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계산대에서 옆 계산대가 열릴 때
마트 계산대 앞에서는 누구나 불행해지기 쉽다. 계산대에 도착해서야 원 플러스 원 상품을 챙기려 하는 사람, 지갑 속 카드를 한 장 한 장 꺼내며 적립 카드를 찾는 사람, 서로 계산하라고 다투는 부부 등이 앞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은 시점에 열리는 옆 계산대는 그래서 축복 그 자체다.
벼르고 벼르다 손톱을 깎았을 때
신경에 거슬리는 손톱을 깎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얼마일까? 우리는 인생에서 꽤 오랜 시간을 손톱깎이를 찾으며 보낼 것이다. 긴 손톱을 깎지 못하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자판을 두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고양이를 쓰다듬은 뒤 요리를 하고, 그 상태로 밥을 먹고, 마침내 잠옷으로 갈아입고 손톱을 깎아낼 때의 기분은 행복에 가깝다.
호텔 화장실을 이용할 때
집 밖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려 할 때,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있는 주유소 화장실밖에 선택권이 없다면?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친구들이 먹고 마시는 거실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호텔 화장실은 가장 안전하면서 호사스러운 행복감을 선사한다. 닐 파스리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타고난 유전적 결함 탓에 약간의 호사와 안락함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텔 화장실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기랑 놀 때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는 이 말에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육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삼촌이나 이모 입장일 때, 아기와 노는 시간은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얼굴을 이상하게 망가뜨리거나 과장된 몸짓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주니까 말이다. 아이랑 하이파이브를 할 때, 반려동물의 생일을 축하해줄 때도 비슷한 종류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가 복사기에 걸린 종이를 빼줄 때
회의 시간을 3분 앞두고 급하게 출력하려는데, 종이가 프린터에 걸렸을 때. 짧지만 너무 곤란한 그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뻗는 천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천사가 존재하는 한, 회사도 다닐 만한 곳인지 모른다.
수하물 컨베이어에 내 가방이 가장 먼저 나올 때
1등으로 짐을 부쳤다고 해서 내 짐이 먼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떠나려는 비행기를 가까스로 붙잡고 짐을 실었다고 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 공항에서 짐이 나오는 순서는 그야말로 복불복이고, 나의 운을 점쳐볼 수 있는 순간이다.
새 차의 비닐을 벗겨낼 때
반년 정도 애지중지하며 아이폰 비닐을 붙이고 다니는 이유는 나중에 더러워진 비닐을 떼어낼 때 기분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인내의 시간이 길수록, 비닐을 떼어낼 때 쾌감은 더욱 커진다. 전자제품도 좋지만, ‘비닐 떼기’의 최고봉은 신차를 구입했을 때일 것이다. 자동차 곳곳에 떼어내야 할 비닐이 수백 개는 족히 되니, 마음껏 즐기시길.
운전하면서 감자튀김 꺼내 먹기
주말의 점심 해결을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차를 끌고 햄버거 사러 갔을 때. 집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다. 이럴 땐 빨간 신호가 반갑다. 긴 신호에 걸려서 종이봉투에 든 감자튀김을 하나 꺼내 먹는 데 성공했을 때.
퀴즈쇼 출연자보다 먼저 정답을 맞혔을 때
누군가에게 자랑하기는 뭣하지만 혼자 있으면 출연자보다 빨리 정답을 맞히기 위해 소리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집에서는 누구나 스포츠 캐스터다. 방금 내가 욕을 섞어가며 비난한 경기를 해설가가 비판해줄 때, 솔직히 좀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