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역의 독립영화가 안정적 기반 위에서 제작돼 끝내 완성될 수 있도록 기획 및 개발부터 후반 작업까지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는 아시아영화펀드(ACF). 6백89편의 장편 독립 극영화 및 장편 독립 다큐멘터리 중 13편이 올해의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그중 작품의 마지막 완성도를 높이는 후반작업지원펀드에 선정된 4명의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처음 만날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봄밤>, 강미자 감독
DIRECTOR Kang Mi Ja
단편 <현빈(玄牝)>(1998)과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2008)로 두 차례 부산을 찾았다. 권여선 작가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봄밤>은 옌볜을 배경으로 청춘의 단상을 기록한 <푸른 강은 흘러라> 이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이다.
먼저 ACF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첫 장편 이후 오랜만에 부산을 찾는 소회를 묻고 싶다.
촬영을 마친 뒤 예산상의 이유로 온전한 후반 작업은 엄두를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ACF 펀드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사히 후반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더 기뻤던 건 영화제에서 <봄밤>을 주목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극적 표현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영화에 응원을 보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큰 의지가 됐다.
권여선 작가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원작이 지닌 어떤 면에 감응했나?
나이가 들면서 내 안에 아픔이란 감정이 깊이 고여 있다고 느끼곤 했다. 소설 <봄밤>을 읽으며 그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느꼈고, 이 감정을 영화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현실에서는 눈물이 목젖까지 차올라도 쉬이 울지 못 하는데, 소설 속 영경의 울음이 내 마음을 많이 건드렸다.
소설 속 주인공 ‘영경’과 ‘수환’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왔나?
영경과 수환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껴안아준다. 사회는 이들을 알코올중독자에 병든 신용 불량자 취급하지만, 이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버텨내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서로의 죽음을 지켜주는 사랑을 할 수 있었겠지.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영화화를 결심한 순간부터 소설의 재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아픔이라는 감정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다. 이들이 함께한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영화적 시간으로 재해석해 풀어내면서도, 그 아픔을 온전히 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어려운 과제였다. 반복과 암전이라는 구성이 영화 속 두 사람의 시간을 무한의 시간으로 만들어줄 거라 상상하며 작업했다.
소설에 있지만 영화에서는 제외된, 또는 소설에 없지만 영화에는 더해진 장면이 있나?
마지막 외출을 앞둔 영경이 수환에게 톨스토이의 <부활> 속 한 대목을 읽어주는 장면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 고집해 영화에 넣었는데, 끝내 편집 단계에서 제했다. 소설에서는 영경과 수환이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이산가족의 아픔에 빗대어 서술했다면, 영화에서는 이를 술에 취해 요양원으로 돌아오다 쓰러진 영경을 업기 위해 수환이 기어가는 장면으로 표현했다. 이 장면 이후에는 그 어떤 대사로도 영경과 수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는 장면과 후반부 몇 장면을 덜어내야 했다. 영화의 시각적 표현이 지니는 힘을 새삼 느낀 순간이다.
<봄밤>을 만들며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나?
사랑의 기쁨은 늘 아픔의 시간과 함께한다는 것. 그 사실이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작품이 당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가?
<봄밤>은 처음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한 단락 매듭짓는 작품이다. 지금의 내가 어떤 감정을 강하게 느꼈고, 그것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고, 애써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을 영화제에서 선보일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 영화에 아픔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또 아팠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 찰스 후 감독
DIRECTOR Charles Hu
1997년생 작가이자 감독. 단편 <리버 스테잉>(2019)이 베이징 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고 하이쇼츠!(HiShorts!) 영화제에서 최우수 극영화상을 수상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섹션에서 상영하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첫 장편영화다.
한국에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어땠나?
박상수 감독과 한명환 음향감독의 도움으로 색보정과 사운드 믹싱 작업을 이어가며 작품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었다. 이번 협업이 서사와 캐릭터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첫 장편을 뉴 커런츠 섹션에서 선보인다. 부산에서 프리미어를 앞둔 소회가 궁금하다.
