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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재킷과 팬츠 모두 메종 플라네르 바이 아티지(Maison Flaneur by Artage), 더비 슈즈 마르셀 바이 아티지(Marsell by Artage).

돌이켜 보면 여진구는 늘 칭찬받는 배우였다. 영화 <새드 무비>에서 어린 나이에 아픈 엄마를 병실에 두고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여 기술보다는 본능으로 연기하는 재능으로 감탄을 자아냈고,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는 로맨틱한 왕자가 되어 ‘누나’들의 마음에 성큼 들어왔다. 그리고 영화 <화이>에서는 괴물 아버지들 밑에서 자란 ‘화이’가 되어 괴물 같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오열하고 소리 지르고, 거칠게 싸우는 그의 연기를 두고 이 어린 배우에 대한 칭찬은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던 아이가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으로 자랐고, 이제 그 소년은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인터뷰하기 위해 여진구를 마주한 건 제5회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열린 다음 날이었다. 이날 루키상 시상자였던 그는 영화제 개막식을 찾은 이병헌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는 “내가 이병헌 선배님과 사진 찍는 날이 오다니”라고 중얼거리며 활짝 웃었다. 찬란한 스무 살을 살아가고 있는 여진구는 3월부터 SBS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대박>에서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을 연기한다.

연잉군은 살을 주더라도 뼈를 취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다치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남자. 뜨거운 감정보다는 차가운 이성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번엔 지금까지 해온 것과 는 조금 다른 사극이에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거든요. 과거 연잉군이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의 실제 성격을 담아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껏 제가 연기해온 인물들이 감정의 힘으로 살아갔다면 연잉군은 이성의 힘이 더 강해요. 그러다보니 처음 시도하는 목소리 톤이나 표정, 시선 처리 등을 보여드리게 될 것 같아요. 이런 변화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일지 걱정도 많이 돼요.” 스무 살의 끝에 한 해를 돌아봤을 때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낸 시간이 없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마처럼, 그의 스무 살은 배우의 길에 대한 확신으로 연기를 공부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한편으론 친구들과 찬란한 청춘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채워질 것이다.

 

스무 살이 된 여진구의 2016년은 처음 해보는 게 많은 해가 되겠어요. 대학교에도 입학했으니까. 드라마 <대박> 촬영을 시작했지만 학교에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동기들과 굉장히 끈끈하게 이어져 있죠.(웃음) 스무 살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겪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요. 그런데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나니 그전의 평범한 일상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고등학생 때는 운전도 하고 싶고, 술도 마셔 보고 싶고, 어디든 여행도 가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혼자 여행도 가려고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지만 연기를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교실보다는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아요. 어려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현장 경험도 많고, 촬영 현장에도 금방 익숙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껏 현장에 대해 ‘감’으로 익숙해졌지 공부를 제대로 한 건 아니었어요. 한 2~3년전부터 제 연기를 보면 아쉬웠죠. 나 자신이 달라지거나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무언지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어릴 때부터 좋은 감독님들과 선배님들이 함께하는 좋은 환경에서 연기를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안주하고 나태해진 것 같더라고요. 배우지 않아서 나쁠 건 있지만 배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 연기라는 예술에 대해 기초가 되는 뿌리부터 다지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예술이라는 영역은 꼭 배움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꿈꿨던 대학생 여진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영화나 드라마 보면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캠퍼스를 거니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로망은 그런 거였는데, 사실 막 뭔가를 기대하진 않았어요.(웃음) 그냥 지금도 좋아요.

많은 학생이 꿈을 가지고 전공을 택하진 않잖아요. 자신의 길에 일찌감치 확신을 갖게 된 건 부러운 일이에요. 헤매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것 같아요. 뭘 하나 하더라도 이것저것 파보는 게 아니라 이걸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요. 대신 깊이 팠는데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큼 허무하겠죠. 지금으로서는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잘해내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더 잘 파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배우라는 길은 잘 선택했고, 또 잘 선택받은 것 같아요. 수많은 예술의 영역 중에 연기를 접했고, 또 그것에 흥미를 느꼈으니 운이 좋은 거죠.

