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김연아
현역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는 편인가보다. 오늘 자리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이규혁(이하 규혁) 선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선수들과 두루 알고 지낸다. 예전에 선수로 같이 훈련한 친구들이니 편하기도 하고.
김연아(이하 연아) 태릉선수촌에서 지금도 보고 있는 후배들도 있다.
후배들이 상담 요청을 많이 하는 편인가?
연아 대학생 선수들의 경우엔 오랜시간 봤기 때문에 조금 편하게 연락한다. 안무를 봐주기 위해 태릉 빙상장에 종종 가는데 본인들이 궁금한 게 있으면 현장에서 바로 물어본다.
기술적인 노하우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두 사람은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생생한 조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규혁 경험 위주로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긴장하면 안 되고’ 같은 뻔한 얘기는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으니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대회 성격에 따라 마음가짐을 어떻게 달리하면 좋을지 말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내 대회는 평소시합보다 더 긴장하라고 한다. 아시아권 대회나 국제 대회 등 선수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시합에 참가하기 전, 국내 대회에서 긴장하며 세계 대회에 대한 이미지를 쌓는 것도 좋은 트레이닝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에 올림픽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인데 다만 안 좋았던 것,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다. 경기 전 인터뷰도 심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선수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과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이 뱉은 말로 인해 긴장감이 증폭될 수 있다.
연아 선수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성급히 조언하기보다 지켜본다. 아무래도 선수 스스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그게 가장 이상적이다. 경기를 앞두면 당연히 긴장이 많이 된다. 대부분의 종목이 그렇겠지만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한순간에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하나를 해도 4분밖에 안 되니 긴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 경우는 연습할 때 성공했던 동작 등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이나 상상을 하려고 했다. 걱정하다 보면 실수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계속 리플레이되고 결국 긴장해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만다.
두 사람에게 올림픽은 어떤 무대였나? 이제는 편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연아 선수라면 모두 같은 생각일 거다. 큰 무대이자 최종 목표다. 메달이 없다 해도 모든 선수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참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큰 무대다.
규혁 적어도 내 경우에 올림픽은 인생의 스승이다. 여섯 번을 도전했으니 20~30대를 모두 올림픽에 쏟아부은 거다. 출전 당시 그 나이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대회가 가르쳐줬으니까.
선수로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는가?
연아 올림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외 다른 대회가 많기 때문에 매 시합마다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을 거다. 피겨스케이팅은 운동 특성상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두 번 정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너무 그 한 번에 목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규혁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니 선수 시절이 가장 즐겁다는말이 이해가 되더라. 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 시절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시간인 것 같다.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가?
연아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도 항상 ‘아, 내일 또 운동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뭘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선수 생활 할 때보다는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
규혁 ‘선수 시절이 훨씬 좋았구나, 사회생활은 만만치 않구나’라는 생각을 한다.(웃음) 은퇴했다고 막 풀어지지는 않더라. 다음 날 일정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컨디션 조절을 한다. 어느 순간에는 시합처럼 생활을 하고 있더라.
스케이트 외 취미는 좀 생겼는지?
연아 취미가 없다. 뭐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어디 가서 뭘 해보기도 좀 그렇다. 아직 운동 외에 무엇에 관심 있는지도 잘 모르고···. 하지만 음악이나 영화는 선수 때와 변함없이 항상 즐긴다.
규혁 운동만 하던 선수들이 은퇴하면 시간이 조금 붕 뜨기도 한다. 내 경우는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대회 때부터 마음속으로 은퇴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대회까지 참가하게 된 이유가 그만두려니 공허하기도 하고, 생활 패턴이 갑자기 바뀌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선수 생활을 조금 더 했던 거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더니 지금은 비교적 일상을 잘 즐기는 편이다. 결국 또 운동이긴 한데 사이클도 타고, 골프도 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홍보대사로서 어떻게 운영되길 바라는가?
규혁 올림픽에 여섯 번이나 출전했지만 어떻게 올림픽이 준비되는지 상상도 못 했다. 선수들이 순조롭게 경기에 임하고,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우리 방식대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연아 선수들이 주인공이니만큼 인프라 구축이 중요할 것 같다. 선수들이 숙소가 어떻고, 밥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들 많이 한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경험자로서 선수들이 불편함 없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하계올림픽대회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아 선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한다. 결과를 떠나 믿고 응원해주면 좋겠다. 규혁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때는 국민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경기도 많이 열릴 거다. 직접 필드에서 보는 매력은 확실히 다르니까 경기장에 나와서 함께 응원하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