오래전부터 주목해온 영화제에서 첫 장편을 선보인다니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제는 창작자와 관객, 영화 관계자를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고 영화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리이지 않나. 부산에서 상영을 마치고 관객을 마주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매우 기대하고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12년 전 발생한 대규모 지진을 계기로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와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주인공 ‘리’가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해 다음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상실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당 소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나?
트라우마는 과거에 벌어진 일이 단초가 되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지 않나.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사건을 하나씩 들추며 진실을 찾아나가지만, 결국 과거의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성장한다. 더딘 속도로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때때로 우리 에게 과거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이 밀려올 때 지나온 시간을 바꿀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용감하게 직면하는 것 또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전개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형식적 시도를 더했나?
주인공이 어린 시절 쓴 <물속 괴물>이라는 소설이나 아버지가 남기고 간 카메라와 같이 과거의 흔적이 남은 물건을 활용해 두 시점을 연결하려 했다. 안타까운 사고로 떠나보낸 친구의 잔상이 카메라에 나타나거나 소설 속 내용이 성장에 관한 우화로 변해가는 등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채 사건이 진행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과거의 진실을 가리키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영화를 만들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제 내 고향 친구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캐릭터다. 그만큼 중국에서 살아 가는 동시대 청년들의 현실과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중국 사회의 면면이 영화에 담겼으면 했다. 영화를 통해 국적과 문화권이 다른 관객도 중국 청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애정을 담아 소개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꼽고 싶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주인공이 눈을 감고 숫자를 세다 이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장면인데, 마지막 날 이 장면을 촬영하던 중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마지막 햇빛마저 사라지던 순간이 있었다. 촬영을 잠시 멈추고 현장에 있던 모두가 다함께 지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순간 인생이 한없이 외로운 게임 같다고 느꼈다. 숨바꼭질이 서사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지만, 그 순간 모두가 공유한 쓸쓸함이란 감정이 이 장면의 의미를 완성해준 것 같다.
<상상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니디 삭세나 감독
DIRECTOR Nidhi Saxena
인도의 각본가이자 영화감독. 인도 전통음악이 사라져가는 현실과 인도 여성 리더들의 여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상상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도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첫 장편 연출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ACF 지원작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한국에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어땠나?
배움이 많은 현장이었다. 한국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인도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접하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모든 요소를 세밀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 이야기에 층위를 더해주었고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한층 높여줬다. 2년에 걸쳐 만든 첫 장편을 부산국제영화제같이 권위 있는 플랫폼에서 선보이게 돼 감독으로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 영화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험성 짙은 영화도 국경을 초월해 환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상상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인도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여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화에 낡고 허름한 집에 갇힌 채 살아가는 여러 여성이 등장하는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이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주인공 ‘니디’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편지를 건네는 설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맞서고 이내 치유받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시작점이 된 특정 사건이나 인물이 있나?
이 영화는 내 자전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권력관계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 철학자 R.D. 라잉의 저서 <가족의 정치학>을 읽고 되짚어본 내 성장환경과 어머니와의 관계, 가족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통받는 주변 여성들의 실제 사례가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과거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이 소통한다는 설정은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나?
두 시점을 중첩하는 방식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주인공의 현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한 번 겪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고 삶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에 영향을 주는 트라우마라는 상처의 무게와 파장을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엇인가?
주인공 니디와 어머니가 공유하는 억압의 감정, 두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트라우마의 역사를 다루는 것.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아도 두 인물이 공유하는 깊은 감정의 골이 느껴지길 바랐다. 그 점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점차 시들어가는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담아냈나?
