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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가 입은 원피스와 슈즈 모두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erra).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배우 수애는 뉴욕 첼시의 한 아파트에서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수애가 뉴욕을 방문한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는 직업인 만큼 어디든 스태프를 대동하고 화려하게 나타나는 배우 수애가 아니라 친구들과 놀러 온 듯 가볍고 편안하게 아파트 다이닝룸으로 들어서는 수애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이번 뉴욕 방문에 그녀의 스태프는 한 명도 동행하지 않았다.

“어제 오후에 도착하자마자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를 봤어요. 오늘 낮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다녀왔고요. 시차 극복이 안 돼 지금 눈꺼풀이 내려올 지경이에요. 오프닝에서 피곤해 보이면 안 될 텐데.” 연신 피곤하다 말했지만 <우리집에 사는 남자>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한 탓일까, 중저음이면서도 낭랑하게 퍼지는 수애의 목소리가 밝고 건강하게 들렸다. 그러나 수애는 뉴욕에서 만 하루 만에 부지런하게 곳곳을 누빈 것처럼 충전 기간 동안에도 뭔가를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드라마가 끝난 후 그녀는 아티스트 강영길 작가의 작품을 위해 코사무이에서 작업을 했고, 겨울이 채 끝나기 전에 이렇게 뉴욕 전시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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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 마주하는 고뇌와 관계를 카메라에 포착하는 강영길 작가는 물속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빛을 반사하는 물결과 함께 담아내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강영길 작가의 이번 뉴욕 텐리 갤러리의 전시 <림보(Limbo)>는 작가가 보여준 그간의 스타일이 한껏 발전하고 무르익은 전시다. <림보> 전시는 풍성한 시대를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상과 현실, 선과 악, 전통과 현재 등이 모호해진 현대인들의,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물고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뤘듯 이 ‘상실의 시대’에 현대인의 삶은 어디에 있는지, 남아 있는 구원과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물속이라는 공간에서 누우면 제아무리 물과 친한 다이버라고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물이 코를 통해 뇌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숨을 토해내며 물 아래로 가라 앉으면 편안함을 느끼는데 아마도 우리가 태아였을 때 어머니 양수 속에서 머물던 탄생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죽음의 공포와 탄생, 이러한 양면을 함께 느끼는 곳이 바로 물인 거죠.”

 

그는 수애를 만나기 전 일반인들을 모델로 삼아 이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과 연예인의 모습, 그리고 작품 속 역할 사이에서 괴리감을 갖고 있는 셀러브리티의 에너지라면 일반인들의 레이어보다 훨씬 다층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강영길 작가와 수애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예술 작품은 그저 관객으로 감상하고 즐기는, 제가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르 중 하나였어요. 참여하면서도 거창하게 예술을 하겠다,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피사체로 작품 안에 담겨 갤러리에 걸리고 나니 너무나 감격적이에요.”

텐리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림보>의 오프닝 리셉션에서 수애는 캐롤리나 헤레라의 화이트 드레스 차림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유명 사진 작가 더글러스 더블러부터 유명 아트 디렉터와 큐레이터가 참석한 그 자리에서 수많은 팬들에 둘러싸인 그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을 맞았지만 실제로는 초긴장 상태였다고 털어놓았다. “아직도 제가 갤러리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아요. 감격적이에요.”

지난 2월 초, 수애와 강영길 작가를 비롯한 팀은 코사무이의 한 호텔을 찾았다. “처음에 작가님이 연기자의 껍데기를 버려두고 오라고, 연기를 버리고 내면을 보여달라고 하셨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사실 화보 촬영은 많이 하는데, 그럴 때는 새로운 어떤 역할의 옷을 입게 되잖아요. 배우로서 언제나 늘 화려한 모습, 타인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저 자신과 만나라 하시니 신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굉장히 흥미로웠죠. 정작 수영장 속으로 들어가서는 가볍고 쉽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강영길 작가와 수애가 각자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작품은 어쩌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영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수애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표현 기술을 타고났다고 했다. 50명이 12만 컷 정도를 찍어도 열작품 뽑아내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수애와 2박 3일간 5천 컷을 작업해 20컷 정도의 작품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텐리 갤러리 전시를 수애와 함께 한 작업만으로 채우면서 강영길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이 한 번에 정리된 기분이라고 했다. “작가님이 이번 전시작 가운데 두 작품 정도를 하자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모든 작품에 제가 참여하게 된 점이 놀라워요. 작업에 참여하고 나니, 미술이라는 장르를 더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뉴욕의 갤러리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그녀는 더 고무된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기도 했고, 작품 속 그녀의 모습을 세세하게 묻는 관객도 있었다. 전시작에 등장한 수애에게서는 그녀만의 예쁜 눈동자와 가녀린 팔다리, 수줍게 들어가는 보조개도 볼 수 없었다. 작품 속 주인공이 인간이라는 것만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 덩어리와 색만 남은 형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는 이에게 각각의 작품으로 자신만의 섹시함, 순수함, 괴기스러운 모습 등 다양한 느낌을 전달했다. 아름다운 배우 수애라는 틀을 벗어나 결국 인간의 보편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피사체로 형태가 추상화된 스스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드라마에서와 달리 몽환적으로 빛났다. “저 작품이 괴기스럽다고요? 전 너무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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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며칠 동안 그녀는 뉴욕의 갤러리와 유명 아트 페어인 아모리 쇼까지 참석하며 끊임없이 예술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원래 혼자 여행하면서 갤러리나 미술관 다니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이번처럼 미술에 대해 많이 배우고 느끼게 된 건 처음이에요. 전시회 이후, 작품을 대하는 제 모습이 바뀐 것을 느껴요. 요 며칠 동안, 지난 몇 년간 배운 것 이상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작가님께 제가 먼저 제안했죠. 다음에는 인도로 가서 하자고.(웃음). 다들 저더러 돈을 많이 벌어서 컬렉터가 되라고 하더라고요. 고민 좀 해보려고요.(웃음).”

그렇게 뉴욕에서 맞은 며칠을 꽉 채워 보낸 그녀는, 여전히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마지막 날 밤까지도 눈을 비비며 공연을 보러 갔다. 뉴욕에서도 실험적인 공연으로 유명한 이머시브 연극 <슬립 노 모어>를 보기 위해 머리를 질끈 묶고 바닥이 두꺼운 스니커즈를 신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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