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림 인터뷰 화보 - 마리끌레르 코리아
코트와 셔츠, 니트 베스트 모두 우영미(WooYoungMi), 바지 암위(AM.WE), 신발 리치오 안나(Riccio Anna).

프라이팬을 들고 허둥지둥 주방을 서성이던 허당, 무신경한 표정으로 툭툭 말을 던지며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성큼 들어가버리는 워커홀릭. 이 두 남자 사이에 현실 속 송재림 이 서 있다. 한껏 부풀여야 할 ‘폭탄계란찜’을 폭삭 내려앉은 불발탄으로 만들고, 멀쩡히 잘 삶아진 칼국수 면을 물에 헹궈 뚝뚝 끊어지게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김치에 넣을 고춧가루에 뜬금없이 석류식초를 털어 넣던 엉뚱한 이 남자. 얼마 전까지 <집밥 백선생>에서 어눌한 매력을 한껏 드러내던 그가 주방을 떠나 배우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배운 레시피를 다 외우지는 못해요. 하지만 뭐랄까요, 요리에 대한 느낌적인 느낌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백 선생님이 요리는 곧 상상력이라고 했거든요. 그런 쪽으로는 꽤 감을 잡은 것 같아요.(웃음) 집에서 혼자 밥 해먹을 정도는돼요. 아, 사람들이 촬영장에서 먹는 거 진짜 맛있느냐고 자주 묻던데, 거기서 먹은 거 정말 다 맛있어요.”

까칠한데 로맨틱하고, 담담하게 간질거리는 고백을 내뱉던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검도 사범 ‘이루오’를 연기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간 예능 프로에도 출연하고, 짬짬이 여행도 다니며 조용히 서른을 넘긴 그가 새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 출연한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황미나 작가가 지은 동명의 만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송재림 이 연기하는 ‘서우진’이라는 남자는 명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으로, 법보다는 언론의 영향력과 대중의 힘을 믿는 출판사 편집장이다. 잘생긴 얼굴은 촌스러운 안경테에 가려지고 늘씬한 몸매는 꼬질꼬질한 단벌 옷 속에 숨어 있다. 공부와 일밖에 모르는 모태 솔로이며 사무실에 콕 박혀 있느라 여자 만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하는 남자, 부러질 만큼 단단하고 이래저래 앞뒤가 꽉 막힌 캐릭터다. 그런 인물이 송재림 이라는 배우를 만나 두꺼운 껍질을 벗고 말랑말랑한 사랑을 꿈꾸기 시작한다. 툭툭대는 말투 어딘가에 따뜻함이 배어나고, 온통 일만으로 빽빽이 채웠던 일상이 조금씩 헐거워진다.

송재림 인터뷰 화보 - 마리끌레르 코리아
베이지 셔츠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코트 솔리드 옴므(Solid Homme).

송재림 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해를 품은 달>. 2012년 이 작품에서 맡았던 호위무사 ‘운’ 캐릭터의 성격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후, 2013년 <투윅스>, 2014년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과 <잉여공주>를 거쳐 2015년 <착하지 않은 여자들>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작품 속 인물이 되어 달려왔다.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데뷔한 이후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어요. 이번 작품도 매번 그랬던 것처럼 맡은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우리 결혼했어요>나 <집밥 백선생>은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라 별다른 걱정 없이 찍었어요. 하지만 작품 들어갈 때는 달라져야죠. 인물 연구도 많이 하고, 작품에 대한 고민도 깊이 해야 하고요.”

그가 맡았던 배역을 돌이켜 떠올려보면, 무관심해 보이는 듯한 표정에 약간은 차가운 눈빛, 호들갑스럽지 않은 잔잔한 말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비중이 적었던 캐릭터까지 모두 합하면 생각보다 꽤 다양한 성격의 연기를 선보였는데도, 대중을 관심을 받은 역은 대부분 이렇게 과묵한 인물이다.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 물론 욕심나죠. 하지만 처음 패션모델이 되겠다며 맨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뛰어들 때에 비하면 지금도 많은 변화를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막연한 먼 미래부터 꿈꾸기보다는 뭐든 하나하나 눈앞에 놓인 것부터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사는 일상이 매일 똑같은 날들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출발지에서 아주 멀어져 있게 되잖아요. 그렇게 한 폭씩 서서히 전진하는 게 좋아요. 매번 주사위를 던지고, 나온 숫자에 따라 또 최선을 다해 살고요. 열심히 주사위를 던지다 보면 모두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변신을 보여줄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송재림 은 주사위를 한 번 굴린 후, 그러니까 한 작품을 마치거나 중요한 일을 매듭지을 때면 다음 주사위를 집어 들기 직전에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처럼 매일의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자신만의 시간을 잘 배분하고 페이스 조절을 철저히 해야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일상생활에 선을 긋고 경계를 의식하면서 계획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작품은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중간중간 쉼표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적인 일상과 업무가 섞여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분명 이번 작품이 끝날 때쯤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 시즌을 위해 무언가를 차근차근 계획하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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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 셔츠 솔리드 옴므(Solid Homme).

