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빛이 감도는 유리. 그중에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조명이라고 하기엔 퍽 근사한 모양을 한 전구들은 ‘글로리홀’ 박혜인의 작품이다. 글로리홀은 곁에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빛을 조건으로 삼아 조명을 제작하고 있는 박혜인의 브랜드 이름이자 작가명이다.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박혜인은 오래전부터 빛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작품을 쭉 해왔고 졸업 후 조명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삼아 조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글로리홀의 시작이 됐다. “주로 설치나 드로잉, 영상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유리’라는 매체는 조금 더 기술이 필요한, 따라서 접근하기 힘든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하다 보니 유리의 매력을 많이 알게 됐죠. 육체적인 노동이 들어가긴 하지만 유리는 만드는 순간 완성이 되잖아요. 나중에 좀 더 가공이 들어가긴 해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로 형태가 나타나는 매체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재미가 강했어요. 그게 빛과 만났을 땐 굉장히 효과적이고요.”
글로리홀의 조명들은 대부분 우연에 기대어 탄생한다. 불과 유리가 만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작업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순간적으로 형태가 만들어지거나 굳고 녹는 과정, 또는 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리의 자연스러운 특성을 박혜인은 있는 그대로 살린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유리 자체의 시간 또는 의지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서로 다른 모양의 유리는 LED 조명을 품고 전구로 완성된다. 글로리홀의 조명이 내는 빛의 색깔 역시 그때그때 박혜인의 느낌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에는 기술이 숙달되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자투리 유리에 광섬유를 넣은 게 초창기 글로리홀 조명의 형태였고 유리를 조금 더 만질 수 있게 되면서 램프 워킹(유리를 토치로 녹이는 기법)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전구를 만들었고 지금은 슬럼핑(틀 위에 유리를 놓고 그대로 가마에 넣어 틀과 같은 모양으로 유리를 주저앉히는 기법), 블로잉(녹은 유리를 공업용 긴 막대로 떠내 입으로 부는 기법) 등 할 수 있는 기법이 많아져서 작업의 폭도 넓어졌어요.”
유리공예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유리를 녹이는 것이 기본 작업이라 올 여름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깨지는 순간 다시 쓸 수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도 깨지면 즉시 버려야 한다. 아쉬워하는 감정이 아까울 정도로 빨리 다시, 혹은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박혜인이 이 작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구매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조명이 공존하며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 때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걸 전부 포기하고 처음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든 것이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더 좋아해주니까 신기했어요. 여기에 글로리홀을 하는 기쁨이 있는 것 같아 요. 그들의 삶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좋은 작가가 되기보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조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박혜인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곧 자신이 살게 될 집의 모든 조명을 글로리홀의 조명으로 달고 그 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이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빌려 주는 것이다. 숙박하는 사람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사고 싶은 조명이 있으면 바로 구입할 수 있다. 글로리홀의 쇼룸이자 모델하우스이자 작가가 사는 공간, 이 세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프로젝트. 그 전에 글로리홀의 조명을 직접 보고 싶다면 9월 18일부터 도산공원 퀸마마 마켓에서 열리는 글로리홀의 판매 전시를 찾아가면 된다.