작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라 쁘띠 로브 누아르’는 리틀 블랙 드레스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컨셉트에서 향수의 디자인을 시작한 겁니다. 원료를 사용할 때의 경험이 아니라 어떤 느낌일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했죠. ‘어쩐지 원료가 검은색일 것 같은데, 검은색…’ 그러면 파촐리나 감초, 블랙 체리나 통카빈을 떠올려보는 거죠. 이 원료들의 향을 상상하면 어떤 향기가 만들어질지 감이 옵니다.

그와 반대로 원료에 집중해 만든 향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말할 것 없이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이죠. 원료가 주연이 되는 컬렉션이에요. 제가 영화감독이 되어 주연배우(원료)를 발탁하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 포스터에 주연을 맡은 배우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지듯 레이블에도 가장 핵심이 되는 원료의 이름이 새겨지는 거죠. ‘로즈 쉐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향수를 보면 ‘로즈’라는 글자가 선명히 눈에 들어오죠. 어떤 원료가 들어 있는지 인지하는 순간 자연스레 향을 상상하게 될 거예요. 장미를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조연인 바이올렛과 머스크 등을 아주 살짝 더해 장미의 매력을 증폭하죠. 조연이 화려하면 안 됩니다. 주인공의 매력이 가려지면 안 되니까요.

‘토바코 허니’는 어떤가요? 사실 담배는 향기의 원료로 접근할 때 일반적인 향이 아니에요. 향기를 위해 담배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담배 향을 풍기는 베티버를 조연으로 캐스팅해 풍미를 더했죠. 고전적인 파이프 담배의 맛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담배와 담배 연기의 깊은 향에 대한 이야기, 고귀한 과거와 재회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토바코 허니는 남자에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토바코 허니의 스토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단정할 필요는 없어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도 않죠. 토바코 허니를 대면하는 순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이에 감흥을 받아 토바코 허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전 향수를 두고 계절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습니다. 향수는 자유로운 세계입니다. 조향사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향수를 디자인하듯 향수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자유로워야 해요. 향수를 고르는 과정은 고르는 사람과 향기 자체의 만남이에요. 진심을 다해 자신만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특정 원료는 어떤 느낌의 향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관념에 갇히지 말고 감정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향수만큼 은유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집니다. ‘향수에는 무엇이 담겨야 한다’라는 당신만의 독특하고 분명한 철학이 있을 것 같습니다. 향수에 담기는 건 과연 무얼까요? 제가 원료를 탐구하기 위한 여정에 오르면 그 원료를 재배하는 지역사회와 만나 교감하면서 일종의 형제애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불가리안 로즈 오일 1kg을 얻기 위해서는 평균 3.5톤의 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딴 꽃잎이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작업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영위하고,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어요. 에센셜 오일 한 병, 향수 한 병에 담긴 것의 실체가 뭐냐고요? 담긴 것 자체는 그저 원료일 뿐이에요. 하지만 향수병 안에 담긴 진짜 메시지는 사랑과 자부심입니다. 앞서 얘기한 형제애의 진정한 반영이랄까요? 수천 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죠. 모두가 “나는 장미를 땄어”, “나는 재스민을 땄어” 하며 환호하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때, 그 삶에 대한 희망이 바로 우리가 향수 한 병에 담고자 하는 휴머니티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향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향기 그 이상의 것이죠.

티에리 바세는 1828년 겔랑이 향수에 처음 탭한 비스포크 향수 제작의 중심에 있다. 고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담은 향수를 제작한다.

티에리 바세는 1828년 겔랑이 향수에 처음 탭한 비스포크 향수 제작의 중심에 있다. 고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담은 향수를 제작한다.

티에리 바세는 1828년 겔랑이 향수에 처음 탭한 비스포크 향수 제작의 중심에 있다. 고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담은 향수를 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