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나폴레옹>은 3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 동안 나폴레옹 생애 가장 뜨거운 순간과 혹독한 시간이 펼쳐진다. 온도가 완전히 다른 삶을 오가는 나폴레옹과 그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조세핀. 정선아와 한지상은 누구보다 뜨겁고 매혹적이며 때론 절망의 나락에 빠지는 두 인물을 연기한다.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노래와 연기로 단단히 무장하고 공연하는 뮤지컬계의 슈퍼스타 정선아와 한지상은 오늘도 서로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대를 열기로 채운다.
공연이 벌써 막바지다. 나폴레옹, 조세핀과 많이 친숙해졌나? 정선아 조세핀이라는 인물은 당대 사교계를 풍미한 여인이다. 나를 조세핀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조세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공연이 중반부를 넘어섰으니 많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항상 새롭다. 그게 공연의 매력인 것 같다. 지금은 마지막 공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회차가 지날수록 편해지는 부분도 있다. 그 반면에 더블, 트리플 캐스트이다 보니 상대 배우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느낌이 매번 다르다. 한지상 나폴레옹은 밑바닥에서 시작해 성공의 절정에 오르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굴곡진 인생 그래프를 그린 인물이다. 극적인 생의 희로애락을 몇 시간 안에 함축해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는 어떤 공연이든 한 신 한 신을 어떤 색깔로 표현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물방울이 모여 큰 강줄기를 이루듯이 매 신 승부를 걸다 보면 하나의 공연이 된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을 점점 더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위 에너지의 총합이 커지는 것 같다.
<나폴레옹>은 두 사람이 처음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무대다. 한지상 선아 씨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경력으로는 선배다. 뮤지컬계에서 정선아라는 배우는 당대 뮤지컬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자극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영광스러웠다. 당시 서로 마주치는 장면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연인을 연기하게 되어 그때의 아쉬움이 이제야 채워지는 것 같다. 정선아 한지상 씨는 연인으로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지상 씨는 나와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하이 템퍼라면 지상 씨는 집중력과 지구력이 대단히 좋다. 무대에서 반대 성향의 배우를 만나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면이 상대 배우 덕분에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데, 그런 면에서 지상 씨는 좋은 상대 배우다.
나폴레옹처럼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 한지상 난 후천성 개발형 배우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긴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뮤지컬을 시작했다. 뮤지컬 <그리스>에 처음 캐스팅되었는데 티켓 예매 사이트에 있던 내 이름이 사라진 적도 있다. 모두 다 내가 미숙했기 때문이다. 그때 세상이 이런 거구나 하고 새삼 느꼈지. <그리스> 공연 막바지 무렵 이름이 몇 번 다시 살아났다. 비록 이름이 빠졌지만 매일 연습하고 하루도 안 빠지고 티켓을 끊어 공연을 보러 갔었다. 한 50~60회 지나니 알아주더라. 정선아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뤘다. 다만 꿈이 너무 일찍 현실이 되니까 기쁜 반면 열정이 일찍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꿈을 이루기 전에는 뮤지컬을 보고 말 그대로 미쳐 있었는데, 내 일이 되니 어느 순간 그토록 뜨거웠던 열정이 다 어디로 갔나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지금은 열정을 잃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 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웃음)
어떤 배우도 다음 공연을 생각하며 에너지를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120퍼센트를 쏟으면 쏟았지. 그날그날 감정을 다 쏟아부으면 신기하게 그만큼의 에너지가 다시 채워진다. 아끼는 법도 모른다.
공연은 시작하자마자 관객 수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연기나 작품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그만큼 긴장감이 엄청날 것 같다. 정선아 내가 연습으로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으면 관객은 나를 통해 대본을 완벽하게 받아들인다. 공연의 80% 이상은 연습이 좌우한다. 관객은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배우의 모습을 금세 눈치챈다. 라이브 공연이니 긴장감은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부담이기보다는 즐거움이다. 한지상 냉정하지만 오히려 속 시원하기도 하다.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공연의 묘미고, 나도 이제는 그걸 즐긴다. 뮤지컬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런 긴장감이 일종의 압박감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책임감이 더 크다.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 공연을 보러 와 준 관객에 대한 책임감.
3시간 가까이 무대에서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다음 날 공연을 위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나? 정선아 아마 어떤 배우도 무대 위에서 다음 공연을 생각하며 에너지를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120퍼센트를 쏟으면 쏟았지. 그날그날 감정을 다 쏟아부으면 신기하게 그만큼의 에너지가 다시 채워진다. 아끼는 법도 모른다. 힘들어 죽을 것처럼 연기를 한 후에 어떻게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날의 감정에 충실해 모든 걸 쏟아내면 오히려 다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한지상 <나폴레옹>을 예로 들면 무대 위 어제의 정선아와 오늘의 정선아가 다르다. 매번 완전히 다른 느낌의 여인이다. ‘아, 오늘은 이런 감정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스릴마저 느껴진다. 그러고 어제의 여인은 금세 잊혀진다. 그건 말하자면 본능인 것 같다.
두 사람에게 뮤지컬이란 어떤 존재인가? 한지상 뮤지컬은 나를 구제해줬다. 사실 원래 꿈은 연극배우나 영화배우였다. 연극에서 단역을 맡은 적도 있고 TV 재현 프로그램에서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리스> 비공개 오디션을 보고 덜컥 뮤지컬의 세계에 들어왔다. 뮤지컬이란 꿈을 좇아 이 세계에 들어온 건 아니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뜻대로 이루지 못해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뮤지컬을 만났다. 뮤지컬을 막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나는 실력 차가 엄청 클 것이다. 뭣도 모르고 이 세계에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뮤지컬은 하면 할수록 사랑스러운 존재다. 정선아 중학생 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했고 뮤지컬만 보며 달려왔다. 일찍 꿈을 정한 만큼 준비할 시간이 많았다. 뮤지컬 외에는 내 미래를 위한 꿈을 꿔본 적이 없다. 죽을 때까지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뮤지컬일 것이다. 뮤지컬 배우가 아닌 뮤지컬 그 자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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