대학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한 덕에 평소 영화 속 장면을 하나의 캔버스처럼 인식해 그림 그리듯 화면을 구성하곤 한다. 빛과 그림자, 배치나 구도 같은 요소를 등장인물의 정서 상태를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하는 셈이다. 작중 니디가 머무는 집은 조명을 최소화해 폐허 같은 분위기로 연출했고, 집안을 정적이고 제한된 프레임으로 담아내 고립된 여성들의 상태를 반영하고자 했다.
그간 여러 작품에 걸쳐 여성의 삶과 그들의 내밀한 감정을 밀도 높게 담아왔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일이 감독으로서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
여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삶에서 직면해야 하는 숱한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내가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존재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 삶에 내재한 복잡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관객이 당신의 영화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라나?
트라우마와 기억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되돌아보며,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 지니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이 엠 러브>, 백승빈 감독
DIRECTOR Baek Seungbin
존 파울즈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단편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미장셴 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아이 엠 러브>는 <장례식의 멤버> <나와 봄날의 약속> <안녕,내일 또 만나> 이후 선보이는 네 번째 장편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지석’ 섹션에 선정돼 관객과 만난다.
ACF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ACF 펀드를 포함해 제작의 모든 단계를 외부 지원을 통해 헤쳐올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만큼 결과물에 대한 책임감과 도움을 준 분들에게 느끼는 염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이 엠 러브>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자신이 사무 보조로 일하는 약국에 매일 들르는 어느 손님에게 매료된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꼭 ‘사랑’이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단초가 된 사건이나 인물이 있나?
10대 때 신문 해외 토픽 코너에서 한 아일랜드 여성이 저지른 살인 사건에 관한 기사를 접한 게 시작점이 됐다. 이 일화를 한동안 잊고 지내다, 오랜 팬으로서 그의 음악을 즐겨 듣던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그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다시 떠올랐다. 아일랜드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이지만, 시네이드 오코너의 ‘You Made Me the Thief of Your Heart’라는 곡을 반복해 듣 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일화를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주인공 ‘오사랑’을 연기한 장선 배우와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어땠나?
장선 배우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연기자다. 그의 존재감은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뛰어가듯 촬영해야 했던 이번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혼자서 조용하게 바쁜 나 같은 연출자에게는 이토록 자립적으로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는 배우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장선 배우가 인물을 표현해낸 방식 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면?
작중 오사랑이 짝사랑 상대에게 약을 먹인 뒤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으로 그를 데려가는데, 장선 배우는 이러한 오사랑의 범죄적 행위를 단지 짝사 랑하는 상대를 곁에 두려는 기행처럼 그리는 대신 특유의 은근한 미소로 관객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대담한 연기를 보여줬다. 작품에 대한 호오를 떠나, 누구든 영화를 보고 나면 장선 배우의 미소가 담긴 클로즈업 신을 한동안 기억하게 될 거라 본다.
사랑이 한 인간에게서 이끌어내는 여러 면 중 특히 극단적인 면을 조명한 계기가 궁금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것을 오랜 시간 즐겨온 영향이 크겠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인간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금 어두운 면 정도라 말할 순 있겠지. 창작자로서 내가 가진 지극히 평범한 취향이라 생각하지만, 유달리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영화에 영미권 문학작품의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 인용한 W.H.오든의 시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는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이 너무도 소란스러워 괴로워하던 오사랑이 무덤가에서 산책하며 마음속 평화를 얻게 됐을 때 운명적으로 만난 시다. 이 시가 주인공의 삶에 얼마큼 영향을 주었는지는 작품 안에 보기 좋게 숨겨두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애정을 담아 소개하고 싶은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
“그 어떤 비루한 삶이라도 인생의 보상이라고 믿을 만한 순간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견딜 만한 삶이 아닐까요?” 오사랑이 늦게나마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을 때, 한 수업에서 노교수가 하는 말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 삶이 힘들 때마다 이 목소리를 떠올리며 위안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대사다.
<아이 엠 러브>를 만들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정의내려 보기도 했나?
사랑은 병이다. 하지만 걸리고 싶은 유일한 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