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갑을 낀 웨이터가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고동색 나무 상자를 열었다. 작고 검은 덩어리가 하나, 둘, 셋, 넷. 웨이터는 그중 하나를 집어 먼저 서빙된 수프 위에 갈아 넣기 시작했다. 질 좋은 트러플이었다. 트러플을 아낌없이 긁어 넣은 웨이터는 다시 상자로 돌아가 두 번째 트러플을 집는 듯했다. 트러플을 또? 그러나 그는 손을 내리고 정중히 말했다. “트러플인 줄 알았죠? 이건 트러플을 가장한 소고기 스테이크입니다.”
벨라지오 호텔에 자리 잡은 ‘르 서크(Le Cirque)’는 2017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 5스타에 빛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프랑스의 오래된 서커스장을 연상시키는 내부 인테리어와 달리 서른 살의 젊은 셰프는 코스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진 어떤 음식일지 예측할 수 없는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맛있는 데다 재밌기까지 한 식사는 헤이즐넛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채운 구 모양의 초콜릿 위에 핫초콜릿을 붓는 푸드 포르노급 비주얼로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끝났다.
같은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바로 옆에 자리 한 ‘피카소(Picasso)’는 전혀 다르다. 스페인 베이스의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는 이곳은, 압도적인 꽃 장식과 한층 어두운 조명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25점의 피카소 그림 덕분에 좀 더 격식을 차려야 하는 분위기다. 이곳은 음식에 대한 창의력보다 음식 본연의 깊은 맛에 충실하다. 지금까지 많은 관자 요리를 먹어봤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간이 적당한 관자는 난생처음이었으니까. 피카소 역시 2017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 5스타를 받았다.
고든 램지는 전 세계 미식계가 기대하고 있는 <헬스 키친> 다음 시즌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고든 램지, 훌리안 세라노, 데이비드 장 등 전 세계 스타 셰프들이 앞다투어 식당을 두세 개씩 열고 있는 터라 거의 매달 수준 높은 레스토랑의 리스트가 바뀌고 있는 라스베이거스는 지금 세계 미식의 중심에 있다.
총 15만 개의 객실을 보유한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1940년대부터 저마다 양과 질을 모두 만족 시키는 개성 강한 뷔페를 선보이며 ‘호텔 뷔페=라스베이거스’라는 공식을 수십 년째 지켜가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맛집 따라 여행코스를 정하는 ‘푸디’들에게 강력한 매력 요소가 될 수밖에.
LA의 재기발랄한 푸드 매거진 <보나페티>가 주최하는 미식 축제 ‘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도 새삼스러울 것 없이 매 회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어왔다. 매년 4월 말이나 5월 초에 열리는 이 행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식당과 셰프들이 총 출동해 풀사이드 파티, 피크닉, 디저트 천국 등의 컨셉트와 프로그램에 맞춰 최고의 음식을 준비한다.
이 도시가 작정하고 제공하는 것들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된 사람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천국과 다름없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원한다면 중세의 베네치아로도, 뉴욕 한가운데로도 나를 데려간다. 밤은 더욱 화려하다. 캘빈 해리스, 카이고 등이 클럽에 상주하며 음악을 틀고 운이 좋은 날에는 다프트펑크의 디제잉까지도 볼 수 있다. 캘빈 해리스가 트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쇼걸들을 달리 세상 어느 클럽에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