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은 커플제로 심판을 본다. 종목의 특성상 쉴 새 없이 코트를 뛰는 선수들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두 명의 심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도 같은 상황에서 동일한 판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판들은 경기 내내 헤드셋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한다. “각자의 영역에 있다 보니 내가 판정한 것을 파트너가 모를 수도 있거든요. 헤드셋을 통해 ‘나는 이런 상황에서 휘슬을 불었으니 반대편에서도 같은 상황이 생기면 휘슬을 불어달라’고 이야기하죠.”(이가을)
이은하와 이가을은 국내 핸드볼계에 처음으로 나온 여성 심판이다. 이은하는 대한핸드볼협회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이석 국제 심판을 보며 심판의 꿈을 키웠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은 세계 정상급인데 여자 심판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더라고요. 올림픽 때는 여성 심판들이 보이거든요.”(이은하) 이가을은 핸드볼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를 누비는 이은하를 보고 반해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 두 사람 모두 국내 심판, 아시아 대륙 심판 자격을 넘어 국제 심판까지 취득하고 이 일을 해온 지 5년이 넘었다.
자신이 부는 휘슬 한 번에 양 팀의 명암이 엇갈리는 심판의 판정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핸드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심판이 보이지 않아야 좋은 경기’라는 말이 다 있을까. “왜 남자 경기에 여자가 심판을 보느냐”고 항의하는 코치들도 부지기수였다. “선수들 중에도 여자 심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2016년 남자 아시아 클럽 대회 심판을 보기 위해 중동 국가에 갔는데, 우리가 휘슬을 한 번 불 때마다 선수들이 와서 잡아먹을 듯이 항의하더라고요.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성인 남자 선수들이 그렇게 다가올 땐 위협적이기도 해요.(웃음)”(이가을) “남자 심판이었다면 넘어갔을 일도 우리에게 유독 예민한 거죠. 그곳이 여성의 지위가 비교적 낮은 중동 국가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이은하) 두 사람은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그럴 때는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서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는 두 사람을 해외에서도 많이 찾고 있다. 지난해 세계 남자 청소년 선수권 대회는 전 세계 여성 심판 가운데 두 번째로 국제 남성 경기의 심판을 본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국내에서 심판을 볼 때와 다른 점도 분명히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조금 더 심판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잡혔으면 해요. 특히 언론이 심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편파 판정 기사가 많이 나오니까 사람들 사이에 판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아예 박혀 있는 것 같거든요.”(이가을) “국제 대회의 심판을 보러 가면 심판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한국 팀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죠. 각국이 국제 심판을 양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도움을 줄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이은하) 전 세계에서 여성 핸드볼 국제 심판은 총 열여섯 커플. 아시아에는 한국, 일본, 중국에 한 커플씩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