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세 연애 러브

 

흡연자는 흡연자끼리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 나이까지 몇 번의 연애를 했는데 흡연자는 S가 처음이었다. 연애 초에 S는 내게 자주 물었다. 자기가 담배 피우는 것이 괜찮으냐고. 나는 “담배는 기호식품인데 왜 나한테 허락을 구해.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쿨한 척 말했다. 싫다고 할걸. 언제나 그렇듯 처음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전 S는 양치질 후에 리스테린으로 가글까지 하고 나왔고 손도 깨끗이 씻어 어디에서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입을 맞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흡연하는 애인을 둔 내 친구들이 하던 말이 백번 수긍됐다. ‘담배 피우고 나서 카페라테를 마시면 입에서 똥 냄새가 난다’던 그 말. 카페라테를 마셨을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퇴근 후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만났을 때 공복 상태인 S의 입에서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진지하게 그게 폐가 썩어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담배 냄새는 생각보다 견디기에 힘겨웠고, 가뜩이나 냄새에 예민한 나는 점점 S에게 잔소리를 하는 여자친구가 되어갔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그런 여자친구였던 적 없었는데. 내가 하도 싫어하니까 S는 얼마 전 담배를 아이코스로 바꿨다. 담배 고유의 냄새는 나지 않지만 이번에는 아이코스 특유의 찌는 냄새가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 흡연자는 보통의 비흡연자보다 입 냄새가 몇 배는 심하다는 사실을 난 S와 연애하며 알았다. S가 전보다 사랑이 식어서 비흡연자인 나를 배려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S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담배 냄새가 못 견디게 싫으면 헤어지는 것밖에 답이 없다. 만난 지 1년을 못 채우고 나는 S와 헤어졌다. 담배 냄새가 원인은 아니었지만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데 이 냄새 문제가 한몫했다는 건 분명히 밝힐 수 있다. 그렇게 다음 연애 상대의 조건이 또 하나 추가됐다. 비흡연자일 것. E(33 세, 치위생사)

 

 

날카로운 두통의 기억

때는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P의 집 수도는 한파를 버티지 못하고 동파됐다. 당시 나는 학교 앞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당장 샤워도 못 하게 된 P의 사정이 딱해 친구 몰래 우리 집에 하루만 묵을 수 있게 했다. 당시 주말이면 경기도에 있는 남친에게 내려가는 친구의 스케줄 덕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P가 있고, 둘이 함께 음식도 해 먹으니 꼭 신혼부부가 된 것 같아 두근거렸다. 늦은 아침을 먹고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는데 설거지를 마친 P가 내 옆에 꼭 붙으며 “저 영화 재밌대. 개봉하면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순간 토할 뻔했다. ‘가자’라고 말할 때 P의 입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가 훅 끼친 것이다. P는 늘 향수를 뿌리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온 터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누구라도 입 냄새가 난다. 그 사실을 주지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갔다. 대신 “아, 양치해야겠다”라고 크게 말한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일부러 칫솔을 들고 거실을 돌아다니며 양치질을 하고 다시 P 옆에 앉았다. P는 잘했다는 듯 내 엉덩이를 툭툭 쳤지만 양치질을 하러 가지는 않았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나란히 엎드려 다이어리를 펴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P에게서 나는 지독한 입 냄새 때문에 점점 두통까지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P가 민망하지 않게 이를 닦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서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고 에둘러 말해볼까, 껌이라도 씹게 할까 별 생각을 다 했다. 바로 그때, 삑삑삑삑 누군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나와 친구뿐이고, 예정대로라면 친구는 밤에 돌아와야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친구가 놀란 얼굴로 들어섰다. P는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나 역시 민망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친구의 갑작스러운 귀환이 그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얼른 나가라고 P의 등을 떠밀었다. P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종일 나를 짓누르던 두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날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P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나는 강박적으로 양치질을 한다.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을까 봐. K(32세, 약사)

 

 

너 방금…

A는 나보다 일곱 살이 많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해 유난히 잘 통하는 우리에게 여름은 페스티벌이 있어 즐거운 나날이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이었고, 아마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다녀오던 날 새벽이었을 것이다. 찬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아니면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차에 타는 순간부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채 가시지 않은 흥을 즐기며 음악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런데 강변북로를 지날 무렵부터 속이 더 불편해졌다. 장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방귀를 뀌면 나아질 것 같았지만, 당시 만난 지 2년쯤 된 A와 나는 둘 다 트림이나 방귀를 트는 스타일이 아니다. 몇 킬로미터만 가면 우리 집,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 시점이었다.

그때 갑자기 A가 내가 한창 좋아하던 MGMT의 음악을 틀었다. 취기가 남아 있던 나는 그 와중에 또 신은 나서 팔을 올리고 춤을 췄다. 그리고 실패했다. 괄약근 조절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음향 조절은 사수했다. 하지만 몇 초 후 차 안에 스멀스멀 구린내가 퍼지기 시작했다. 놀란 와중에도 그는 냄새를 못 맡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중 A가 말했다. “너 지금 방귀 뀌었어?” 차 안에 우리 둘뿐이니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A는 장난으로 “으악!” 비명을 지르며 창문을 내렸다. 미치도록 창피하고 민망한데 또 너무 웃겨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없지만 그날 일은 우리 둘에게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N(29 세,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