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말라와(Malawa)에는 10대들만이 모여 사는 섭식 장애 센터가 있습니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고 있는 이 소녀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건강하고 바른 생각을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여름 한 계절 동안 그곳에서 소녀들과 함께 살며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울고, 웃고, 가족을 그리워했습니다. ‘말라와의 소녀들(Girls in Malawa)’이라 이름 붙인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 10대들이 겪고 있는 섭식 장애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성적 대상화와 소녀들의 24시간을 잠식하는 SNS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서요.”
덴마크 출신 포토저널리스트 마리 할(Marie Hald)은 ‘생명의 나무 (Drzewo Życia)’라 불리는 작은 노란 집에서 섭식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 소녀들을 만났다. 현재 10대들이 앓고 있는 질환 중 세 번째로 흔한 질병이며,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장 우선 순위로 다뤄야 할 소아청소년 질환으로 명명한 섭식 장애. 증상이 깊어지면 심부전, 내부 장기 손상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르는 위험한 병이다. 마리 할은 10대의 섭식 장애를 사회적 질환으로 규정한다. 그는 “포토샵 프로그램을 거쳐 완성된 완벽한 몸매의 슈퍼모델, 보편적인 일이 된 성형수술, 나아가 비만을 나태와 게으름의 척도로 판단하고, 다이어트를 자기통제로 연결시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직 자아를 규정하지 못한 10대가 자신의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20대 후반 여성들 또한 TV와 잡지가 노출하는 신체 이미지를 보며 자신을 비교합니다. 이 강력한 이미지 앞에서 성인인 우리도 속수무책이에요. 한데 10대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SNS 세계에서는 초단위로 수억 장의 셀피 이미지가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는 이미지가 가공을 거쳐 나온 허상의 이미지라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MARIE HALD 마리 할
1987년생의 덴마크 출신 포토저널리스트. 그가 여성을 중심으로 한 포토저널리즘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대학 졸업 학기 때 진행한 프로젝트 ‘보니(Bonnie)’다. 덴마크 동부에 사는 성매매 노동자인 보니의 일상을 정리했는데 그의 앵글 속 보니는 어린 아들과 놀아주고, 함께 목욕하고, 식탁에 앉아 영수증을 정리하며 가계부를 쓴다. 그렇게 그는 성매매 노동자라는 단어 안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던 일상의 장면을 담았다. 이후 고도비만인 사람들이 모이는 ‘팻 캠프’로 들어간 프로젝트 ‘새로운 나(A New Me)’ 등을 이어가며 여성과 몸에 대한 담론을 이어왔다. 그는 2012년 월드 프레스 포토 어워드(World Press Photo Award)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코펜하겐 포토 페스티벌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영 포토저널리즘’을 위한 루믹스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는 등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말라와의 소녀들’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으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유럽 전역의 젊은 사진작가를 모으는 한 전시 프로젝트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아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는 제가 오랜 시간 집중해온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여성의 몸을 다루면서도 ‘완벽’이라 는 키워드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몸’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섭식 장애로 고통받는 어린 소녀들이 꼭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요. 나 역시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완벽주의에 갇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것은 물론 친절하고, 예쁘며 심지어 섹시해야 했으니까요. 내 친구들 역시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들 중 5명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그 시간을 보냈죠. 이쯤 되니 나의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시에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심어놓은 비현실적인 이상에 맞추며 살기 위해 자신과 싸우는, 또는 싸웠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생각해 볼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녀들을 프레임에 담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 있다면요? 온종일 힘겨워하는 소녀들을 촬영하는 동시에 어떤 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내가 담고자,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매 순간 괜찮은지 오랜 시간을 두고 확인하고 동의를 구했고요. 프로젝트의 주제는 물론 포토저널리즘이라는 장르에 대해 설명한 결과, 그들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점차 이해했습니다. 결국 소녀에게 이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깨닫고,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임을 인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종종 포토저널리스트로서 내가 피사체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염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프로젝트 주제를 정확히 지키면서도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촬영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촬영했다는 자체만으로 굉장한 경험을 한 거죠.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삶 속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진 겁니다. 소녀들은 나를 자신들 일상의 한 부분에 머물도록 해줬고, 나는 그들과 같은 방을 쓰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밤에 침대에 누워 누군가 코고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면서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기록할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포토샵으로 수정한 거짓된 신체 이미지들의 포화 속에 살고 있는 지금 10대의 삶 한가운데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과 실생활에서 이런 이미지들에 현혹되지 않는 법에 대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진과 포토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양보다는 질을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다루고 필름을 현상하는 기술적인 교육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사진들은 그 자리에만 머무는, 그저 예쁜 이미지일 뿐이죠.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로서 나는 세상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쟁 등 세계적인 이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가깝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회문제들을 꺼내 사람들이 눈뜨게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다른 주제로까지 관심이 뻗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작업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