올해 서른두 살이 된 송재림 은 요즘 서른이 두렵게만 느껴졌던 스물아홉 때를 돌아보면서, 무슨 일이든 벌일 것처럼 뜨거웠던 청춘의 시간들을 조금씩 정돈하는 중이다. 고요한 방에서 반려묘 ‘올라’, ‘레옹’과 함께 보낸 여유롭던 오후도, 간단하게 짐을 꾸려 강원도며 제주도며 전국 곳곳으로 무작정 떠난 여행도 모두 그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어준 시간 들이다.

“서른을 코앞에 둔 때는 모든 게 다 불안하게 느껴졌어요. ‘내 삶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하면서요. 그런 여러 걱정들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제 자신에 집중하고 싶었죠.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보냈어요. 그렇게 지내면서 취미가 많이 생겼죠. 작품에 들어갈 땐 일에만 집중하는 편이지만, 시간이 나면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요. 여름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다 다녔어요. 가볍게는 팔당댐 근처에 다녀오고, 강원도도 자주 찾아갔어요. 아, 혹시 서해에 동막해수욕장이라고 아세요? 전망이 진짜 근사해요. 꼭 한번 가보세요. 반대로 겨울에는 완전 집돌이예요. 고양이들이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늘어지게 한숨 자기도 하고, 중국어 연습도 하다가 몇 시간씩 색소폰을 불기도 해요. 원래 알토만 있었는데, 작년에 테너 색소폰을 새로 샀거든요. 요즘 한창 연습하고 있어요.”

일상 속의 소소한 것부터 자신을 조금씩 채워나간 송재림 은 모든 것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던 서른을 지나고, 이젠 익숙한 것에서 느껴지는 안정적인 감정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연애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람들을 더 살뜰히 챙기게 됐고, 우직하고 단단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 살이라는 시점이 별것 아닌데, 어쩜 그리 많은 고민들이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지나오니 우습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20대 때도 그랬지만 요즘은 인간관계가 더 좁아진 것 같아요. 협소하지만 깊고 오래 사귀는 편이에요. 오랜 시간 제 곁에 머물러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애도 그래요. 쉽게 뜨거워지고 결국엔 서로 할퀴게 되는 사랑 말고, 익숙하고 튼튼한 연애를 하고 싶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화려하고 멋진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송재림 이 되고 싶은 ‘좋은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과 ‘착한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착하지 않아도 좋은, 애써 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사람들에게만큼은 그냥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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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 올세인츠(All Saints), 가운과 바지 노앙(Nohant), 신발 리치오 안나(Riccio Anna).

송재림의 일상에서 발견한 것들

나는 이달부터 다시 혼자 사는 남자다. 이사는 2월 27일, 손 없는 날로 정해뒀다. 3년 동안 여동생과 둘이 살았다.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부모님 집도 마련해드렸고, 여동생 결혼 자금도 어느 정도 모아뒀다. 상냥한 아들은 아니지만 장남으로서 역할은 잘해내고 싶다.
우울할 때, 막막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건, 올라와 레옹이다. 이제 여섯 살, 일곱 살이 됐다. 고양이들 품에 얼굴을 폭신하게 묻고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꿈꾸는 나이는 서른 일곱. 고등학교 때 서른을 꿈꿨던 것처럼 이제는 30대 후반을 기대한다. 왠지 막연한, 오지 않을 것 같은 서른일곱이라는 나이. 결혼도 딱 그때 하고 싶다.
치킨은 정말 맛있다. 밥은 뭘 먹는지보다 누구랑 먹는지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치킨은 언제 누구랑 먹어도 한결같이 맛있다. 오후 6시 이후로 밥 안 먹으려고 버티다가 밤 11시, 12시쯤 되면 꼭 야식으로 치킨을 시킨다.
만화를 사랑한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요즘도 만화나 일본 애니메이션 엄청 본다. 중학교 때는 만화책 대여점에서 회원 랭킹 1등에 오르기도 했다. 학원물, 시대극 등 장르도 안 가린다.
나는 여름 스포츠 마니아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에만 엄청 돌아다닌다. 이번 여름에는 스쿠버다이빙 라이선스를 취득해볼 예정이다. 비치발리볼도 해보고 싶은 운동이다.
요즘 빠져 있는 음악은, 김광석과 재즈. 한 3개월 전부터 김광석 앨범을 달고 산다. ‘뉴욕 재즈 라운지’라는 연주 그룹 앨범도 꾸준히 듣는다. 요즘 테너 색소폰으로 연습하는 곡은 ‘Just the Two of Us’.

 

송재림 인터뷰 화보 - 마리끌레르 코리아
셔츠와 재킷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바지 노앙(Nohant), 신발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BEHIND SC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