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펀치가 두 번째 공연을 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관객이 앙코르를 서너 번 하더라. 성민제(이하 민제) 기존 클래식 공연보다 표현하는 방식이 아무래도 젊다. 그러다보니 관객이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 같다. 대니 구(이하 대니) 작년에 민제 형의 리사이틀 공연에서 처음 같이 연주했는데 그때 반응이 좋아서 둘이 듀오로 활동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펀치가 고작 3주 전에 탄생했기 때문에 어제 우리도 참 감사했다.
서로의 연주를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듀오를 결성하기 전 서로의 음악을 어떻게 들었나? 민제 내 음악이 많이 유연한 편인데 대니가 나와 비슷하게 같이 움직여줘서 편하게 잘 맞출 수 있었다.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위화감이 없다. 대니 둘 다 실내악 공연을 많이 했지만 나는 더블베이스와 듀오를 한 건 처음이다. 민제 형처럼 모든 테크닉을 다 잘 구사하는 더블베이시스트는 없다.
성민제는 더블베이스의 줄을 켜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퉁기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몸체를 치기도 한다. 이런 테크닉을 모두 가진 더블베이시스트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민제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는 아주 다루기가 어렵다. 크기가 큰 데다 줄도 바이올린의 다섯 배 이상 굵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 유연한 연주자가 별로 없고 특히 솔로로 연주하기에는 버거운 악기다. 클래식에서 더블베이스를 켜는 사람은 보통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 대니 솔로로 활동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5명도 안 될 거다. 민제 보통 더블 베이스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다. 바이올린은 솔로를 많이 하지 않나. 우리가 하는 두 악기의 캐릭터 자체가 이렇게 다르다. 보통 바이올리니스트와 더블베이시스트가 협연하면 더블베이스 소리가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화합이 잘돼 서로 더 즐겁게 하고 있다.
성민제는 대니 구의 연주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민제 대니는 성격처럼 음악도 밝다. 그래서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음역대가 낮은 더블베이스 소리를 잘 받쳐줄 수 있을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더블베이스의 음색과 닿았을 때 역시나 따뜻하게 들렸다. 원래부터 알았던 것 같았다. 대니 맞다. 처음부터 오랫동안 같이 연주해온 사이 같았다. 그건 서로 잘 맞는다는 증거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비슷해진다는 말이 있다. 민제 비슷해진다. 내가 느끼기에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이미지가 푸근하고 외모도 뚱뚱한 사람이 많다. 예민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솔로를 하다 보니까 특이하게 예민해진 케이스다. 혼자 무대에 올라가서 나를 책임져야 하니까. 대니는 전형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느낌이 나긴 한다. 약간 예민하고 클래식 음악가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의외로 보수적이기도 하고.
둘이서 공연을 할 때는 성민제가 편곡을 주로 한다고 들었다. 여러 악기로 연주하는 곡을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만으로 편곡하면 어떤 느낌이 나나? 민제 나는 제일 저음을 맡고 바이올린은 제일 고음을 맡는다. 중간이 없다. 보통 이런 구성이라면 피아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피아노가 없으니까 내가 중간을 할 때도, 바이올린이 중간을 할 때도 있다. 드물고, 어떻게 보면 듣기 좋지 않은 조합일 수도 있다. 대니 너무 낮고 너무 높으니까. 민제 대중적이지 않은 조합이고 장르이기 대문에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편곡하려고 노력한다.
성민제만의 편곡 스타일이 있다면? 민제 일단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블베이스가 둥둥거리는 이미지인데 활로 빨리 연주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게 우리의 취지이기 때문에 화려한 속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역시 음역대가 높긴 하지만 낮은 음도 할 수 있게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 스타일의 곡이 대니 구에게는 어떻게 들리나? 대니 아주 좋다. 형은 클래식 베이시스트지만 즉흥연주를 무척 잘한다. 형이 편곡한 곡에도 그런 부분이 많다. 어제 앙코르 공연에서도 즉흥적으로 연주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클래식 공연에서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민제 대니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치고 나온 건데 받더라. 대니 형이 편곡하는 방식이 창의적이어서 좋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최초의 듀오 조합이다.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민제 최대한 긍정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잡아줄 선생님도 없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기 때문이다. 모델이 없지 않나.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이 클 것 같다. 대니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듀오로 공연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팀으로 매일 둘이 붙어서 연주하는 듀오는 거의 없을 거다.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조합은 특히 없다. 민제 클래식계가 워낙 좁아서 우리가 듀오로 연주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따라 하려는 사람이 있겠지만 못 따라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 밖에 할 수 없는 연주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앨범도 내고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도 올리고.
각자 스물여덟, 스물아홉의 평범한 청년일 때는 어떤 모습인가? 대니 운동을 좋아한다.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연주하는 것도 일종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외 시간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별건 없다. 공연할 때 많은 곳을 오가니까 쉴 때는 집에만 있는 게 좋다. 잠옷 입고 바이올린을 연습하거나 텔레비전 볼 때가 사실 제일 좋다. 민제 나는 연주 외에 음악 비즈니스에도 관심이 있어서 밤낮없이 거의 일만 한다. 하지만 혼자 연습하는 게 곧 쉬는 거라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주했던 공연장 중에서 잊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인가? 대니 어제 공연했던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소리가 너무 좋다. 고맙게도 티켓이 매진됐고 분위기도 좋았다. ‘우리가 펀치로 정말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민제 더블베이스 합동 공연으로는 베이스 콰르텟이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메인 연주한 일. 내가 리더로 있고 독일을 베이스로 활동하던 우리 팀이 미국에 초대받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뜻깊었다. 솔로로는 루브르 박물 관에서 연주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대니 (서툰 한국어로) 어제라고 말해야지. 내가 어떻게 돼. 민제 어제 공연도 물론이다.(웃음)
대니 구는 미국에서 ‘여성 런치 콘서트’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등 재능기부나 자선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대니 집이 없는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있다. 매달 뮤지션을 모아서 그곳에서 연주하는데 이런 활동을 많이 하면 내가 처음에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되새기게 된다. 열 일곱 살 때 한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가 사람들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좋은 영향을 듬뿍 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 길의 시작이었다. 재능기부를 많이 하면 ‘내가 이런 기분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구나’ 하는 초심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지 않나.
성민제는 학생들에게 더블베이스를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다. 민제 교육과 연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교육할 때는 학생의 심리까지 짚어야 한다. 한국은 음악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환경이 좋지 않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이 악기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 살면서 이 악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러고 보면 성민제의 삶은 쭉 프런티어였다. 민제 내가 가는 길이 다 처음이었다. 펀치도 마찬가지고.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음악이 좋고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각자의 올해 계획은 뭔가? 민제 올해에 앨범이 나온다. 스무 곡 정도가 수록될 이 앨범으로 오래 활동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베이스 콰르텟이 내한 공연을 할 것 같다. 그러면서 펀치로 선보일 곡도 정해야 한다. 대니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꽤 바쁠 것 같다. 볼티모어, 뉴욕,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공연이 잡혀 있다. 디지털 싱글을 녹음했는데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펀치의 미래는 어떨까? 성 펀치의 매력은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니 지금 레퍼토리를 짜고 있지만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앨범도 내겠지만 우선은 둘이서 재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여느 클래식 팀과 다른 점은 실제로 친하다는 것이다.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별로 없는데 내가 미국을 가도 우리는 계속 메시지를 나누고 영상통화도 자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음악이 살아 있고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제 맞다. 우리, 갑자기 노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