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는 남자들
나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름과 사진이 나오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웃긴 건 맞선을 볼 때 ‘제가 검색을 해봤는데요…”라고 하면서 내가 했던 일이나 나에 대해 줄줄 읊는 남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딴에는 호감 표시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입장을 바꿔 나는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상대방은 나의 사실적인 외모(뽀샵이나 앱을 거치지 않은)부터 커리어를 전부 알고 있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만나기도 전부터 초 쳤던 남자는 ‘지금 검색해서 사진 보고 있어요! 어머니도 함께 검색하고 계시네요ㅎㅎ’라고 하는 바람에 조용히 잠수를 탔다. 검색하면 뭐든 나오는 이 시대에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매너를 지키는 게 그렇게 힘들까. _B, 프리랜서 아나운서(32세)
사귀기 전에 확인할 것
‘모쏠’ 인생 37년, 연애는 포기하다시피 지내던 어느 날 간만에 소개팅이 들어왔다. 드디어 디데이. 만나기 전 며칠간 미리 통화를 해서인지 우리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내 인생 첫 연애가 시작됐다. 좋아 죽는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우리 집에서 처음 자던 날. 떨려서 한숨도 잘 수 없는 나와 달리 그는 이미 딥 슬립 상태였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그의 휴대전화. 의심 따윈 1도 없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패턴을 푸니 마침 카톡 창이 열려 있었다. ‘○○아줌마’라는 이름이 이상해 대화창에 들어가보니 온갖 야한 사진과 음담패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돌아 나와 카톡 목록을 쭉 보니 ‘예니’, ‘하은’ 등의 이름으로 속옷 차림의 여자 사진을 프로필에 걸어둔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를 깨워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보여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나갔다. 난생처음 시작한 연애 상대가 성 도착증 환자였다니 할 수만 있다면 컨트롤 X로 잘라내고 싶었다. 그걸 보지 않았을 경우 뒤에 펼쳐졌을 암울한 미래는 더더욱 상상하기 싫고._S, 학원 강사(38세)
현자타임이 올 때까지
내 친구들은 내가 SNS만 켜면 질색한다. 앞에서 SNS를 켜는 건 금지 행위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와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이든 친구를 맺고 나면 대략 4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녀의 전 남친, 전전 남친의 흔적을 샅샅이 찾는 내 버릇 때문이다.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우선 전체 피드를 간단히 훑었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남자 사진은 없었다. 이후 심심할 때마다 하나하나 들어가 댓글과 함께 있는 사람 태그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댓글에서 누군가가 자주 소환하는 아이디를 발견했다.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 살펴보니 고*드라는 브랜드명이 적힌 지갑 선물에 내 여자친구의 아이디가 태그되어 있었다. 이놈이구나. 그의 인스타그램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뒤에 그놈이 쓸 것 같은 이메일을 붙여 (왠지 지메일을 쓸 것 같았다.) 메일 주소까지 구글에 쳐봤다. 유일하게 발견한 건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에 보냈던 사연이었다. 그제야 나는 신들린 클릭질을 멈출 수 있었다. _A, 디자이너(31세)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모두 찾을 수 있다. 솔직히 IT 강국에 사는 젊은이로서 이건 얼마나 절실하게, 집념을 가지고 달려드느냐에 달린 문제 아닌가. 그렇다고 ‘아무나’의 뒤를 캐진 않는다. 연애할 때는 특히 더 신경 쓴다. 이미 몇 번의 실수를 통해 깨달은 바 연인의 과거는 모르는 게 약이니까. 문제는 연애가 끝나고 나서다. 연애를 하지 않아서 고이는 ‘잉여력’을 총동원해 전남친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전남친이 나와 헤어진 다음 만난 여자는 H 의류 디자인 회사를 다녔고 뉴욕대를 나왔다. 내 학력이 문제였나? 그 여자와 헤어지고 만난 모 방송국의 PD와는 몇 개월 안 만나고 결혼을 했는데 즐겨(?) 뒤지는 페이스북에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길래 인스타그램에서 그녀의 한글 이름, 영어 이름, 직업 등등을 한 시간 넘게 조합한 끝에 아이디를 찾아냈다. (덕분에 전 남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 덤으로 얻었다.) 지금 난 전남친의 신혼집 위치는 물론 그 집에서 쓰는 청소기 브랜드명까지 알고 있다. 스토커냐고? 그냥 잉여력에서 나오는 취미 정도라고 해두자._K, 작가 지망생(3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