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가려진 마음

유독 마음에 그늘이 지는 날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같은 장소에 도착해 일을 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 주변을 이루는 것 중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것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불현듯 코끝에 스친 바람이 매섭고, 눈앞의 풍경은 유난히 새벽같이 어두웠다. 긴 겨울을 지나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는다. 겨울을 보내며 이유 모를 무력감이 자주 찾아왔다. 이런 증상은 비단 에디터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날이 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몸을 웅크리며 곧잘 우울감에 젖어들었다. 유달리 약속이 많던 또 다른 지인은 마치 겨울잠을 자듯 SNS에 어떤 즐거운 일도 업로드하지 않았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기엔 일에 이골이 날 만큼 적응되어 있고, 마음을 건드린 어떤 일도 없었다. 곧 나는 이것이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과 빛의 상관관계

계절성 우울증은 햇빛의 양과 일조시간이 부족해 에너지와 활동량이 저하되며, 과식과 과수면을 부르는 생화학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는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도 하는데,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 인지 기능이 떨어져 식욕과 활력이 감퇴한다면, 계절성 우울증은 이와 달리 과수면 혹은 불면증 등 극단적인 수면 양상을 보이며, 평소보다 과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만성피로의 증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지하기 어려워 많은 사람이 이유를 모른 채 우울을 호소하는 일이 다반사다. “같은 시간이라도 여름에는 해가 완전히 뜬 때에 활동을 시작하지만, 겨울에는 흐리고 어두운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죠. 그러면 우리 뇌는 햇빛을 보는 시간이 줄어 평소에도 시차가 있다고 인지하게 돼요. 이런 상태가 수면에도 큰 영향을 끼쳐 잠을 쉬 이루지 못하고, 잠에 한번 빠지면 평소보다 과하게 자게 되죠. 자리에 누운 뒤 잠드는 시간이 수면의 질을 좌우하는데, 그때를 놓치면 기억력과 감정 조절이 불안정해져 더욱 예민한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서울스페셜수면의원 한진규 대표원장의 설명이다. 이런 패턴은 일조량이 현저히 적은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북위가 높은 지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우울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했던 때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슬픈 일은 세세하게 떠올린다. 이러한 편향은 뇌 깊숙한 곳 편도체 근처에 자리 잡은 해마 탓이다. 해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것인데, 우울한 상태에서는 해마가 만드는 새로운 기억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그 상태에서 쉬 벗어나지 못한다. 외부의 물리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빛을 활용한 라이트 테라피

계절성 우울증은 일단 인지하면 생각보다 간단한 원리로 치료가 가능하다. 바로 일조량을 늘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것. 라이트 테라피 혹은 램프 요법이라고 불리는 이 치료법은 매일 최소 30~40분간 밝은 빛 아래 앉아 필요한 일조량을 채우길 권한다. 태양 빛에 가까운 하얀색과 파란색을 뿜는 램프를 가까이에 두고 몸을 충전하는 방식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쉽게 설명하자면 수면에서 각성에 이르는 주기가 뒤로 밀려 늦게 잠에서 깨고 무기력해져 먹고 자기를 반복하게 되는 증상이에요. 보통의 우울증과 반대인 셈이죠. 이럴 때는 이른 아침에 인공적으로 햇빛에 가까운 밝은 조명을 쬐어 뒤로 밀려난 주기를 앞당길 수 있어요. 뇌가 현재를 겨울이 아닌 여름으로 받아들여 제 시간을 찾게 만드는 거예요.”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박성근 원장의 조언이다. 1만 룩스 이상의 광 치료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몸을 일으켜 활동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몸은 같은 상황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웅크릴수록 더욱 웅크리게 되고, 일으킬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뇌는 하강 나선을 그리는데, 다시 상승 나선을 그리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뇌의 회로가 조율되어 전과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조량이 현저히 적은 날에는 기계의 도움을 받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최대한 밖으로 나가 짧게라도 몸을 움직여보자. 박성근 원장은 자신에게 계절성의 패턴이 나타나는지 분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다이어리에 그날의 기분을 점수로 기록해보세요. 이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과거의 패턴을 잘 확인해보면, 자신이 언제쯤부터 우울감을 느끼는지 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계절처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듯, 계절성 우울증은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치유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짙은 자국이 남은 우리의 기억은 계절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겨울의 우울감이 잔여물을 남기지 않도록,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 나의 기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밝은 햇빛을 온몸으로 충분히 맞고, 짧은 산책으로 몸을 일으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이 마냥 반짝일 순 없다. 하지만 귀한 것을 감싸 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천천히 바로잡다 보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우울에 잠식당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우리의 젊은 날이 너무나 찬란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