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로 만든 버진로드
홍경수ㆍ이사라
이사라와 홍경수는 7년간 뉴욕과 독일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식을 간소하게 하기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처음에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시청에
서 간단히 혼인 서약만 할 생각이었지만, 독일에 신혼살림을 차리면 아무래도 만나기 어려워질 가족들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한국에서 식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가족들에게 여유로운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한옥 공간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낙선재는 녹음을 뒤로한 풍경부터 넓은 마당, 정갈한 음식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낙선재의 마당에는 각종 장이 담긴 장독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결혼식 당일에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도록 장독대를 모두 치울 수도 있었지만, 신랑 신부는 이를 버진로드로 활용하기로 했다. 장독대 사이로 길을 내고 그 위에 둘만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올려놓았다. 드넓은 마당을 모두 꽃으로 채우기엔 부담스럽고 한옥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꽃 장식은 과감히 생략했다. 남한산성의 푸른 나무와 수수한 들꽃이면 배경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드레스는 야외 결혼식이니만큼 활동하기 편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골랐고 부케와 헤어피스는 지인이 선물해줬다.
예식은 주례와 축가 없이 가족들의 메시지로 채워졌다. 신부의 어머니가 편지를 읽었고, 친척들이 시를 낭송하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가족 모임 같은 단란한 분위기에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어 신랑 신부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외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들에게 신랑, 신부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며칠간의 애프터 파티로 보답했다. 막걸리 파티와 창덕궁 달빛 기행, 오대산의 한 사찰에서 고즈넉한 템플 스테이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와준 친구들과 먹고 여행하고 사색하며 보낸 며칠간의 피로연은 둘만의 기억을 모두의 추억으로 만들어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결혼식 당일 가장 가까이서 식을 즐겨야 할 가족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식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와중에 당사자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기가 어렵기 때문. 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부분은 미리 확실히 해둬야 당일에 가족과 친지들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예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