슬럼프도 있었겠죠? 아직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난 것 같지는 않아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두렵기도 해요.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겠죠. 선배들 얘기 들어보니 기분이 저 밑으로 가라앉는대요. 그럴 때는 그냥 가라앉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슬럼프를 지나는 시간에도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진구라는 사람은 친구들과 있을 때도 이렇게 늘 진지할 것 같아요. 아니에요.(웃음)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것 엄청 좋아해요. 장난도 많이 치고 개구쟁이에요. 그냥 원하는 것이나 꿈에 대해 생각할 때 진지해지는 것 같아요.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부담을 느낀 적은 없어요. 낙천적이라서 그런가봐요. 그래도많은 분이 지켜보고 있으니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너무 살이 찌지 말아야겠구나, 다이어트도 하고 가꿀 줄도 알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화이트셔츠 골든구스 디럭스(Golden Goose Deluxe), 재킷 솔리드 옴므(Solid Homme), 리본 스카프 구찌(Gucci). 카디건 몽클레르(Moncler), 도트 스카프 와이엠씨(YMC), 링 투델로(2dello), 슬랙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셔츠 골든구스 디럭스(Golden Goose Deluxe), 재킷 솔리드 옴므(Solid Homme), 리본 스카프 구찌(Gucci).

스무 살을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 <대박>이 시작된 것도 그렇지만, 그 전에 ‘세월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내레이션은 목소리에 치중하는 작업이다 보니 하고 나면 안정이 돼요. 제 목소리 톤이나 발음, 말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죠. 내레이션 작업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지금껏 해온 작업 중에 가장 힘들었어요.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에서 분위기를 잘 정리해야 하는데, 제 감정이 많이 이입되면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더라고요. 워낙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 보니 제 목소리에 슬픔이 너무 많이 담겨 있으면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 파트 한 파트 쉬어가며 감정을 조절했어요.
딱 동갑내기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해요. 또래의 이야기이자 또래의 슬픔이죠. 가장 슬픈 건 그 친구들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었어요. 그게 가장 막막했죠. 아직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2년이 훌쩍 지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많이 잊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다시 한번 이 슬픈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나이가 같은 그 친구들에게 제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좋겠어요. 용기를 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준 그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어요.

 


올해는 여진구에게 새로운 게 많았던 해가 되겠네요. 가장 기대되는 건 뭐예요? 연말이 가장 기대돼요. 처음 접하는 게 워낙 많아서 올해가 끝날 때쯤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요.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설레기
도 하고 그래요.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 없이 잘 보냈다는 생각만 들어도 올 한 해는 성공일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나봐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며 주저하기보다는 충동적인 편에 가까워요. 결과와 상관없이 도전하고 나면 뿌듯하니까요. 무언가에 도전하고 ‘아, 괜히 했다. 한번 더 생각해볼걸’ 한 적은 없어요. 최근에 한 도전 중 가장 과감했던 건 운전면허를 따고 혼자 차를 몰고 나간 일 같아요. 엄청 떨렸어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언제예요? 아마도 20대에는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주 많을 거예요. 그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싶긴 한데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돼요. 그래서 아예 20대를 뛰어넘어 눈을 뜨면 30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요. 그때쯤 되면 웬만한 감정을 다 이해하고 경험해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30대, 40대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지 기대돼요.

학기 초라 정신없을 텐데 드라마까지 같이 하게 되어서 바쁘겠어요. 요즘 가장 큰 걱정이에요. 학교도 열심히 다녀야 하고 촬영도 잘해야 하니까요. 두 가지 모두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한 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패기는 넘쳐요.

뜨거운 사람인가봐요. 그런가봐요. 앞으로도 지금의 열정과 온도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하는 생각을 한순간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으면 해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싶어요.

연애도 해야죠. 캠퍼스 커플에 대한 기대도 있었는데 이제 연애 얘기 안 하려고요. 언젠가 하겠죠 뭐. 연애 진짜 하긴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마법사되겠어요. ‘모솔 몇 년이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농담 있잖아요. 마법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